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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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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초란 May 16. 2022

마지막 날, 나의 세상은 얼마나 선명해져 있을까?

생선가게의 생선이 전부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느낌일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구름이 보인다. 새가 날아가기도 하고, 비행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고 한참 보고 있자면 저 구름은 무슨 구름일까? 란 생각이 든다. 날아가는 저 새는 무슨 새일까? 비행기는 어디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 일까?


발 밑을 보면 잡초들도 많고, 내가 모르는 것뿐인 이름 모를 꽃들도 많다. 제대로 이름을 아는 곤충이라곤 개미와 거미 정도이지만 그 종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곤충들이 내 발밑에 있다는 것을 안다.

땅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면 자동차들이 지나다닌다. 그러나 난 자동차에 관심이 그다지 없음으로 ‘검은 자동차, 흰 자동차. 노란 자동차 귀엽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난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난 펭귄을 좋아해서 가끔 유튜브에 떠도는 펭귄 다큐를 보기도 하고 관련 책을 읽는다. 단순히 귀여워서 보기 시작했는데, 보면서 점차 몇몇 종은 사진이나 영을 보면 이름을 맞출 정도는 되었다.

그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8종 있는 펭귄을 전부 식별할 수 있게 되면, 지구 상에 있는 펭귄목 펭귄과의 생물 전체를 정복한 것이 아닌가?'


내가 살면서 인간 이외의 생물 중(인간은 현재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므로) 그 어느 생물의 한 목(目) 전체를 구별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펭귄목 펭귄과의 생물이 18종뿐이 없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그리고 이 18종 전부를 어느 정도 특징을 파악하고 구분이 가능한 레벨이 되자, 나의 세계가 한층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펭귄들의 이름을 알고 특징을 알게 되니 이렇게 즐거워질 수가…! 펭귄이 출현하는 어떠한 영상을 봐도 풀컬러, 아니, 4D로 느껴진다. 분명 예전에도 같은 영상을 봤는데 이렇게나 다르게 느껴지다니. 그야말로 세상의 해상도가 올라갔다. 그러고 나니 이전 보다도 더 펭귄이 좋아지고 더 자세히 알고 싶게 되었다.

세상이 선명해지니 더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봤을 때, 빛나는 별 하나하나의 이름을 다 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선가게의 생선이 전부 구별 가능해지면 어떤 느낌일까? 걸어가다가 무심코 땅을 봤는데 눈에 띄는 식물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공원의 새가 사실 다 비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물론 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자 일개 소시민이다. 결코 세상 만물을 다 알고 깨달은 현자가 될 수도 없고,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의 삶의 주변의 것들에게 흥미를 가지고, 이름을 알아가는 것으로 나의 세계의 선명도를 조금씩 조금씩 올리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날, 나의 세상의 해상도는 어디까지 선명해져 있을까?

마지막 날이 참으로 싫을 것 같다. 이렇게 선명하고 사랑스러운 세상에서의 마지막이라니.





아, 전 장초란입니다.

저의 이름이 당신의 세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기를. 그것으로 당신의 세계가 조금이라도 더 선명해 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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