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한강변을 걷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나처럼 이어폰 줄을 길게 늘이고 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다들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하긴 무선 이어폰이 유행한 지 벌써 몇 년 되었으니....
몇 년 전 나도 무선 이어폰을 살까 잠시 망설였다. 전자파가 많이 나올 것 같아 결국 사지는 않았지만 제품 설명 중 노이즈 캔슬링 기능에 관심이 생겨 찾아봤다.
백과사전에는 노이즈 캔슬링이 인공적인 소리로 원치 않는 소음을 덮어버리는 기술이라고 나온다.
첫 단계에서는 헤드폰에 부착된 센서로 외부의 음파를 감지하는 것이고,
다음 단계에서는 헤드폰 내부 스피커에서 외부의 음파와 파장이 다른 음파를 생성해 소음을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의 원리가 소음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인공적인 소리로 소음을 덮어버리는 것이라니!! 그러고 보면 지금 나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물리치는 빠른 방법은 또 다른 스트레스의 등장 일뿐이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자잘한 미세먼지 같은 걱정에 휩싸였다가 큰 걱정 하나가 출몰하는 순간, 미세먼지가 폭우에 씻기듯 작은 걱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으니까.
작은 아이가 백신을 맞은 지 닷새째 되는 날 밤, 갑자기 심장이 찌르듯이 아프다 해서 응급실에 갔다 왔다. 그 이후로 심장 내과 전문의 진찰도 받고 정밀 검사도 했다. 의사는,
"네 증상은 지금 심장을 꼬집는 현상 같은 거야. 심근염은 꼬집어서 피가 나는 거고"라고 설명했다.
일단 결과는 괜찮다고 나왔지만 여전히 통증을 호소하는 아이를 옆에 두고 긴장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그 뒤 중이염에 난청 경계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이 또한 정밀검사까지 마친 상태다). 아직도 걱정을 가득 담아 아이를 지켜보지만 이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는 상태다. 그저 이 시간을 견디며 잘 지나가기를 바랄 뿐.
머리로는 애써 괜찮다고 여기려 하지만 실제로 그 일 이후 노트북만 켜면 클릭하는 단어가 있다.
'백신 부작용' '심근염' '난청' '청소년 백신 패스'
잠시 뉴스를 보려고 창을 열고 다시 백신을 맞고 세상을 떠난 고인 기사를 읽는다.
'아이고 10대 청소년이 또 백신 부작용으로? 아휴 이를 어쩌지?'
아산 병원 이비인후과 의사의 유튜브 동영상도 찾아본다.
'돌발성 난청이 그리 많은가?'
다시 외신을 찾아 해외 상황을 파악한다. 심지어 논문까지 찾아 읽다 보면 머릿속은 백신에 푹 절여진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유의미하지만, 지금 내 걱정은 무의미하다. 이미 정밀 검사까지 마친 상태이니 점차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무의미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는 애써 걱정을 밀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방법으로 노이즈 캔슬링 원리를 적용해 볼까 한다.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걱정거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떠밀 수는 있지 않을까.
적용 1. 헤드폰에 부착된 센서로 외부의 음파를 감지하는 게 첫 단계다
우선 내 걱정의 패턴을 읽으려면 내 뇌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내 삶은 두 개의 세계로 나뉜다.
"노트북 안의 삶과 노트북 밖의 삶"
노트북 전원을 끄고 일상생활을 할 때는 주로 현재에 머문다.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와 집안 정리를 하고 가족과 이야기할 때면 현재의 일상을 밟아나간다. 그러다 내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손가락을 자판에 올려놓는 순간, 내가 생각하는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과거면 과거, 미래면 미래. 내가 이끄는 대로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간관계 이야기를 쓸 때면 글을 쓰는 대상에 따라 그 대상이 내 머릿속으로 소환된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화면을 바라볼 때면 그 노트북 화면이 내 뇌 속 구조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검색하고 내가 느끼는 바를 활자로 써낸다. 하나의 문제에 몰입하면 파고드는 성향이라 검색으로 창이 열리고 또 열린다. 내 머릿속 생각이 창과 창으로 이어나간다. 내가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주체가 바뀌어 생각이 나를 삼키는 것이다. 파고드는 생각에 잠겨 그 생각을 온 세상으로 착각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걱정은 깊이 파고드는 성질이 있다. 마치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가는 것 같다. 내려갈수록 걱정이 짙어지면서 어둠이 드리워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계단 끝에 이어진 복도를 따라가면 구석에 녹슨 철문이 있다. 삐그덕 거리는 문을 힘겹게 열고 방에 들어간다. 그 방안에는 걱정에 꼬리를 이은 또 다른 걱정이 상자에 담겨있다. 망설이다가도 기어이 상자 문을 열고야 말지만 그 안은 비어있기 일쑤다. 결국 나만 어두운 지하방에 갇힌다.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이란 이어폰의 외부 소음과 같다. 끊임없이 일상을 침범하곤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걱정을 외부 음파로 인식하고 그 음파를 다른 자극으로 덮어야 한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소음을 덮어 씌우듯이 걱정을 덮을 방법을 찾아본다.
적용 2. 이제 2단계로 나아가 다른 자극을 담아보자
어떻게 자극을 생성시켜 걱정을 덮을까? 생각을 쫓는 화면인 노트북에서 시선을 돌린 뒤, 시각적으로 자극이 될 만한 풍경을 눈에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자극이 눈에 들어오면 그 자극이 뇌로 옮겨간다. 뇌에 풍경이 밀려오면서 머리에 자리 잡고 있던 걱정이 떠밀려나간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외부의 음파와 파장이 다른 음파를 생성해 소음을 없애듯이 내 눈에 노트북 화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담는 것이다. 내 눈에 들어온 자연은, 내 걱정을 지우고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채워준다. 생각을 파고드는 것을 멈추는 것, 내 시야에 자연을 담는 것, 그게 워리 캔슬링 방법이다.
자 실행이다. 노트북을 덮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 해 질 무렵 한강에 가서 하늘빛과 강 물살을 느끼면 내 눈뿐만 아니라 머릿속에도 하늘빛과 강물결을 담을 수 있다.
뜬금없이 눈에 저 하늘을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이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싶다. 그렇게 바람과 하늘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실제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내 머릿속 화면이 일치하게 된다. 걱정거리로 가득 찼던 머릿속 화면도 지하실에서 빠져나온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웅크리고 있다가 천장에서 새어 나오는 햇살 한 줌을 쫓아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라오는 듯하다. 계단 끝에 서서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비로소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햇빛이 어둠을 지우듯 눈앞에 펼쳐진 경치가 걱정을 밀어낸다.
이제 내 생각을 파고들지 않는다. 대신 내가 세상을 본다. 나는 이 광활한 자연 속에 서 있는 작은 생명체일 뿐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머릿속 안을 가득 메우며 온 세상인 척하던 걱정이 한강 풍경 앞에 서면 작아진다. 지금의 상황이 마치 지미집 카메라로 당겨 찍는 것처럼 연출된다. 점점 줌 아웃된다.
큰 한강에 손톱만 한 내가 있고 내 안 작은 주머니에 꽉 찬 걱정이 있을 뿐이다. 음소거되듯이 그렇게 걱정도 사그라든다.
pixabay Stocksnap님 사진
해질 무렵 한강
해질 무렵 한강
해질 무렵 한강
제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님과 이웃 작가님,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글에 썼듯이 노트북을 덮고 생활하는 나날이 좀 길어졌습니다.
천천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에는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또한 마음의 평온이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