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에서 재개발 사이의 어떤 카페
대구역 남쪽 지역, 정확히는 북성로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대구 교동시장 일대와 동문동 일대도 조금씩 재개발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들 일부는 헐려나가거나 전면 철거되고, 용도가 바뀌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관은 잘려나간 건물, 철거된 건물지, 그 위에 임시로 등장한 주차장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공간들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주변 건물들로 둘러싸인 듯한 경관을 갖추게 된다. 그 부지를 포함한 주변 지역이 전면 재개발되기 전까지 아주 한시적으로 나타나는, 부분 철거와 전면 재개발 사이의 이행기적 풍경이다. 그런 풍경을 이미 있는 개념으로 표현한다면 ”리미널 스페이스“가 될 것이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들른 이 카페는 그 리미널 스페이스의 모습을 선명히 보여준다.
1. 풀 종류를 중심으로 한 식재
나무에 비해, 아주 고급종을 애써 구입하려 하지 않는 이상, 풀에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풀로 정원을 꾸미고 있다. 이 공간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언제든 철거하고 철거할 수 있는, 과도기적 공간, 이행기적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2. 바퀴가 달린 화분들(사진 우측)
이 카페의 주변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교동시장 건물, 그리고 일부가 잘려나간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일부 잘려나간 공간 너머로는 시장길이 보이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소유권 밖의 건물로 넘나들지 못하는 경계가 되는(사실 이 행위 자체가 토지 소유주 간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며, 이용자와 토지 소유주 간의 갈등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것이 바로 화분이다. 그런데 이 화분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 마트에서 쓰는 카트 위에 식물을 심은 듯한 인상이 드는데, 이러한 형태는 곧 이 경계가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마도 옆의 건물이 온전히 철거되고 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또 다른 공간 구획에 쓰일 수도 있을 테니, 꽤나 영리한 고안이 들어간 물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3. 분할되어 있는 기능들
한 건물에서 오래 장사를 하려는 카페라면, 대개 한 건물, 하나의 실내에 주문하는 공간, 음료를 만드는 공간, 내점한 고객이 음료를 마시는 공간, 화장실 등이 일정한 공간 분할을 통해 유기적으로 분할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새로 지은 귀금속 상가 건물 한켠에 주문과 음료 제작 스테이션이 있고, 화장실은 문 밖으로 나가서 건물 중앙 계단을 이용해야 하고, 고객은 밖에서 정원을 보면서 커피를 즐기기도 하고, 아직 철거되지 않은 시장 건물의 일부를 이용해 만든 고객 전용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전통 가옥에서 마당을 경유해 화장실과 부엌, 안방을 오가듯 온전히 비나 볕을 피하며 이동할 수 있는 경로도 없다. 얼핏 보면 전통 가옥을 떠올리게도 하지만(그리고 그것이 의도된 미감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철거와 재개발 사이에 놓인 리미널 스페이스이기 때문에, 동선의 효율성, 안정성은 미감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무신경의 영역으로 방치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다.
4. 주차장과 마당 사이
조경학이나 도시계획학에서는, 임시로 도시 공간을 원래 용도와는 다르게 이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곳의 마당에는 흰 줄이 그어져 있는데, 주차장의 기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찾아갔을 때는 테이블을 두고, 띠 형태의 주변 조경 공간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다.
5. 공터, 주차장, 마당, 경로를 넘나드는 오픈스페이스
사진 왼쪽을 보면, 계단이 보인다. 가옥을 향해 난 계단인 듯한데, 실제로 사람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공터, 한편으로는 주차장, 한편으로는 마당,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경로의 일부로 오픈스페이스가 사용되는 듯하다. 이 또한 과도기, 이행기로서의 공간의 특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장소: 딥커피로스터스 제마 (대구 중구 동성로 64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