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97년 대한민국, 제게는
IMF 말고도 역사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당시에 영어영문과 전공하나 학생이었는데
영어교사 자격증을 위해 교직을 이수하고 있었죠.
지도 교수님께서 강의중 이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공교육에서 영어수업을 실시 한 다는 것이죠.
교수님은 늘 세 가지를 말씀하셨어요. 여자가 아이 키우며 가장 하기 좋은 직업이 영어 선생님이다. 미국에서 TESOL 학위를 하면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은 교회에 다녀라. 그러시면서 초등학교에서 영어선생님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도하셨죠. 실제로 제가 졸업할때 영문과 중 교직을 이수한 학생에게 시험을 봐 초등교사로 뽑은 적이 잠깐 있어요.
암튼 학교에서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할 때 '와~ 요즘 아이들 정말 좋겠네.. 신기하다' 했었지요.
그리고 4학년 때 교생실습을 하고 너무 재미있어 교사가 되리라 노량진 학원을 들어가 임용고시를 준비했으나, 우연히 길에서 고등학교 때 기간제로 오셨던 저의 영웅 같던 멋진 그 영어 선생님이 아직도 고시를 준비 중이시라는 말씀을 듣고 어린 마음에 그 긴 고시의 길을 들어서는 것이 내 길일까 무서워하다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어요.
바로 MBC 방송작가였지요. 이것도 제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것이긴 했어요. 대학도 영문과 아니고 국문과 가고싶어했었으니까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MBC 로비에서 요즘엔 많이 입지만 그 당시엔 엄마 꺼 입고 왔냐고 많이 놀림받던 초록색 롱 패딩을 침낭 삼아 모자를 베개 삼아 밤을 새며 일을 했어요.
당시 처음 했던 프로그램이 해외에서 성공한 여성을 섭외하는 일이었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맘에 모든 영어실력을 끌어모아 해외섭외를 했어요.(처음 일할 때 작가는 대본을 쓰지 않아요. 언니 작가가 대본을 잘 쓰도록 자료도 찾고, 섭외하고 찍은 필름 프리뷰하고 기타 등등 잡일 하고요 자료조사라고 부른답니다.) '영어로 섭외하는 작가', '영어 프리뷰 하는 작가' 방송작가를 할 때도 영어가 참 써먹을 때가 많더라고요. 열심히 일했더니 직접 대본도 쓰게 되었죠. '피자의 아침', '와! e 멋진 세상', '생방송 6시 화제집중'..
일을 열심히 하던 중 운명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너무너무 예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제가 좀 유별났어요. 태교 한다고 가야금도 배우고 임산부 수영에 요가까지 하고 영어노래도 듣고 독서도 많이 하고, '야~ 엄청 모성애가 강했다'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뭘 하나 시작하면 좀 집요하게 몰입하는 편이고 제 큰 아이는 어쩜 그 당시 나의 몰입의 대상이었나 봐요.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건데 또 다른 친구들은 사회에서 일하고 여행 가고 명품사고 연애하고 점점 성장(?)하는데 내 모습이 절대 꿀리면 안 된다는 그런 좀 유치한 비교의식도 있진 않았나 싶어요.
아이를 갖고는 이 아이를 "Bilingual 바이링구얼(두 가지 언어를 완벽히 하는 사람 제 경우는 영어, 한국어)"로 키우면 좋을 것 같다 (혹은 내 한을 풀리라?)라는 마음으로 영어태교부터 나름 해보았어요.
어릴 때는 한국어 책과 영어책을 같이 읽어주었고요. 그리고 대학 때 교수님이 늘 말씀하신 '아이를 키우며 제일 하기 좋은 직업 영어선생님'이 몸에 새긴 문신처럼 (비유가 이상한가요?) 선명하게 생각났어요. 우리 애도 영어 가르치고 직업으로도 영어를 가르치면 좋겠다 한 거죠.
암튼 그 이후 16년 동안 엄마와 아이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고 노래를 하며 놀이 활동을 했던 일을 시작으로 영어유치원, 사립초등학교, 중학교 자유학기제 동아리 강사, 대학 유아교육과 테솔, 엄마를 대상으로 한 엄마표 영어 강의까지 다양한 관심을 갖고 버라이어티 하게 일했어요.
물론 중간중간 쌍둥이 출산, 큰 아이 초등 입학 등등으로 전업주부라는 직업에 충실한 시기도 있었고, 석사학위 취득을 위해 2년 동안 미국에서는 늦깎이 학생이었던 적도 있었고, 어린이 영어도서관에서 관장이라는 관리직으로 일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지난 제 시간을 돌아보니 저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고,
제게 가장 잘 어울리고, 제가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과 가장 맞닿는 것은 강사더라고요.
이 것을 찾는 게 16 년이 걸렸어요.
늘 부족하다 생각도 들었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부당하나 느끼는 대우에 억울하거나
내 직업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도 있고..
하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나를 설명할 이름은 영어강사라는 것을요.
강사들은 좀 정신없이 일이 돌아가요. 그리고 늘 부족한 부분을 생각해야 하고요.
프리랜서이기에 알몸으로 벗겨진 듯 냉철한 평가를 받지만,
막상 좋은 피드백과 개선할 시간을 주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요. (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복 받으신 거예요. 힘들어도 좀 참아도 좋을 거예요. )
그런 과정을 거쳐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게 되고, 강사로서 나의 빛나는 강점을 발견한다면 그때부터는 게임 끝!
'이 바닥은 내가 접수한다!' 뭘해도 자신있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물론 오만한 순간 패망이 오니 늘 겸손하긴 해야겠지만요. ^^
이 매거진은 저의 강사생활을 돌아보는
스스로의 반성문, 에세이 일 수도 있고요.
동시에 강사를 하고 계신 분들과 나누고픈
이야기 일 수도 있어요.
오늘도 교육의 가장 최전방에서
몸으로 목으로 맘으로 일하고 계신 분들과
공감대가 생길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거 것 같아요.
열심히 솔직히 나눠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