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2016년 5월 프라하엔 곧 시작되는 음악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5월이라는 시기에 딱 맞는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이란 이 음악 축제를 나는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하에 산지 1년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조금 더 사느냐를 두고 한참을 갈등하고 있었다. 겨울 내내 고민을 붙들고 살았던 내게 찾아온 계절은 프라하에 살아보겠다는 결론으로 얻은, 뭔가 덤 같은 시간이었다. 그 계절에 특별한 “프라하의 봄”이 있었던 것이다.
프라하에 살게 된 것은 한국에서 10년 넘게 해오던 일을 그만두면서부터다. 더 늦기 전 찾아온 기회에 도전하고 싶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점과 함께 독립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프라하에서 혼자 살겠다는 결정을 흔쾌히 내릴 수 있었다. 걱정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나는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프라하를 향해 떠났었다. 2016년 5월은 프라하에 산 지 1년이 될 무렵이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에는 년 초보다도 더 의미가 있었다. 프라하에 와서 살게 된 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국제 음악 축제의 콩쿠르 공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 살기로 결정하면 꼭 다시 그 공연을 봐야지'라고 생각해오던 것이 떠올랐다.
70주년 기념으로부터 2016년 프라하의 봄까지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이라고 불리는 이 국제 음악 축제는 세계적인 교향악단, 실내악단의 공연과 함께 콩쿠르가 열리는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독립을 축하하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Česká filharmonie)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프라하의 봄은 매년 5월 12일부터 6월 초까지 3주간에 걸쳐 프라하 시내 주요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개최된 후 냉전 시대 동안 격동의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기간에도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온 축제로, 체코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하며 현지인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프라하에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음악 축제에 콩쿠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마다 2개의 부문이 경쟁하는데 음악 축제의 70주년이었던 2015년에는 클라리넷과 플루트 부문이었다. 나는 클라리넷 최종 라운드 공연을 보러 갔었다. 동양인이 첫 번째로 연주를 했는데 한국 사람인지는 공연이 끝난 후에야 알았다. 플레이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 찾았던 홈페이지에서 그가 한국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멋진 공연이 주는 흥분과 간절한 응원으로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우승자를 확인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라게 됐다. 클라리넷 부문의 김상윤 씨에 이어 플루트 부문의 김유빈 씨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70주년인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경쟁 부문에 한국인이 모두 1위를 했다는 것, 그 공연을 우연히 봤다는 것은 프라하에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큰 감격이었다. 우승자는 다음 해 초청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계속 살게 된다면 초청 공연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프라하의 봄은 나의 특별한 축제가 되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고 소개된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 티켓 / 전 석 기립 박수를 받고 있는 모습
프라하에서 더 살아보기로 결정한 후 며칠은 음악 축제의 프로그램을 확인하며 보냈다. 전년도 우승자인 클라리네티스트 김상윤 씨와 플루티스트 김유빈 씨의 공연 일정을 확인해두었다. 2016년의 경쟁 부문은 피아노와 트럼펫이었다. 각각의 예선과 최종 라운드도 살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프로그램을 챙기는 중에 뜻밖의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이름이었다. 201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씨가 2016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프롤로그 연주에 초청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공연 무대는 루돌피눔(Rudolfinum)으로 해마다 최종 라운드가 열리는 장소이다. 2회 연속 한국에게는 의미 있는 공연이 루돌피눔에서 열리게 된 셈이다. 그렇게 조성진 씨의 공연으로 시작된 2016년 프라하의 봄은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지게 된다. 바로 그해 2016년 피아노 경쟁 부문 최종 라운드에도 한국인이 올라간 것이다. 그것도 네 명 중 세 명이나 말이다.
2016년 예선 참가자 중 눈에 띄는 한국 연주자 명단 / 1라운드 연주를 기다리는 모습
특별한 감동을 발견한 공연
피아노 부문의 예선장을 직접 다녀왔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다수 참가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네 명이 경합을 벌이는 최종 라운드에 세 명의 한국인이 오를 줄이야. 두 명씩 두 번 치러지는 경연 중 저녁 공연만 보려던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이 최종 우승자의 무대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머지도 관람했다. 피아노 부문의 최종 무대를 모두 보게 된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은 워낙 사랑받는 곡들이 많아서인지 작년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어 좌석이 꽉 찼다. 어린아이와 함께 온 어느 한 아버지는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도 주위 깊게 연주를 들었다. 잘 차려입은 체코인들 사이에서 한국인들의 무대를 지켜보려니 괜히 어깨가 으쓱하였다. 기대감을 가지고 연주를 들었다. 특유의 긴장감이 감도는 콩쿠르 무대를 관람하는 큰 장점 중에 하나는 각각 다른 연주자를 통해 한 작품을 여러 번 들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생소할 수도 있는 곡들을 여러 차례, 그것도 각각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지루할 리 없었다. 한 곡 한 곡 들으면서 누가 우승할지 떠올려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렇게 공연을 즐기는 중에 인상 깊은 순간이 있었다. 마지막 한국인 참가자의 연주가 끝났을 때다. 기립 박수도 받았던 그는 뒤를 돌아 오케스트라 피트 뒤편으로 마련된 organ gallery에도 인사를 했는데 그때 동료들이 연주에 큰 박수로 화답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예선을 봤던 나는 몇몇의 얼굴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들은 예선에서 떨어졌지만 동료의 공연을 지켜봤고 연주가 끝났을 때 응원의 마음을 보내준 것이다. 연주자가 뒤돌아볼 때 박수를 치던 손을 더 높이 들어주며 환호해주는 것을 건너편 2층 좌석에서 지켜봤다. 뭔가 남다른 감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현실이 된 바람, 프라하의 봄에 분 한국의 바람
모든 공연을 본 후 역시 난 2015년 때와 마찬가지로 홈페이지에서 우승자 발표를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네 명의 참가자 중 1~3등은 누구라도 한국인이 차지할 것이 분명한 라운드였다. ‘내 기억에 특별히 좋았던 연주를 해준 사람이 우승자가 될까’하며 프라하의 한 골목 안에서 나는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올해 피아노 부문을 우승한다면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2년 연속 한국인이 우승하는 것이다.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박진형 씨가 1위, 김준호 씨는 체코의 마렉 코작과 함께 공동 2위, 한규호 씨가 3위를 차지했다.
2년 연속 우승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 음악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프롤로그 연주에 초청받은 연주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에 이어 전년도 우승자들의 초청 공연들까지 의미가 깊어졌다. 2016년 국제 음악 축제에는 무려 6명의 한국 연주자들이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다. 프라하의 봄에 한국 바람이 분 것이다. 그 2016년의 그 모든 공연을 나는 직접 만날 수 있었다.
5월 14일 2년 연속 한국인 우승자를 낳은 루돌피눔 공연장 모습
여러 번 감동을 더한 특별한 기억
매 공연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클라리넷의 김상윤 씨의 초청 연주 때 아리랑을 연주할 때 일이다. 체코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연주 중에 눈물을 훔쳤다. 옆에 있던 나를 보고 한국인인 줄 알아봤는지 눈물을 닦으면서 내게 흐뭇한 미소를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씨의 초청 공연은 프라하에서 사귄 체코인 친구 카트리나와 함께 갔었다. 프라하에서 사귄 현지인 친구와 한국인 연주자의 공연을 본 것은 남다른 자부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조성진 씨 공연 때는 앙코르 박수가 여러 차례 이어졌다. 전 석 모두가 끊임없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그에 화답하듯 세 곡이나 되는 앙코르곡을 연주해주었다. 피아노 부문 최종 라운드에는 세 명의 한국인들과 한 명의 체코인이 무대에 올랐다. 역시나 체코인 참가자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한국인들의 공연이 이어질 때는 박수가 상대적으로 인색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1층에서 한 외국인이 혼자 일어나서 우리나라 연주자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주었다. 눈길이 갔음은 물론이다.
프라하에 더 살아보기로 결정한 후 내게 찾아온 5월, 그 2016년 프라하의 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음이 든다. 루돌피눔에서 축제 기간 동안에 펼쳐진 공연 중 뜻깊은 공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공연이 2년 연속 진행된 루돌피눔은 나에겐 남다른 공연장이 되었다. 프라하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프라하의 봄이란 국제 음악 축제는 많이들 알지만 그 축제에서 한국인들이 2년 연속 우승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프라하에서의 삶이 감사하다. 프라하에는 매년 5월 봄이 찾아올 것이다. 어디에 살든지 나는 '프라하의 봄'을 기억할 것이다.
Prague spring 2015 competition final flute cast 1
(50:18 Kim Yubeen)
https://www.youtube.com/watch?v=e7nBqJH0jeg&t=4236s
Prague spring 2015 competition final klarinet cast 2
(1:45 Kim Sangyoon)
https://www.youtube.com/watch?v=xxW-WklCuZ8
Prague spring 2015 competition final piano (1/2)
(02:53 Han Kyuho)
https://www.youtube.com/watch?v=biYC1iJVDTU
Prague spring 2015 competition final piano (2/2)
(03:00 Kim Jun Ho)
(01:02:33 Park Jinhyung - W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