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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Aug 02. 2020

싸움의 기술

네게 원망을 남기지도 않고 내게 미움을 축적하지도 않는 이가  승자


.


결혼생활에서 부부싸움은 비켜갈 수 없는 주제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면 결혼 5년 차까지는  남편과 다툰 이야기로 배틀을 발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각자 이 만남의 날을 위해  PT 준비라도  한 것처럼 사연을 하나씩 꺼내 놓으면 듣고 있던 친구들은 그에 따른 심판도 해주고 훈계도 해주곤 했다.

그때는 그런 일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다 같이 결혼 이십 연차를 훌쩍 넘겼다  5년 차 때 비슷비슷하던 부부싸움의 모습이 이십 년 차가 되니 그 모양새가 다르다.


더 이상 에너지가 없어 안 싸운다고 한걸음 뒤로 빠지는 친구 A,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은 싸울 일이 없이 편안한 표정이다.


여전히 전우애로 뭉쳐 산다는 친구 B.  이 친구는 진짜 전사의 분위기로 변모했다 어느덧 평상시 목소리도  격양돼 있고 말투도 공격적으로 변했다.


이제는 아이들 다 크기만 기다린다며 굳건한 체념을 한 것 같은 친구 C. 이 친구는 아이들 크고 나면 졸혼할 거라고 공식 선언했다.


5년이 지나 20년을 넘겨오며

부부싸움의 역사가 축적돼 부부관계를 재정비해 놓은 듯했다


심심하고 따분한 오후.

이제야 연말 결산하듯 20여 년 차 부부싸움의 결산을 해본다 원래 전쟁의 역사는 훗날 재조명받는 법.



부부싸움의 발단은 사소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부부 중  한쪽이  회가 나고 그 화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말들이 오기고

누군가는 생채기를 주고 누군가는 받으며 누군가는 마음을 닫는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은 사실이 아닌 희망사항 또는 권장사항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이렇듯 우리 일상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말들을 경계한다.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긴장감 대신 나태함을 불러일으켜 종국적으로는 우리를 비극적 결말로 이끌 수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기보다 어쩌면 칼로 사과 베기일 수 있다.

잘 깎아 서로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도 있고,  칼집만 내고 그 생채기로 균이 번식할 수도 있다.

칼로 그어놓은 사과는 쉽게 변질된다.


모든생채기가 다 가볍게 넘겨도 되는 외상은 아니다.

제사 지내며 윗등을 잘라놓은 사과는 며칠 지나 반을 잘라보면 깊숙한 곳까지 물컹 썩어있다

칼에 배인 사과는 그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빨리 도려내서 냉장고에 넣든지 아님 그 즉시 먹든지 해야 한다.


그럼 이렇게 상대방에게 생채기른 내는 뾰족한 말들은 언제 새 나올까?  

주로 화가 났을 때 하게 된다




'화가 나다'와   '화를 내다'사이


화가 나는 것은 마음속에 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마음속 화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문제 발생 화가 나다 ㅡ 화를 내다 _ 상대방의 사과를 받거나 못 받거나 일단 상황 종료


화가 났을 때 보통 이 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시 문제는 반복다.

왜냐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를 낸 사람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화를 면서 상대방  마음에 칼로 생채기만 낸 것이다  

자신은 화를 내고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고 상대방 감정만 상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칼집만 내서 '관계의 부패'만 시작될 뿐이다. 


상대방에게 생채기를 내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후련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손해다.

상대방에게 나를 미워해도 될 권리를 안겨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화로 인해 내 마음속에 안 좋은 감정이 피어오르고 부정적인 에너지만 모으게 된다.


틱낫한 스님은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불이 나고 난 뒤 재만 남은 집을 보는 것처럼 화를 내고 난 뒤 마음은 폐허와 같다.


그럼 무작정 화를 내지 말고 참으란 말인가?



문제 발생 ㅡ화가 나다 ㅡ화를 바라보다 ㅡ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다(또는 화를 내다)


그러다 쿄오스케 스님의 책을 읽게 됐다.

화가 나다와 화를 내다 사이에 꼭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화를 바라보기'이다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은 <행복하게 일하는 법>에서



 ‘분출돼 나오는 분노를 철저하게 객관화시켜야 한다.
마치 망원경을 들여다보듯이 지금 마음속에서 어떤 분노가 솟구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요동치는지 제대로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무대에서 날뛰고 있는 분노와 관객석에서 응시하고 있는 자신과의 사이에 결정적인 거리가 생기게 되므로 분노와 일체 되지 않는다고.

또한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은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화를 내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 내 화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면서
불길이 타올랐다가 서서히 가라앉는 걸 지켜보는 과정을 견디라는 것이다.


화를 바라보는 과정을 거치면 두 가지 이점이 생긴다.

시간을 두고 화를 바라보고 나면 서서히 소멸될 '가짜 화'를 알아보고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또 하나는 화를 내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화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화를 불러일으킨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된다.  최종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잘 스며들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기술이다.

남자들은 여성의 고음에 거부반응이 있다고 한다. 굳이 성별을 따지지 않더라도 화를 품은 음성이 상대방에게 잘 스며들리 없다.

화를 바라보고 난 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성적인 사람은 음성부터 조절할 줄 안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한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창옥 강사의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부부관계가 원만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듯 뻔한 이야기지만

결혼 27년 차에 들어서는 나로서는 열렬한 공감을 한 내용이었다.


말을 예쁘게 하려면 화가 난 상태로 화를 내며 말해서는 안된다.

화를 바라보고 문제를 직시한 뒤 한 걸음 물러서서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하는 말이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납득할만한 내용이란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화를 품은 말은 뾰족하거나 뒷맛이 쓰다.

예쁜 말은 잘 스며들어 상대방의 의식에 흐른다.


.




다시 돌아가 보자


친구 A는  화를 내는 대신 화를 바라보고 화의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남편과 다툴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자신의 페이스로 살며 얼굴도 편해졌다. 현명한 친구다.


반면 친구 B는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화가 나다와 내다 사이에 화를 바라보는 단계를 생략했다.

결과적으로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화가 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생채기 내는 말을 하고 남편과 사이도 전보다 안 좋아졌다. 다소 직선적이긴 해도 솔직하고 의리있는 친구인데  안타깝게도 관계에 있어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것 같았다.


친구 c는 화가 나는 일을 해결하지 않고 고스란히 화와 문제를 같이 축적했다. 친구c의 남편이 화를 잘 내는 성향이라 집안의 평화를 위해 참아왔다.

그 결과 자신의 마음에  남편에 대한 미움만 차곡차곡 모았다.  그리고 결국 졸혼이란 결론을 내린 채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경우 친구 c의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문제는 친구 c의 남편만 피해자가 아니라 친구 c도 피해자다. 왜냐하면 그 오랜 기간 마음속에  미움을 담아두고 살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하면 누구보다 자신이 불행하다.

친구 c는 늘 잘 참아내는 '불행한 교양인'이었다.


물론 상대방이 어떤지에 따라 상황의 전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지 말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화를 바라보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도 있겠지만....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아니까.


해결하려고 했는데 해결이 안 된다면 그 후엔 상대방의 '예외'로 그냥 외워버리는 거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나도 예외를 하나 심어주는 것도 좋다. 나에게 자유로움을 한 가지 선물하고 서로 그 영역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서로에 대한 '미움을 청소'하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부부싸움의 진정한 승자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가진 애정을 손상시키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사람이다.

또한 내 안에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쌓이지 않게 잘 관리하는 사람이다.


결국엔 마음이다.

내 마음에도 네 마음에도 미움이 남지 않게 화를 처리하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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