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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 캐러웨이 Mar 17. 2019

[책 추천]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발뮤다 창업자가 솔직하게 쓴 고군분투 삶의 여정

  


  발뮤다란 브랜드를 안 것은 정말 오래 되지 않았다. '죽은 빵도 되살린다'는 발뮤다 토스터기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라는 얘기를 듣고, 그 제품을 평소에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의 반가움은 발뮤다란 이 특이한 발음의 브랜드는 어떤 브랜드일까 궁금하게 했었다. 발뮤다 창업자 '테라오 겐'이 이번에 낸 에세이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는 기업 경영에 대한 책은 아니다. 유명해졌다 싶은 경영인이라면 쓰기 마련인 (대필자가 썼을 것이 분명한) 진부한 성공담도 아니다. 'LOVE & FREE'로 유명한 다카하시 아유무의 여행기에 더 가깝다. 그래서 더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The Whole Earth Catalogue' 마지막에 실렸던 'Stay Hungry, Stay Foolish'란 기가 막힌 문구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스티브 잡스처럼 테라오 겐 이 사람도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에세이 곳곳을 읽으면서 문장들이 시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일에만 몰두해서 성공했다는 자수성가형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지만, 無의 영역에서 발뮤다를 일궈낸 저자의 스토리는 달랐다. 그가 묘사한 도전적이었던 삶 자체가 하나의 Poetry이자 Rock Spirit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의 도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고, 본인이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각오가 느껴져서 더 좋았다. 


‘괴로워도 일하라. 안주하지 마라. 이 세상은 순례의 길이다.’
북유럽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수필집에 나온 말이다. 지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진정한 안주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 헤맨들 소용없는 짓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 오늘이 끝나면 내일, 또다시 일해야 한다. - p.51

  


  공부는 뒷전이었고 17살에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의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 뮤지션의 길을 택했던 테라오 겐은 본인이 전력을 다 했다고 생각한 음악의 길이 실패했을 때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동안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했던 그는 기획사에서 녹음했던 음반 발매가 취소되면서 결국 본인은 스스로 생각했던 천재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자아가 무너지기 직전의 위기까지 몰리게 된다. 많은 시간을 바친 음악을 포기하고 갑자기 뭐라도 만들어야 겠다, 특히 정말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겠다 생각하고 도큐핸즈 등의 소매점과 여러 공장들을 찾아다닌 일화들이 신선하게 다가 왔다. 어떤 영감이 그를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금속 가공이나 제품 디자인을 독학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밴드 생활을 하면서 염색했던 노란 머리 물이 빠지지도 않은 채로 막무가내로 금속 가공과 제조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던 테라오 겐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받아준 것은 도쿄의 조그만한 공장인 '가스가이 제작소'였다. 서점에서 금속과 디자인 관련 책을 찾아 보고 제작소에서 A부터 Z까지 새로운 기술을 익혀서 그가 처음 만든 것은 애플 노트북을 위한 쿨링 스탠드 'X-base'였다. 사진을 찾아보고 놀랐지만 아마추어로 시작하여 처음 수작업으로 내놓은 제품 디자인 수준이 너무 훌륭해서 충격적이었다. 뮤지션으로서의 천재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정말 제품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서는 천재가 아닐런지. 저 노트북 스탠드를 뚝딱뚝딱 만들어 하나에 3만엔씩 받고 애플 커뮤니티를 통해 알음알음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발뮤다의 시작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언젠가 끝이 난다. 인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수년 뒤의 멋진 날을 그리거나 장래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이야말로 인생의 축제날이다. 다시 말해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인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 p.80


  뮤지션을 그만 두고 장인의 느낌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테라오가 회사를 경영하는 지식이 따로 있었을리가 없어서 그는 수작업으로 만든 제품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판매해서는 매출과 영업이익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경험으로 깨우친다. 회사가 도산의 위기 직전까지 몰리고 은행에서 돈도 더 빌려주지 않는 순간, 테라오 겐은 지금 무엇이 사람들에게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발뮤다를 되살린 GreenFan을 내놓는데 성공한다. 모두가 현금을 확보해서 도산부터 막으라고 충고할 때 그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기회를 만들었다. 


그제야 나는 오랜 시간 풀리지 않던 의문의 답이 보이는 듯했다. ‘발뮤다 디자인의 제품은 왜 불티나듯 팔리지 않을까?’ 나는 지겹도록 그 생각만 했고, 단순히 제품이 비싸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드디어 알아냈다. 사람들이 발뮤다 디자인의 제품을 사지 않는 건 비싸서가 아니었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32

상황을 예전으로 되돌리는 정도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연명해봤자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상황 복구가 아니라 상황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눈앞의 경치가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듯 충격적이고 커다란 변화 말이다. - p.256

   


  왜 선풍기 바람을 사람들이 싫어할까? 강한 인공적인 바람이 아닌, 자연에서 부는 것 같은 부드러운 바람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테라오 겐의 선풍기 프로젝트. 앞의 대형 날개로 빠른 바람을 만들고, 뒤에서 느린 바람을 보내는 두번째 날개를 통해 기존의 소용돌이를 만들며 달려나가는 바람을 부드럽게 섞어서 사람에게 전달하게 만드는 이중 날개 기술의 GreenFan을 개발하여 극적으로 도산에서 벗어나 성장의 길로 회사가 안착하게 된다. 2009년의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 때 한 번 더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그 때도 승부사 기질을 통해 한국의 젊은 주부들에게 주방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되는 토스터 개발에 성공하여 위기 탈출에 성공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두려움을 딛고 인생의 즐거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문제나 도전의 기회와 마주했을 때, 그것의 가능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건 무리야.”라고 말한다면 “왜?” 하고 반문할 테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일부가 세상에 혁신을 일으킨다. - p.65


  사실 이 책은 발뮤다를 만들고 여러 제품을 만들면서 매번 위기를 겪는 내용보다는 창업자 테라오 겐이 어릴 때 사랑했던 어머니를 잃고 여행하고 방황하며, 밴드 뮤지션으로서 좌절을 겪는 내용이 더 비중있게 다뤄진다. 저자의 인간으로서의 약점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읽으면서 독자도 함께 감정이입하게 되고, 어려움 끝에 등장한 이 발뮤다라는 브랜드에 대해서도 (발뮤다 제품을 아직 산 것이 없음에도) 애착을 가지게 된다. 


  애플과 파타고니아 브랜드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는 이 열정 대단한 저자는 마치 슬램덩크의 정대만을 연상시킨다. 천재로 태어나 많은 시련을 겪고 세상 풍파에 무뎌지는 과정에도 결국 정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자세로 한계에 부딪히는 사람. 그는 인생의 새로운 꿈이 나타나면 미련 없이 발뮤다도 다른 사람에게 바통을 넘기고 그 꿈을 위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꿈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진부한 대사 또는 꼰대의 잔소리로 격하되어 버린 것만 같은 요즘에 그래도 다시 한 번 주먹 한 번 크게 쥐게 만든 좋은 책을 읽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는 것 같다고 느낄 때, 그 때 바로 인생의 경로를 완전 바꿀 수 있는 제2의 찬스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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