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박물원, 부자묘, 난징대학살기념관
안녕하세요, 난징 역사 2박 3일 기행 1편에 이어 2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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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박물원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국립 박물관 중 하나로, 베이징의 고궁박물원,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과 함께 중국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중화민국 시절인 1933년 채원배 선생의 제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약 40만 점 이상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명·청 시대의 황실 유물과 강소성 지역의 고고학 발굴품이 매우 풍부하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베이징과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을 못 가봤지만 난징박물원 관람만으로도 먼저 대륙의 스케일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난징박물원 입장은 위챗 예약이 필수라고 들어서 위챗에 들어가 검색하고 예약을 걸었는데요, 정작 외국인은 여권 지참해서 박물원 최초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있는 그린 창구 가서 표 달라고 하면 여권번호 기재 후 입장 가능한 QR 티켓을 따로 줍니다. 외국인은 그래서 굳이 위챗 예약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입니다. 현지인은 위챗 예약 QR 찍고 입장하더라구요.
난징박물원의 메인 건물로 역사관, 예술관, 민국관 이렇게 크게 3개를 꼽는데요. 역사관만 제대로 구경해도 진이 빠지기 때문에... 저 날은 역사관 2시간, 민국관 30분 이렇게 보고 예술관 구경은 다음으로 기약했습니다 ㅠㅠ 사진이 본관인 역사관 건물이에요. 밖에서는 건물이 그렇게 안 커보이는데 실제 들어가면 엄청난 공간입니다...
대륙의 박물관 답게 석기 시대 유물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옥 장식구 등 유물만 봐도 생각보다 가공 기술이 꽤 들어가고 화려해서 제가 가진 선입견이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계층이 분화되면서 지배 계급의 무덤과 부장품이 얼마나 크고 복잡해지는지 잘 보여주고요.
전국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기 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 압도되는 느낌인데요. 철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청동기가 일상용품보다는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사치품으로 변모하던 때라고 합니다. 청동 표면에 홈을 파고 금실이나 은실을 박아 넣는 '착금은' 이라는 기술이 쓰였고 장쑤성 위치 상 '초나라'의 왕 또는 준하는 최고 귀족의 유물이라고 추정된대요.
이 옥으로 만든 수의가 난징박물원이 자랑하는 최고 유물 중 하나래요. 은루옥의 (은실로 꿰맨 옥 갑옷)!
이 유물은 서한 시대 초나라 왕(楚王) 계열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당시 중국인들은 옥이 시신의 부패를 막고 영혼을 보존한다고 믿었기에 왕족이나 최고 귀족의 시신을 이렇게 옥 조각으로 감싸 안치했다고 합니다.
수천 개의 작은 옥 조각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들었는데, 연결은 각 옥 조각 모서리에 작은 구멍을 뚫고 은실을 사용해 엮었어요. 옥을 일일이 깎고 구멍을 뚫어 실로 엮는 과정은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해서 수많은 장인들이 옥의를 만든다고 자원과 시간을 많이 썼나봐요. 훗날 조조의 아들인 위나라 조비가 사치가 심하고 도굴의 표적이 된다는 이유로 옥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시키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옥의도 사진으로 보면 감흥이 덜 한데 실물로 보면 정말 이거 만든다고 옥에 구멍 뚫고 하나하나 연결하는데 어마어마한 공력을 쏟았겠구나 하고.. 고대 권력이 얼마나 힘이 강했을지 상상해 보게 하더라구요.
명나라 영락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난징에 세운 '대보은사 유리탑'의 입구 부분을 장식하던 문입니다. 화려해서 눈이 휘둥그레... 안타깝게도 이 찬란했던 유리탑은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당시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 박물관에 있는 이 문은 출토된 파편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제작 기법을 그대로 재현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요건 원나라 시대의 정교한 옥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향로 손잡이 조각이에요. 원나라 시대는 송나라의 정교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몽골 특유의 역동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이 더해져 옥 조각 기술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고 합니다. 특히 향로 손잡이는 당시 귀족들이 향을 피우며 풍류를 즐길 때 사용하던 사치품이었다네요.
역사관에 들어가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유료로 빌릴 수 있는데요, 저는 많은 유물 다 가이드로 들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아서 구글 제미나이를 열어놓고 궁금한 유물을 찍어서 바로바로 물어봤어요. 난징박물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면 아주 정확하게 이름과 유래, 설명을 해줘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로밍 e심 사용하면 현지 폰으로는 안 되는 제미나이도 열립니다!
역사관을 휘리릭 빠르게 훑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진 2시간이 지나갔어요... 멋진 서화, 조각, 도자 등이 있는 예술관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가볍게 1930년대 난징을 재현한 민국관에 들르기로 합니다. 근대 복장을 입고 기념 촬영할 수 있는 사진관, 간식 등을 파는 식료품점, 카페 찻집 등이 실제로 운영되면서 재밌게 잘 구현해놨어요. 역사관이 부담스러우신 분은 민국관에서 사진 많이 찍으시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셔도 좋을거 같아요.
난징 가기 전에 부자묘가 유명하다고 해서 아니 얼마나 부자였던 사람이길래 묘가 유명한겨? 했더니 ㅋㅋㅋㅋ 중국의 4대 공자묘 중 하나라고 합니다 @_@
부자묘는 동진(东晋) 시기인 서기 337년에 처음 세워져서 명·청 시대에는 강남 지역의 문화와 교육의 요람이었는데요. 여러 차례 전란으로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고 현재의 모습은 1984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완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부자묘 바로 앞을 흐르는 진화강을 건너면 대성전에 도착할 수 있어요. 옛날 선비들이 시험을 마친 후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지금도 유람선을 띄우고 구경할 수 있어요. 화려하게 변신한 왕홍 언니들이 강 앞에서 사진 찍느라 바쁩니다 ㅋㅋ
이곳이 부자묘 본당 대성전 입구입니다. 유료 입장인데 이 기간 등축제가 있어서 가격이 매우 비쌌던....
입장료가 비싸서 뜨악 했지만 화려한 등불로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소수민족 옷?을 입고 열심히 라방하는 언니가... 오피셜로 하는 것도 아닌거 같은데 딱히 제지하지도 않아서 신기했네요.
대성전 앞에 공자의 제자들이 2열로 서 있고, 본당 앞에는 공자 석상이 크게 서있습니다. 대성전 들어가면 공부 잘 하게 해주세요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기원하러 온 현지 분들이 열심히 축원을 올리고 있던...
대성전 안에 공자의 일생 연대기로 옥석 벽화를 만들어 놔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공자 출생 전에 집에 기린이 와서 옥돌을 뱉고 가고.. 태어날 땐 용이 집 위를 빙글빙글 돌고... 대륙의 과장 어법이란 대단하구만 하고 웃음을 머금었네요.
부자묘 앞이 '강남공원'이라고 해서 큰 과거시험장이었다고 합니다. '중국 과거 박물관'이라고 해서 지하에 대규모 전시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거긴 못 봤네요. 부자묘 대성전 뒤편에 있던 재밌는 전시품으로 커닝페이퍼를 가득 적은 버선입니다 ㅋㅋㅋㅋ 정성이 어마어마하구나 싶어서 웃겼지요
난징에 처음 와서 공항 - 호텔 체크인 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른 곳입니다. 난징 오는 비행기에서 미리 넷플릭스로 다운 받은 영화 '난징사진관'을 보고 나서 역시 이 곳부터 들러야 겠다 마음 먹었었어요.
외국인은 꼭 여권을 지참해야 하구요 (중국 관광지 99%는 여권 필수 인듯 합니다) 외국인은 별도 부스에서 여권 등록하면 예약 없이도 티켓을 준다는 후기를 많이 봤으나 저는 7일 전에 열리는 위챗 예약 프로그램에서 예약 성공해서 입구에서 여권 스캔하고 바로 들어갔습니다.
기념관 도착하자마자 조우하는 큰 동상.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엄마를 표현한 동상을 보고 마음이 먹먹해 집니다. 옆에는 대학살 참상을 고발하는 여러 조각들이 있어요. 이미 사망한 엄마를 옆에 두고 울고 있는 첫째와 빈 젖을 빠는 둘째 아기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납니다.
공식적으로 추산된 사망자만 하더라도 30만명인 대재앙의 현장.
기념관 내부는 매우 엄숙하고 추모의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금요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난징사진관, 737 부대 등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가 연달아 개봉하면서 더 현지인들의 추모 발걸음이 많아진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학살, 방화, 강간 등 카테고리별로 악행을 고발하는 사진과 영상들이 있어 아주 어린 자녀와의 동반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집단 유해 발굴 현장으로 보존된 구역에서는 절대 사진 촬영 불가입니다.
당시 난징을 침공한 일본군이 상해로부터 난징까지 도달하는 길을 기록한 그림도 있구요.
기념관 들어서서 마주했던 두 아이와 죽은 엄마의 상황을 묘사한 글귀가 슬픕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많은 무고한 인명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힘썼던 당시 체류 외국인의 선행도 빠짐없이 기록 및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러우 전쟁에 이어 미-이란 전쟁까지 끊임 없는 전쟁의 포화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이 끝날 일은 정말 없는 것일까 먹먹한 마음을 뒤로 하고 평화 기원비 앞에서 무고한 인명이 죽는 일이 줄어들길 기원하면서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들르지 못했지만 다음에 난징에 오게 되면 손권묘, 영곡사, 오나라 성터 등을 방문해 보고 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