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종신고용의 나라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한번 취직한 회사는 정년까지 웬만해선 그만두지 않고 회사 측에서도 자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요새는 이직도 많고 평생직장 느낌도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회사 측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정년까지 써먹을 인재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아직 변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일본 특유의 신입사원 채용문화가 있는데 바로 ‘신졸 채용’ 문화이다.
대학 3학년겨울 서부터 취직 활동을 시작해서 대부분 여름에는 취직 활동을 끝낸다. 신입사원은 졸업 예정자를 뽑는 것이 관행이고, 졸업하기 전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학생은 졸업을 해 버리면 ‘신졸 채용’ 선발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원에 진학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취직활동은 해 본 적이 없어 듣기만 했지만, 자격증에 인턴에 학과 성적, 게다가 아직 있을 리도 만무한 ‘경력’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에 반해 일본은 ‘스펙’에 경력이나, 자격증, 성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취직 시장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어디까지나 ‘신졸 채용’의 경우. 경력직은 또 다르다.)
그럼 아무런 경력도 없고 자격증도 안 보고 심지어 학과 성적도 안 보는 일본 회사에선 무엇을 보고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걸까?
과정의 순서와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아래와 같은 프로세스로 신입사원을 고용한다.
엔트리 시트(이력서) 제출→시험(일본어, 수학, 영어 등)→그룹 면점→면접→면접→면접…
면접을 엄청나게 많이 본다.
이력서와 시험은 면접인원을 줄이기 위한 수단일 뿐, 일단 면접까지 가면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면접에서는 ‘지금’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계속 같이 일 할 사람을 뽑는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면접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해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면접자가 자신들의 회사와 ‘맞는’ 사람인지를 가늠하기 위한 질문들을 한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을 했느냐, 학생 때 어떤 것들을 하며 지냈느냐, 친구들과 있을 때 어떤 타입인가, 외국인의 경우 왜 일본에서 취업을 하느냐 등등 일본에서 소위 말하는 ‘인간력(人間力)’이 중요하다. 막말로 일은 회사에서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격을 개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들어간 신입사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이 1인분을 할 수 있다고 처음부터 생각도 안 한다. 잘 가르쳐서 정년까지 써먹자는 주의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선 한번 들어간 회사에서 3년간은 일을 해보라고 한다. 힘들고 견디기 힘들어도 3년 버티면 1인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 그때까지 있어보고 그래도 맞지 않는 회사면 이직을 준비하라는 식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하면, 입사 2년 차에 점장이 된 나에겐 장황하게 써놓은 일본 회사 문화가 전혀 해당하지 않은 소리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채용된 것은 맞는데, 처음부터 강호에서 홀로 서기가 필요했다.
보통 사무직 직장이 아니라 ‘편의점’ 회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데, 현장에서 직접 아르바이트생과 똑같이 일을 익히고, 나아가서 본사 사원으로서 지도편달을 할 대상인 오너와 똑같이 가게를 운영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유이다.
직영점의 아르바이트생들도 익히 본사 사원의 사정은 알고 있는 터라, 초보 점장들에겐 관대하다. (고 생각한다.)
유명한 일화로 우리 회사 1호점 가게의 @0년 이상? 계속 일을 하고 계신 아주머님의(할머니에 가깝다.) “내가 저 〇〇본부장을 키웠다”는 둥의 우스갯소리는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진실이다.
나의 경우엔 가끔가다가 아르바이트 리더가 일부러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들고 와서 나를 시험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떻게 대응을 했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이 대응은 동그라미인가? 엑스인가? 그보다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건가?’ 알기 쉬운 시험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내가 평소에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해결하는지, 본인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전부 체크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점장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보통 살 떨리는 직장이 아닐 수 없다.
회사 동기들도 선배들도 그리고 후배들도 점포 시절의 제일 힘든 것은 가게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〇〇점의 〇〇씨는 신입사원 절단기’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보통, 지역마다 유명한 분이 계시다.) 실제로 가게 사람들과 트러블로 인해 고민하거나 퇴사하는 동기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분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6개월에 한 번은 직영점 특성상 점장이 바뀌니(나는 이례적으로 1년 동안 같은 가게에 있었다.) 가게를 지키는 것은 본사 사원인 점장이 아니라 일하고 있는 본인들이란 생각이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에 새로 부임해온 점장이 본인들의 직장인 ‘우리 가게’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시험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