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이제 많이 극복했다. 다시 규칙적인 루틴이 생겼으며, 우울한 기분도 거의 들지 않는다. 새로운 일에도 다시 도전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충분하다.' '멋지다.'라는 단어들이 마음속에 떠오르게 노력하고, 또 일부러 의식적으로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듣지 못하고 나에게 해주지 못한 말들이 바로 저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충분하다.' '멋지다.'이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나는 나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자신을 너무 책망하고 채찍질만 해댄다고. 안다. 내가 나에게 친절하고 관대하지 못한 거. 나에게 칭찬이 너무나도 인색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고 성취한 것이 아닌, 내가 못하고 있고 이루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친구 관계도 그렇다. 나를 좋아해 주고 지지해 주는 친구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친구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나를 좋아하는 친구도, 좋아하지 않는 친구도 모두 잃게 되었다.
지금 내 상황도 그렇다. 내가 잘하고 있으면 충분히 지지하고 칭찬해 주어야 마땅한데, 그러지 않고 부족하고 없는 점을 만드는 데 노력하다 보니 잘하는 점도 없어지고, 부족하고 없는 점은 여전히 부족하고 없다. 뭐 하나 이룬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또 자책하고 있다......)
왜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역시 부모님께 칭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다. 매번 내 문제는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찾게 된다. 이번만큼은 다르고 싶었지만 역시 이번에도 똑같이 부모님께 받지를 못한 게 원인이다. 그리고 지금 부모가 되어서 아이에게 칭찬보다 채찍질을 더 많이 한다. 나한테 칭찬도 못하는데 타인에게 칭찬은 더더욱 힘들다. 그래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는 칭찬을 하곤 한다. 그런데 왜 가족에게는 칭찬에 이렇게나 인색할까. 나와 연결되어 있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에 더 잘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내가 아예 칭찬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타인에게 칭찬하는 것처럼 나에게 칭찬을 계속해주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칭찬 샤워다.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 잘하고 잘했고 잘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나에게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충분하다.' '멋지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를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니 다른 것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와 희망이 자라난다. 나에게 해주는 것처럼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칭찬을 많이 해야겠다. 의식적으로 하루에 할당을 정해서 꾸준히 해야지. 아이들은 스스로를 칭찬하며 자랄 수 있도록, 남편은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