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삼국지 덕후라면 난징 추천 드립니다 1탄

난징 계명사, 중산릉, 명효릉 방문 후기

by 닉 캐러웨이

안녕하세요, 지난 1월, 2박 3일로 짧게 난징에 다녀왔습니다. 시간은 짧지만 중국 포함 동북아 역사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 받는 유적들을 많이 방문하여 알찬 일정이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선물해준 '자유 남편' 혜택으로 혼자 가서 유적 중심으로 볼 수 있었네요.


'난징 대학살'이라는 큰 비극이 벌어진 곳으로 기억이 강했던 곳이지만, 사실 중국 수많은 왕조의 수도로서 엄청난 영화를 누렸던 곳이 난징이죠. 삼국지 오나라의 손권이 유비의 조언을 받고 수도로 정한 '건업'이 바로 이 곳 난징이었구요. 주원장이 명나라를 개국하여 수도로 정한 곳(후에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하죠)이자 태평천국 운동의 발원지이면서 쑨원이 중화민국의 수도로 선포한 곳이기도 합니다.


고대 수도로서의 유적부터 근현대사의 흔적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다녀온 몇 곳의 짧은 후기를 적어볼게요


1. 계명사 (지밍쓰, 鸡鸣寺/鷄鳴寺)


난징 시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절입니다. 여러 번 무너지고 불타서 재건을 거듭한 절이지만 처음 시작은 서기 300년 경으로 1,700년이 넘은 고찰입니다. 이름인 '계명' 즉 닭이 우는 소리의 절도 여러 유래가 있더라구요. 단순히 과거의 주민들이 "새벽부터 닭 울음이 잘 들리는 산 위의 절"이라고 했다는 설, 삼국 시대에 제갈량이 난징 근처를 지나며 “이곳은 닭 울음이 천 리까지 퍼질 좋은 지형이다”라고 했다는 설, 옛날 이 산에 사람을 해치는 지네가 살았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닭이 울음을 터뜨려 지네를 물리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 등 많죠. 어찌 되었든 명나라 주원장은 이 이름을 무척 좋아해서 친필로 '계명사'라는 현판을 써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절 자체는 새벽부터 오픈하는데 전날 일정으로 너무 힘들어서 늦게 일어나서 8시 30분 정도에 DiDi를 타고 도착했어요. 대표 고찰 답게 시간이 지나면 많은 이들이 찾아 옵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연인이 함께 계명사에 오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징크스가 있어 데이트 코스로는 금기시되기도 하지만(중국의 덕수궁 돌담길?!), 봄철 사찰 앞 도로에 펼쳐지는 벚꽃 터널은 그 저주(?)를 잊게 할 만큼 황홀하다고 하네요. 나중에 벚꽃 필 때 또 와야 겠습니다.




계명사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 약사불탑입니다. 7층 8각 구조로 당당하게 서 있는 이 탑은 사실 여러 번의 전란으로 소실되었다가, 현재의 모습은 1980년대 후반에 다시 세워졌다고 해요. 탑을 자세히 보면 찐 목재, 석재가 아니라 튼튼한 현대 소재의 그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멋진데 가까이서 보면 읭? 하긴 해요 @_@ 그래도 이 탑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탑의 주인공인 '약사여래불' 때문인데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도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을 물리쳐주는 약사불 신앙을 무척 귀하게 여겼는데, 경주 분황사나 팔공산 갓바위처럼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하던 그 마음이 이 곳도 같구나 싶었어요.


탑을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면 약사여래불이 건강을 기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들어서 현지 분들따라 세 바퀴 돌았습니다. 왼쪽 팻말에 반대 방향으로 돌면 심한 부정이 타니 반시계방향으로 돌지 말라고 쓰여 있어요. 챗GPT와 구글 렌즈 덕에 이런 팻말도 바로바로 읽어보고 따라합니다.


난징이 자랑하는 호수 현무호에서 바라본 계명사는 사진처럼 약사불탑이 시선강탈로 서있어서 절로 눈이 갑니다.


2. 중산릉 (中山陵)


난징 와서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입니다.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을 건국한 쑨원 선생이 잠들어 있는 묘 중산릉입니다. 원래 '릉'이라는 호칭이 황제에게나 부여하는 단어인데 봉건제를 끝내고 민주 정부를 세운 혁명가에 대한 존경으로 지금 방문해도 입이 안 다물어지는 크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DiDi를 타고 중산릉풍경구에 내려서 꼭 셔틀을 타시길 추천 드립니다. 플라타너스 나무 길이 멋져서 나무가 한창일 때는 사진 찍으려는 사람으로 어마어마하다던데요, 나뭇잎 없을 때는 힘 덜 들이고 입구까지 가는게 체력 안배에 도움이 됩니다.



셔틀 내려서 처음 맞이하는 중산릉 입구의 '박애'라는 한자가 인상적입니다. 박애가 써진 대문에서도 언덕 높은 곳 있는 곳까지 한참 또 걸어야 합니다 (셔틀의 중요성)


392개의 계단이 기다립니다. 저 멀리 제당까지 이어지는 계단 수는 당시 중국 인구였던 3억 9천 2백만 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가파른 계단만 보이지만,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신기하게도 계단은 사라지고 평지만 보입니다. 이는 "고난을 이겨내면 평탄한 미래가 온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제의 난징 침공 당시 중산릉도 파괴될 뻔 했었는데요, 시가전 때문에 포격은 받았으나 다행히 유적이 다치진 않았다고 합니다. 쑨원이 지금도 대만의 국부이자, 중국 본토에서도 상당히 존경받는 인물인데 당시에 일본에서도 흠모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미 대학살과는 별개로 중산릉까지 공격했을 때 중국 민심이 돌이킬 수 없을 걸 우려한 군부가 묘 훼손 못 하도록 철저히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쑨원의 시신이 안치된 제당 앞에서 바라본 아래입니다. 생각보다 금방 올라옵니다 ㅎㅎ 제당 앞에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쑨원이 주창한 '삼민주의'의 '민족' '민권' '민생' 이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 민족주의(民族主義):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 중심의 독립된 근대 국가를 세우자는 정신입니다. 이는 당시 일제 강점기를 겪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으며, 쑨원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 사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 민권주의(民權主義):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민주 공화국을 만들자는 선언입니다. 국민이 투표권과 파면권 등을 갖는 서구식 민주주의 시스템을 중국에 처음으로 도입하고자 했던 혁신적인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 민생주의(民生主義):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자는 경제 정책입니다. 특히 토지 개혁 등을 통해 빈부 격차를 줄이고 국가의 자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쑨원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국제적으로 공식 승인하고 유지를 장제스에게 물려준 덕분에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가 미영의 반대에도 불구 한국을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고 하죠.

제당 안에 들어가면 쑨원의 좌상이 놓여져 있고 머리 위에는 중국 국민당기 (현재의 대만 국기)가 그려져 있어서 신기한 기분이 듭니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1945년 광복 직후, 환국을 앞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은 가장 먼저 이곳 중산릉을 찾아 쑨원 선생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가장 어두운 시절에 우리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임시정부를 사실상 승인해주었던 중국 국민정부와 쑨원 선생의 삼민주의 정신에 대한 깊은 감사의 인사였죠. 나중에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난징 방문 시에 중산릉을 참배하였습니다. 독립된 민주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하면서 뜻깊은 방문을 마쳤습니다.


3. 명효릉 (明孝陵, Míngxiàolíng, 밍샤오링)


중산릉을 들른 후에 중산릉 입구 근처까지 내려오면 다시 거기서 명효릉까지 가는 전기 셔틀을 유료로 탈 수 있습니다. 중산릉과 명효릉이 같은 산자락에 있어서 횡스크롤로 이동하는 느낌? 은근 거리가 있으니 셔틀 운영 구간은 셔틀 타심을 추천.


한가운데가 중산릉, 왼쪽이 명효릉 일대에요. 맨우측 영곡사까지 도는 패키지가 있는데 다 보면 쓰러질 듯...


명효릉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과 그의 부인 마황후가 잠든 거대한 무덤으로, 난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계문화유산이자 한국인들에게는 조선의 건국 모델이 된 국가 시스템의 원류를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사신이 명효릉을 참배할 수 있으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고 할 정도였다네요. 청나라 시절에도 조선 사신이 청나라 황실 몰래 명효릉을 참배하고 돌아갔다는 기록도 있대요.


주원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승려와 거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이 무덤은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만큼이나 압도적인 규모와 치밀한 설계를 자랑합니다. 명효릉의 건립에는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과 10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었으며, 이곳에서 확립된 '무덤 앞에는 신도를 두고 그 주위에 석상을 배치하는 방식'은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의 무덤 양식인 '명청황릉'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작 중산릉에서 명효릉으로 횡스크롤로 이동하다보니 산 밑자락부터 올라와야 볼 수 있는 신도와 동물 석상은 잘 보지 못하였어요.


역시나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주말 토요일이라서 나온 현지인들이 많은 것도 한 몫.



명효릉 향전 기둥에 새겨진 이 글귀들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 인물인지를 아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우선 오른쪽 사진 우측 한자 내용은 그가 맨주먹으로 일어나 난세를 평정하고 백성을 구제한 행보가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평민 출신 황제인 한나라 고조 유방의 창업 정신과 꼭 닮아 있다는 점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왼쪽 글귀는 주원장이 단순히 나라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운영의 기강과 법도를 아주 치밀하게 설계했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보다도 훨씬 더 신중하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졌다는 극찬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가 향전이에요. 과거에는 더 화려했다고 하는데 전란으로 불타고 작게 재건되었다고...



왕릉에 온건데 갑자기 눈 앞에 엄청난 높이의 망루가? 저 망루 건물이 명루(明樓)라고, 야산 크기의 무덤 앞을 지키는 최종 보스 역할 느낌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명루는 높고 견고한 석조 성벽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붉은 벽면과 황금빛 기와가 어우러진 이 2층 규모의 누각은 황실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과거 전란으로 인해 지붕이 소실되어 성벽만 남았던 아픈 역사가 있었으나, 최근 세심한 복원 과정을 거쳐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았대요.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나서 황제의 무덤이 명효릉 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겠냐며 사람을 난징으로 파견해서 자기의 무덤을 미리 벤치마킹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명루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성벽 중앙에 뚫린 어두운 터널 같은 통로를 지나야 합니다. 이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 명루 앞에 서면, 방금 걸어온 효릉의 전경과 주변을 둘러싼 자금산의 울창한 숲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나라를 건국한 황제와 중화민국을 수립한 쑨원 무덤을 하루에 다 방문하니 몸은 노곤한데 역사도 돌아보고 뜻깊고 재밌는 방문이었습니다.



2탄에서는 난징박물원, 부자묘(난징의 공자묘), 난징대학살기념관 방문 얘기를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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