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문동과 내향적 성향의 사람이 맺는 관계
중학생 때, 2교시 끝난 뒤,
"아무도야 빨리 와. 먼저 가서 줄 서 있을게."
친구 M 은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교실 앞문을 통과하며 뒤돌아 소리를 지른다.
"응"
하며 뒤따라 달린다.
2교시가 끝나면 매점 문을 연다.
아침 내내 엄마가
"한 숟가락만 더 먹어"하면서 식탁에서 방까지 쫓아오셨지만 그때는 입맛도 식욕도 없던 내가
등교 뒤 두 시간 공부? 아니 졸았다고 갑자기 마라톤을 뛴 사람처럼 허기져있었다.
친구들과 엎치락뒤치락 뛰어 매점 앞에 도착한 뒤 각자의 식량인 빵과 우유를 사들고 돌아 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까르르 웃으며 복도를 지나서 교실에 도착할 즈음엔 이미 빵은 사라지고 없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평온하게 교실에 들어섰다. 그때 텅 빈 교실 구석에서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친구 K가 눈에 들어왔다. 창가도 아닌 교실 뒷문 바로 옆 자리. 그곳은 평소에 눈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순조롭게 매점 줄 서기와 간식 섭취 미션을 성공한 탓이었을까? 갑자기 마음이 열리면서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와 진짜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 같아. 황미나 만화가 그림. 그거랑 똑같아."
"그래?" 하며 친구는 눈도 안 마주치고 오른쪽 입꼬리만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더 깊숙이 고개를 숙여 그림을 그렸다. 난 그 앞에 서서 멍하게 친구의 그림을 한동안 바라봤다.
다음날 매점에 가기 전, 난 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친구 K를 쳐다봤다.
여전히 구석진 자리에서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날 난 빵 하나 우유 두 팩을 사 가지고 왔다. 우유 한 팩은 복도에서 마시고, 나머지 한팩을 교실에 앉아있는 K에게 건넸다.
"이거 마실래?"
관계 맺기에 식물스러운 내가 평소와 달리 먼저 손을 내밀었다.
친구 K는 그렇게 우리 친구팀? 에 합류했다.
그 이후 34년간 내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내 친구 중에는 외향적인 친구도 있고 내향적인 친구도 있다. 그런데 속마음을 터놓고 싶은 일이 있을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친구는 K다. 오랜 세월 친구와 감정을 나누며 체득한 나만의 편견이 있다면. 주변에 너무 사람이 많고 활발한 친구에게 내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실수로라도) 그이야기가 퍼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나만의 고민, 나만의 기쁨이 다른 색으로 채색되길 바라지 않을 때는 K를 찾게 된다.. 그 친구는 내 이야기를 자신의 판단 필터를 통하지 않고 듣는다. 그리고 저장해 뒀다가 빛바랜 색으로 방출해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없다. 마치 바닷가에서 편지를 유리병 안에 곱게 담아 바닷물에 흘려보내듯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지난여름의 끝자락. 재활용품을 버리러 나갔다가 아파트 화단 구석에 못 보던 꽃을 보았다.
그 구석 자리는 매년 꽃이 폈다가 바로 시드는 그늘진 곳이었다 '어 꽃이 피었네'싶다가 다음에 지나갈 때 보면 이미 시들어있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는 한동안 비어있었다. 비어있던 자리에 들어선 꽃이 반가워 다가갔다. 특이하게도 길쭉하게 생겼다. 나중에 이 꽃을 검색하려고 사진을 찍어뒀다.
집에 와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봤더니 맥문동이었다.
맥문동은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지식물이다. 음지식물은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빛의 양이 양지 식물보다 낮다.
음지식물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호흡 속도가 느리다는 것인데 이로 말미암아 조명도가 낮은 여건 아래에서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형태적인 특징으로는 잎이 더 넓고 얇은 것이라고 한다. <출처: 다음 백과사전>
음지에서 곱게 핀 맥문동은 내향적인 성격의 내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교실 구석을 찾아 앉곤 했던 친구 K와 그늘진 곳에 피어있는 가느다란 맥문동은 자리 잡은 곳까지 비슷했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해서 항상 조용히 말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친구의 모습과 넓은 잎으로 햇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맥문동의 모습은 상당히 닮아있었다. 잎이 넓다는 것은 햇볕을 폭넓게 받아들이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런 맥문동의 모습에 귀를 활짝 열고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는 친구의 모습이 겹쳐졌다.
햇볕이 있으면 그늘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모두 다 햇볕만 쬐려고 한다면 자리다툼도 심할 것이며 건물 아래, 상록수 아래, 숲 속 깊숙한 곳에서 꽃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햇볕이 닿지 않아도 자신의 잎을 넓게 펼쳐 그늘에서 꽃을 피우는 맥문동은 우리 일상 속 그늘을 아름다움으로 채워주는 귀한 존재다. 조용히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친구의 속 깊은 고민을 귀담아들어주는 친구처럼 말이다.
맥문동 닮은 친구 K가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느덧 그 아이(G라고 하겠다)가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즈음부터 K는 만날 때마다 G 걱정을 하곤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에 가서 보니, G 성격이 내향적이라서 학교에서 모둠 수업 뒤 발표를 잘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중학교는 지나간다고 해도 나중에 회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K는 점점 불어난 걱정에 금세 짓눌려버릴 것 같았다. 급기야 G가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해서 사회에 나가 큰 인물이 되지 못하면 어쩌냐고 했다. 평소에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친구가 털어놓는 고민이라 더욱 마음이 쓰였다. 그 고민을 듣고 뭔가 그럴듯한 해답을 찾고 싶었던 나는 책을 한 권 사서 건네줬다.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 란 책이다.
저자 수잔 케인은 하버드 법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년간의 연구와 수많은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향성이 얼마나 위대한 기질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콰이어트>란 책이다.
수잔 케인은 <콰이어트>에서 외향적 성향에 대한 일반적인 찬양에 조목조목 의문과 반론을 제기한다. 특히 외향적인 성격 소유자의 장점이라고 알려진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조별 학습, 팀별 수업, 프로젝트 활동을 많이 하는 현대사회에서 내향적 성격 소유자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던 항목이다. 이 책은 내향적 성격 소유자가 리더십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설득력 있다.
외향성과 리더십 사이의 상관관계는 미미하다고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리더의 성향은 팀원의 성향과의 조합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내향적인 지도자는 능동적인 사람들이 팀원일 때, 그들을 이끄는데 더 잘 맞는다고 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상황을 지배하는데 무관심하다는 성향 때문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팀원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시도해볼 확률이 높았다. 즉 내향적인 지도자들은 능동성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반면 외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데 몰두하다 보니 팀원의 좋은 아이디어를 놓치고 팀원들이 수동성에 빠져들도록 할 소지가 있다. 외향적 지도자들은 자신이 말을 많이 하게 되고 팀원들이 제시하려고 하는 아이디어를 전혀 듣지 않게 될 때가 많다. 외향적인 지도자들은 수동적인 팀원들과 함께 일할 때 훨씬 나은 결과를 보여준다.
게다가 내향적인 사람들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좀 더 주의 깊게 생각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때 빠르고 간편한 접근법을 택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정보를 철저히 소화하고 임무를 오래 물고 늘어지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출처 콰이어트 by 수잔 케인>
책 내용에 따르면 내향적인 성향의 리더는 팀원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그 제안을 시도해 봄으로써 팀원의 능동성을 더 활성화시켜주는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외향적인 성향의 리더가 자신의 주장을 펴다가 팀원들을 수동적으로 변화시킬 위험이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문제 해결력 측면에서도 내향적인 사람들이 더 탁월하다고 하니 리더로서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전혀 뒤처질 이유가 없다.
아이의 내향적인 성격으로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외향적인 성격을 우월한 성격으로 보고 내향적인 성격을 열등한 성격으로 보며 아이를 다그치기도 한다. 학부모 참관 수업에 가서 아이의 수업을 지켜보다가 아이가 발표를 잘 못하면 엄마가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아이가 모둠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혼자 앉아있으면 교실 뒤에 서있던 엄마가 '말을 하라고!' 속으로 주술을 걸어보기도 한다.
엄마의 그런 일방적인 압력이나 은밀한 바람은 아이한테 부담감만 얹어 줄 뿐이다. 아이가 자신의 성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점점 더 위축될 수도 있다. 엄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속상하고 아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더 버거워지는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내향적인 성향은 극복해야 할 약점이 아니고 외향적인 성향은 도달해야 할 목표도 아니다.
내향적인 성격은 외향적이지 못한 게 아니다. 그저 내향적인 것이다.
약점이 아닌 특징인 것일 뿐.
<이 이야기는 2014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 친구 아이가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답니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이 글은 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에 일부 수정돼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