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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엄마재송 Nov 01. 2023

정신건강을 위한 한 번에 하기

미루기와 끝까지 하지 않고 여지를 남겨두는 습관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인 자이가르닉의 이름을 딴 이 용어는 첫사랑처럼 끝맺음을 하지 못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심리를 말한다. 한 마디로 끝내지 못한 건 뇌가 기억하기 위해 긴장하며 계속 나를 괴롭힌다는 말이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자이가르닉 효과의 다른 예시이다. 그만큼 끝내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가지고 살아가며 기억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PTSD 환자들처럼 사건들을 마음속에 짊어지고 사는 것처럼 힘든일이라는 의미다. PTSD 환자들에게는 스스로 '다 끝난일이야'라고 말하며 마음속에서라도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사건의 종결을 짓도록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종결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무조건 더 좋은거다. 





 미루는 걸 좋아한다. 미루는게 습관을 넘어 그냥 일상생활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그리고 또 나중에. 하지만 기다리던 그 나중은 잘 오지 않는다. 정말 급한 일만 허겁지겁 처리하고 급하지 않던 일은 저 먼 기억속으로 잊혀지고 만다. 그리고 나중에 미루었던 일을 발견하면 그제서야 생각한다. '아 또 미뤘다. 해야하는데...'


 미루는 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많은 책도 읽었지만 미루는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39년 평생 미루며 살아보니 미루지 않는 방법은 딱 한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한 번에 하는 것.


 엄청난 방법이 아니다. 새로운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너무나도 식상한 방법이다. 근데 그것밖에는 없다. 나중에 하려고 미루었던 일을 생각해보자. 나는 보통 쓰레기를 한 번에 버리기를 좋아한다. 지금 손에 들고 있어도 눈에 보이는 곳에 살짝 얹어두고 나중에 한번에 치워서 깨끗해지는 쾌감을 즐긴다. 깨끗한 상태에서 치우면 쾌감이 덜하다. 어지럽고 더러운 곳에서 치워야 드라마틱하게 치울 수 있다.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러니 집안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서 한 번에 치운다. 물론 치우는 것도 엄청 힘들어서 연례행사로 큰 마음을 먹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치운다. 그리고 힘들어서 또 치우는걸 미루게 된다. 


 내가 들고 있던 쓰레기들을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쓰레기를 내려놓을 필요도, 다시 쓰레기를 잡고 버릴 일도 없다. 쓰레기가 없어 내가 있는 곳이 정돈되고 깨끗해지는 건 덤이다. 일을 바로하지 않고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면 손이 더 많이 간다. 게다가 나는 준비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뭘 하려면 부팅을 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니 별거 아닌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는 것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할까말까 고민하는 시간까지 추가된다.  하지만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상태에서 바로 쓰레기통에 내려 놓으면 에너지를 엄청나게 절약할 수있다. 쓰레기를 보면서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안하니 쓸데없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에너지를 더 아낄 수 있다. 


 또한 나중에 하겠다고 미뤄둔 일을 남편이 보통 하곤 한다. 그러니 남편은 속이 터지고 나는 별 생각없이 해야할 일들이 없어지니까 더욱더 일을 미루게 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미루었던 일들이 기억의 저 먼 곳으로 가버리니 아무 생각이 없는거다.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하니 습관이 바뀔일이 있나. 




 미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끝까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끝까지 하는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냥 끝내버리면 되는 간단한건데. 문제는 완벽주의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끝까지 해서 결과물이 나올 때 받는 평가를 두려워하며 미완성으로 놔두기를 좋아한다. 지금 완성해버리면 나중에 더 완벽하게 잘 해낼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묵히다가 결국 처음 그 상태로 제출하기도 한다. 제출을 하지 못하는 기간동안 마음만 불편하게 지낸다. 결국 달라질 것도 없으면서.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항상 그렇다. 언제나 조금씩을 남겨두어 다 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느끼지도 못하고 남겨두었다는 마음 한 켠에 찝찝함만 남김다. 마침표를 찍는것이 두렵다. 완성을 하지 못한채로 이것저것 일만 벌리고 수습도 못하고 기억저편으로 사라진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 일들은 '너는 그런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야'라고 나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나는 결과를 내는 것이 두려웠을 뿐인데, 그냥 더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니 더욱 더 끝까지 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내가 생각이 났을 때 바로 하는 한번에 하기 습관을 들이면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끝까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일부분을 남겨놓아 결과물을 발전시키려는 시도의 싹도 잘라버린다. 어차피 나중에 한다고 더 좋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있어도 그냥 끝까지 하는게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 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한 일은 나를 괴롭힌다. 그러니 일을 하면 마무리를 지어야한다. 끝을 봐야 한다. 어떻게해서든 끝을 보고 기억하지 않아야 한다. 미루지 않기, 끝까지 하기, 한 번에 하기! 이것들을 지키며 살아보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나를 위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아 행복해할 남편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과 또 이 세계를 위해서!


사진: Unsplash의Austin Sch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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