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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자 Apr 15. 2020

글 쓰기 신생아
브런치 작가 되다.

알맹이가 없다면 껍데기부터



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라는 행위를 동경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핑계로 글을 쓰지는 않았죠. 그저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허세 가득한 욕망만 품은 채 행동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제는 진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여전히 글은 쓰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글쓰기 태아일 뿐이었습니다.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또다시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마침내 제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브런치를 통해서 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브런치에서 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다이어리에 끄적, 휴대폰에 끄적끄적. 그리곤 혼자 보고 '그땐 그랬지' 하는 게 전부였죠. 브런치는 저에게 글을 읽는 공간일 뿐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브런치를 둘러보다 함께 글 쓸 친구를 모집한다는 글을 읽고 무작정 메일부터 보냈습니다. 행동이 필요할 때였거든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임 내에서 생에 첫 글(정확한 목적을 갖고 처음 쓴 글)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순간이었습니다.

강제 없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두고 각자가 글을 쓰면 되는 '느슨한 연대'의 모임이지만 저에겐 딱 그만큼의 동기만 있으면 되는 거였나 봅니다. 어쨌든 글 쓰기를 시작하고, 브런치 작가도 되고, 글을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글을 쓰지 못하는 혹은 글을 쓰지 않는 핑계가 남았습니다. 글 쓸 소재를 찾지 못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소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소재가 있어도 '글로 써내지 못해서'였습니다. 머릿속엔 온갖 아이디어들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들을 글로 옮겨낼 능력이 부족했죠.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안되니 아이디어는 망상에 지나지 않게 되고, 소재가 많다고 한들 글로 옮겨 적질 못하니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또다시 글 쓰는 일이 힘들어졌습니다. 글로 쓰고 싶어 제목을 주르륵 나열해 뒀는데, 제목 밑에 내용을 채울 수 있는 글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바쁜 일상을 핑계로 다시 글 쓰기를 미루게 되었습니다.


구차하지만 변명을 해보자면, 지난 몇 주 동안 정말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코로나로 정신없는 대학병원 내에서 IT 담당 업무를 하고 있는 저는 말 그대로 '갈리는 중'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을 120% 활용하여 코드를 작성해야 했고, 퇴근 후엔 다음날 갈리기 위해 충전해야 했습니다. 또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신체적,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브런치에서 만난 글 쓰기 친구들과 2주에 한편씩 공유하기로 약속했습니다. 2주 안에 한편만 써도 되는 거였는데 그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정한 약속마저 지키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자괴감까지 들었죠.


점심시간을 빌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썼던 시에 대한 글도 써보고, 여행 다니면서 겪었던 이야기에 대해서도 썼습니다. 아니, 쓰려고 시도는 해봤습니다. 하지만 모든 글에 시작만 있고 마무리가 없었습니다. '작가의 서랍'에 글이 쌓여가는데 완성된 글이 하나도 없다니! 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죠. 글 쓰기를 중단하고 쓰다 만 글들을 읽으며 원인 파악에 나섰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쓴 글들인데 어찌나 낯설던지. 가끔 정말 잘 쓴 글을 읽으면 남이 쓴 글임에도 내가 쓴 글이 아닌가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글의 작가가 독자의 공감을 잘 유도했기 때문일 겁니다. 반대로 제가 쓴 것은 글을 쓴 당사자도 공감할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스스로의 글을 냉정하게 봐야 하는 순간입니다.


제 글의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1차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표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글을 읽다 보니 전반적으로 딱딱하고 공격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온갖 무기로 무장한 침략자가 총구를 머리에 겨눈 채 평화를 노래하는 느낌이랄까요? 포장지가 위험한데 속에 무엇이 들었든 열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알맹이를 실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껍데기는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고쳐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결법을 찾으려면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공격적인 글이 된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추측해봤습니다. 첫 째는 성격의 영향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저는 직진하는 성향의 사람입니다. 표현에 있어 직설적이고, 직접적이고, 필터가 없죠. 그런 부분이 당연히 글에도 묻어난 듯합니다.

두 번째로 과거 경험에서 글 쓰기라는 행위의 목적이 어디 있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실험실 생활을 하는 동안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 또는 거칠고 공격적인 글을 쓰게끔 길들여졌습니다. 연구 계획서를 쓰거나, 실험 보고서를 쓰거나, 혹은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글을 써야 했습니다. 그런 글들이 재미있을 필요는 없었죠. 공대생들이 글을 못 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글을 잘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데이터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그 데이터를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효과적인 정보전달에는 글보다는 그래프와 사진이죠. 오랜 시간 동안 문장으로 완성된 글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글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데이터를 전할 뿐 마음을 전하는 글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공감을 얻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일단 가장 쉬운 것부터 고쳐보기로 했습니다. 싸움을 할 때 존댓말을 쓰면 미묘한 뉘앙스의 영향으로 분위기가 완화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 글 쓰기 목표로 '높임말로 글 쓰기'를 정했습니다. 알맹이가 없다면 껍데기부터 만들고 봐야겠습니다. 그럴싸한 그릇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안에 꽤 괜찮은 내용물이 들어설 자리도 생기게 될 것이라 희망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이게 그 첫 번째 글이 되겠네요.


 이 글의 발행을 누르기 전 몇 번 더 읽어보았습니다. 단지 높임말을 써서 글을 썼을 뿐인데 글이 주는 느낌이 다른 건 그냥 저의 착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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