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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자 Apr 30. 2020

못한다고 안 할 수는 없더라고요

glue is there!

* 본 매거진은 작가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짤막한 글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나가는 여정을 담습니다.


어려서부터 내 꿈은 문방구 사장님이 되는 것이었다.
비록 사장님까지는 되지 못하였으나,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학원가에 있는 문방구에서 하게 되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토요일 아침.  여느 날과 같이 문방구로 출근을 했다.
"Hi"
키 큰 백인 청년이 웃으며 가게로 들어왔다. 그리곤 내 앞에 섰다.
'이런, 나는 영어를 못 하는데 어쩌지?'
애써 손님의 눈을 피하며 모르는 척하고는 있지만, 한 가게의 직원이 손님을 끝까지 모르는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음의 준비를 하며 그의 입이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싸장님, 풀 어디 있어요?"
'풀? 풀을 찾는 것인가? 어라, 근데 나 저자의 말을 알아듣고 있어!'
외국인의 말을 알아듣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며 재빨리 눈으로 풀의 위치를 찾았다.
이제 영어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풀은 영어로 glue. 그렇다면 문장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아, 네가 찾는 풀이 딱풀이냐, 물풀이냐를 먼저 물어봐야 하나? 딱풀은 영어로 뭐지?'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하지만 입은 뇌보다 빠르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이 먼저 튀어 나갔다.
"Glue is there"
백인 청년은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가 초록색의 딱풀을 하나 집어 왔다.
"이거 얼마죠?"
그리고 유창한 한국말로 가격을 물어왔다.


저는 영어를 못합니다.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 수업이 정규 교육과정으로 채택되었고, 3학년이 되던 해의 싱그러운 봄 햇살을 맞으며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영어 수업 첫 시간에 선생님이 'A, B, C' 알파벳을 가르쳐주는데 저는 'Apple, Bear, Cat'를 알고 있었죠. 그뿐만 아니라 "Hi, My name is..."라던가,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문장까지 말할 줄 아는 영재였습니다. (진짜 영재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아, 건방진 꼬맹이. 제 인생은 바로 그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꼬마 아이가 영어문장 몇 마디 안다고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겁니다. 첫 수업 이후 영어 시간만 되면 딴짓을 했습니다. Chant를 따라 읊는 친구들 속에서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풀거나, 그림을 그렸죠. 그러는 동안 친구들은 유창하게 자기소개를 할 줄 알게 되었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고, 팝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I'm fine thank you, and you?"를 못 벗어난 저는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저는 슬프거나 화나거나, 기분이 나빴던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I'm fine" 했죠.


더 이상 친구들의 영어 실력을 따라갈 수 없게 된 아이는 영어 공부를 안 하는 이유를 합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자랑스러운 한글이 있고, 한글이 영어보다 뛰어난 언어다!'

'내가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는 게 더 마땅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채 영어를 포기한 학생이 저뿐만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영어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 혹은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가 살아온 날만큼 늘어났지만, 너무 일찍 영어를 포기해 버린 저는 여전히 영포자로 남아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것과는 별개로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을 삶의 곳곳에서 만납니다.

기대하던 회사에서 영어 면접이 잡혔을 때, 들뜬 마음으로 여행 간 외국 호텔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맞닥뜨렸을 때, 낯선 이국 땅 외진 골목에서 홀로 집시들과 마주쳤을 때 등.

그리고 무더운 여름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문구점에서도 영어는 찾아옵니다.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상대로 혼자 영어를 못 해 쩔쩔매며 땀을 뻘뻘 흘렸던 그 날, 500원짜리 딱풀을 구매하는 손님에게서 10만 원짜리 수표를 받아 들고 9만 9,500원을 거슬러주는 바람에 사장님께 심한 욕을 들었던 그 날, 한껏 주눅이 들어 손님의 귀한 편지를 코팅기에 넣어 다 태워 먹어버린 그 날. 기억하고 기록할 일들이 매우 많았던 불행한 하루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툭 내뱉어 버린 "Glue is there"였습니다. 한동안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괴로워했죠.

제 인생에서 외국인과의 첫 대화였고,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힘들게 내뱉은 한마디라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영어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여전히 영어를 못 합니다.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운 다는 것이 부지런한 사람에게 유리하다는데 날 때부터 게을러 대충 울었다는 저는 십수 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네요. 덕분에 읽고, 듣는 것은 조금 늘었지만 말하기는 요즘 초등학생보다 못하죠.

다만 자신감이 좀 생겼습니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진 못해도 일단 대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터득했거든요. 짧은 영어라도 온 마음을 다해, 말보다는 풍부한 눈빛과 몸짓을 더해 대화는 가능하더라고요. 어차피 마음속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고, 다듬고, 연습해도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This one' 이라던가 'One way trip' 따위가 전부입니다. 그래도 런던에서, 바르셀로나에서, 베니스에서, 그리고 파리에서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항상 당당하게 말했죠.

"Have a good day!"


여전히 저는 영어를 잘 못 하는 사람이고, 영어를 안 하고도 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못한다고 안 할 수는 없더라고요. 좋아하는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도 영어는 필수인 것 같은 오늘날 어떻게든 영포자 신분을 벗어나고자 열심히 무언가를 듣고 있습니다. 주위 다른 친구들은 제2 외국어로 중국어, 스페인어, 불어를 배우기도 하지만 전 일단 영어부터 섭렵해야죠. 이 마음이 며칠이나 지속될 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또 질러 보렵니다. 저 영어 공부할 거예요!


요즘에도 종종 무더운 여름날의 문방구에 서 있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 앞에는 키 큰 백인 청년이 웃으며 풀을 찾고 있죠. 그러면 저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The glue is over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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