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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May 27. 2020

긍정의 힘, 그전에



40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를 힘들게 하는 말은 의외로 ‘긍정적으로 생각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였다.

삶을 살아가는 데 유익한 이 말이 나한테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부감을 일으켰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상황과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 슬픈 건 마흔 살 되도록 아름답기만 하던 나의 관계망에 얽힌 사람들에게서도 이물질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뻔히 보이고 들리는 상대방의 경우 없는 태도와 곱지 않은 의도를 ‘긍정적’으로 감싸 안을 ‘아량’이 부족했던 나는 끝없이 자신을 자책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생각했겠어? 어쩌다가 실수한 거겠지'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를 억지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느라 머리와 가슴은 늘 충돌전을 일으켰다. 그 결과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분출하지도 못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내 안에 화를 축적해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좋게 생각하며 넘기는 사람을 보면 그들에 비해 턱없이 좁디좁은 내 마음이 허접하게 느껴져서 쪼그라들었고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과감하게 내지르는 사람을 보면 이것저것 따지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마음에 미움만 쌓아가는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져 한심했다.


용기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는 것쯤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상대방의 반응보다 어려서부터 내게 주어진 숙제를 떨치지 못해서였다. '좋게 생각하고 넓게 이해하고 갈등을 일으키지 마'라는 숙제. 그 숙제를 던져버리는 시도를 하고 나면 잘 자란 사람에서 벗어난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나’라는 인간의 이상적 기준을 너무 높게 설정했던 것 같다.


그러다 법정스님의 책에서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는 글을 보게 됐다.

넓은 아량으로 세상 사람들을 품어줄 것 같은 스님의 단호한 한마디에 그동안 억눌렀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 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은 벌이다

ㅡ법정 스님ㅡ


                  

문제는 내가 그 ‘숙제’를 잘못 받아들인 것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가능하면 '이해'해야 하는 대상은 '모두'에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진실되지 못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진실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좋은 것을 나쁘게 보면 안 된다.

좋은 것을 나쁘게 보는 건 오해다.

좋은 것을 좋게 봐야 한다.  

이게 긍정의 힘이다.



나쁜 것을 좋게 보면 안 된다.

나쁜 것을 좋게 보는 것 또한 오해다.

나쁜 것은 제대로 봐야 한다.

이게 분별력이다.

  

문제의 시작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 이전에 분별력을 키우라는 말이 빠져있었던 것에서 비롯됐다.


분별력 없이 좋게만 받아들인다고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나쁜 것을 잘 가려내서 멀리하거나 빼버리거나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긍정의 힘 이전에 분별력을 키우는 것. 제대로 분별하고 나서 내 에너지를 제대로 투자하는 것.

그것이 내 마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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