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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쉐퍼드 Feb 19. 2018

1988 서울 vs. 2018 평창

                                                                                                                   

이상화 선수의 선전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밤이었습니다
온 국민이 가슴 졸이고 보았을 40여 초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굳은살이 가득한 발의 고통도 뒤로한 채 몰입하고 참아내고 또 이루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저 발로 꼭꼭 밟아온 이상화 선수의 하루하루에 깊은 존경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고 저도 다시금  저런 몰입과 열정을 내뿜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 도전도 됩니다. 

그러고 보면 올림픽이라는 것이 나의 삶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무언가 생각을 하게 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나 봅니다.
이번 설에는 친정에서 다락방을 치우며 오랜만에 지난 저의 일기를 읽어 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1988년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저의 올림픽에 대한 일기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요렇게 생긴 노트였지요.

추억의 1988 일기장~ 소환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차근차근 쓴 일기 중에는 벤 존슨이라는 선수에 대해 쓴 일기가 있더군요.
기억하시나요?  벤 존슨을 아시는 분은 옛날 사람? ^^;;

벤 존슨. 1961년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육상 선수. 88 서울 올림픽에서 100m에서 (당시 세계 1위 칼 루이스를 꺾고) 금메달을 땄지만  도핑 테스트에 걸려 실격. - 위키백과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영웅은 이틀 만에 자격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아래의 일기는 벤 존슨을 영웅시했다가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몰아버리는 언론, 여론에 대한 나름 따끔한 국민학교 6학년의 일기더군요.

길게 채운 일기에는 벤 존슨에 대한 옹호가 가득했습니다.

1988.9.27 (화) 날씨: 맑음
...언제는 그 사람이 가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라고  칭찬했다가, 지금은 비난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흉 본 사람의 반도 못 따라가는 법이니...
벤 존슨의 약물복용은 우리의 책임도 크다. TV, 신문에서 벤 존슨, 칼 루이스 기사를 최대 절정으로 하고  내기까지 건 사람이 있으니 선수에겐 얼마나 부담이 갔을까?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 중략...
검은 여우 벤 존슨 아저씨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세요. 
전 아저씨를 믿습니다. 동시에 이해도 해요. 
용기를 갖고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세요....
추신: 이제 약물복용하지 마세요.

-1988 나유의 올림픽 일기 중

30년 전 추락한 올림픽 영웅을 보는 열세 살의 저는 그 개인의 심각한 범죄는 일단 뒤로하고 한 사람을 두고 다수가 벌이는 횡포(?)에 가까운 관심과 비난이 참 부당하다고 느꼈나 봅니다. 아마도 지금 나이에 그 사건을 대한다면 "사람이 결과만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밟아 왔나 과정 과정이 다 떳떳하고 의미 있어야 해 그래야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행복할 수 있어" 뭐 이렇게 어른처럼 생각했을까요? 어쨌든 1988년 저의 일기를 보니 88서울 올림픽에서 제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선수는 벤 존슨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2018 오늘,
이상화 선수에게서 받은 이 벅찬 마음으로 앞으로 30년 후에 제가 또 펼쳐볼지 모르는 일기를 쓰고 싶네요. 
물론 칸나 호돌이 학습장은 없지만 이 블로그에요.


2018.2.18  날씨:맑음

살면서 후회가 없다는 기분. 
더 이상 원이 없다는 기분.
나는 이런 성취감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오늘 이상화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500미터 빙판을 온몸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 달리며
살면서 가장 길었을 37.33초라는 시간을 끝내고  
들고 내쉬는 가쁘디 가쁜 마지막 숨과 맞닿아 결국 울음을 터트릴 때 이상화 선수의 그 감정이 TV 밖 나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듯했다.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괜찮다. 이루었다.

굳은살로 덮인 그녀의 발이 수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듯이 꿈꾸는 그곳을 향하여 조금씩 움직이는 오늘 하루를 통과하여 마침내 몸속의 가장 작은 세포들까지 완전히 변화시키는 몰입과 열정. 
그 두 가지가 있다면, 목표한 그 지점에 원하는 모습으로 도달하지 않았을지라도,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나의 시간은 언제나 충만할 것이다. 

이제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남들이 해야 한다는 것은 적당히 해왔고, 
적당히 눈 감을 것은 감고 취할 것은 취하며 누리고 살고 있고, 
이제 또 적당히 살아가도 될지 모르는 나이. 
하지만 오늘 밤 적당히 살아낸 삶에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을 이상화 선수의 발을 보며 
내 삶도 순간순간 충실하고, 살아있고,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이면 어떨까 한다.
"  이상화 선수!
힘들었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번외) 개막식 일기

1988년 9월 17일 88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쓴 일기

1988 서울 올림픽 매스게임 (네이버 지식in 발췌)  2018 평창올림픽 드론 (포토뉴스 서울경제 발췌)

1988년 서울 올림픽 제가 세계인을 흥분시켰다고 주장한 장인정신 수작업 올림픽기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드론이 대신했네요. 2048년에 어디선가 할 올림픽을 제가 보게 된다면 그때는 무엇이 대신하게 될지.. 1988년에 사람이 아닌 나는 드론이 오륜기가 될 것이라고는 꿈도 못 꾸었듯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한번 써봅니다. 무엇이 되든 멋있었고. 자랑스럽다. 하겠지요.

** 오늘의 블로그 밴존슨과 이상화 선수를 같이 쓴 것은 그냥 두 올림픽에서 지극히 제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인물을 말한 것 뿐입니다. 훌륭한 이상화 선수와 벤존슨을 같이 언급해 혹시 누가 된 건 아니겠지요. 아무쪼록 25일 폐막식까지 무탈하게 올림픽이 치러지길 바라며 모든 선수들께도 한번 더 말씀 드리고 싶네요. 

힘들었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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