육아 우울증이 심각했다. 죽고 싶었다. 아이를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다. 가끔 죽고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때는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생각에 잠식되지 않는다. 그건 바로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 상담, 독서, 명상, 운동,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상담에 이어 지금은 독서다.
집 옆 만화책 대여방에서 엄청 많은 만화책을 쌓아가며 읽었다. 세뱃돈과 용돈의 대부분을 만화책 대여방에 줄 정도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림이 없는 책은 <퇴마록>과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읽지 않았다. 자연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책과 완전 담을 쌓고 지냈다. 병원에서 수간호사님은 출퇴근할 때 책을 들고 다니셨다. 지하철로 출근을 하셨는데, 지하철에서 읽으신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달라진 건 임신 때문이었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 부모님처럼 아이를 키워 또 다른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불행한 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내 아이는 활기차고 열정이 넘치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찾은 것이 바로 책이었다. 세상에는 온갖 육아서가 넘쳐났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임신 중에 책을 몇 권 읽었다. 하지만 그것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독서 습관이 없으니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야 읽었으니까 시간이 갑자기 생겨 날일도 책을 열심히 읽을 일도 없었다.
다시 책을 읽게 된 건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답답해서다. 도대체 왜 아이는 이러는지, 잠은 언제쯤 잘 잘 수 있는지,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 다시 책을 들었다. 수유하는 것 대소변 기저귀 가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다. 게다가 아이가 수유하고 있을 때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전자파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 수유 쿠션에 아이를 눕히고 한 손으로는 아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육아서 중심으로 읽다가 나의 심리가 궁금해져서 심리서를 보다가 자기 계발 책까지 읽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편안했다. 내가 모르는 정보를 배울 수 있었고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책을 읽으니 온갖 걱정과 상념 및 우울감이 사라졌다. 오직 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심지어 둘째가 중증의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을 때에도 정말로 하루종일 우울했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니 편안해졌다. 지속적으로 독서를 하면서 왜 그랬는지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몰입했기 때문이다.
몰입은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을 차단하고 원하는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편안함, 자유로움, 만족감, 황홀감 등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또한 몰입을 하게 되면 고난도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지만 '생각할 필요 없이 수월하게 그냥 실행되는 듯한'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몰입 중에는 현재의 근심과 걱정 심지어 행복까지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몰입이 끝난 이후 물 밀듯이 행복감이 밀려온다.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은 무수히 많다. 어떤 활동이든 성취감을 느낄 정도의 약간 높은 정도의 난이도, 꾸준한 노력과 피드백을 하면 누구나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그중 일상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편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였다.
첫아이를 낳고 임신 전과 확연히 달라진 상황과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생긴 지독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에도, 둘째가 중증 아토피라 고생하고 있을 때에도, 몰입 독서를 통해 현재의 삶의 근심 걱정일 잊고 책을 읽는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자책하며 보냈는데, 책을 읽으며 보내니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만 나쁜 엄마 같고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그 시기에는 그렇고 엄마도 처음이라 잘할 수 없다는 책을 보면서 위안도 받을 수 있었다.
심리서나 우울증 극복 책들은 실질적인 도움까지 주었다. 특히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은 <8주 마음 챙김 워크북>이었다.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8주 마음 챙김(MBCT) 워크북이라는 책인데, 책에 나와있는 대로 하나하나 했더니 정말 증상이 좋아졌다.
다음으로 도움이 된 책은 <최성애 박사와 함께하는 행복일기>였다. 초반에는 다른 책처럼 글이 나오고 뒤에는 행복일기를 따라 쓰도록 되어있다. 처음에는 짧게 쓰고 점점 길어진다. 뭘 써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는데 쓸 문장을 정해주니 그대로만 따랐으면 돼서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음은 <아들러의 라이프 로그 북>이다. 책을 제대로 읽고 싶어 <일독일행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진짜 큰 감명을 받았다. 저자처럼 살아보고 싶어 저자가 집필한 또 다른 책이자 플래너인 <아들러의 라이프 로그 북>을 구매했다. 6개월짜리 만년 플래너인 이 책은 하루와 한 달, 그리고 6개월을 계획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금은 쓰고 있지 않지만, 극강의 P인 나에게 계획하며 그 계획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책이다. 바로 <미라클 모닝> 이 책을 통해 삶이 새롭게 태어났다. 평생 올빼미로 살아왔던 나다. 게다가 직업이 간호사라 새벽 4시에 잠들고 11시에 일어나는 삶이 익숙했다. 물론 3교대를 해서 아침에 일어날 때도 있지만 그때는 거의 잠을 한두 시간만 자고 출근했다. 다들 힘들다는 밤을 새우는 밤근무도 많이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 근무가 힘들었지. 나는 의심할 여지없는 저녁형 인간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유전자 검사에서도 역시 저녁형 인간이라고 나와있었다.
그런 내가 달라졌다. 바로 육아 때문에,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기관에 보내지도 않고,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아를 하다 보니 내 시간은 아이가 잘 때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새벽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다. 평생 살아오던 습관을 바꾸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알람도 안 맞추고 눈을 뜨면 새벽 4시다. 고요하게 아침에 나의 리추얼을 행하고 루틴을 지속한다. 이런 변화를 <미라클 모닝>이 가져왔다.
꼭 자기 계발서나 심리서를 읽어야만 몰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몰입은 언제든 할 수 있고 어떤 책을 읽어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어도 된다. 나의 경우에도 소설이나 기타 책을 읽어도, 자기 계발 책을 읽어도 다 도움이 되었다. 책만 읽으면 온갖 근심 걱정이 바로 사라졌다. 읽고 나서 해냈다는 성취감은 덤이었다.
아이가 중증 아토피일 때 내가 아이의 아토피를 낫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아이 피부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야겠다 걱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이의 피부를 보면 자꾸만 걱정되었다. 걱정하니 피부도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정말 아토피에 대한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랬다. 기분이 편안해졌다. 내 기분이 아이에게 전해졌는지 우리 아이의 중증 아토피는 깨끗하게 완치되었다.
그러니 마음이 많이 힘들면 일단 뭐라도 읽기를 추천한다. 읽고 근심 걱정이 다시 생기더라도 책을 읽는 동안은 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일단 읽기 시작했다면 걱정하는 일은 확연히 줄어든다고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