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다 낯설지만 반가운 짧은 이야기 한 편을 발견했다.
3명의 어린이가 무궁화 꽃을 찾아서 전국 방방 곳곳 돌아다닌다는 이야기인데 제법 짜임새도 있고, 교훈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대한민국의 국화는 무궁화라는 사실을 배운 직후 방학 숙제로 제출한 소설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반전은 글을 쓴 작가가 '20여 년 전의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까지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무궁화라는 꽃이 국화라는 사실에 매료되어, 무궁화를 매개체로 한 우리나라의 민족들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근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글짓기했었나 보다.
지금의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글을 쓴 '20년 전 꽤 똑똑한 학생'의 습작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려서 나는 글을 제법 쓰는 아이였다.
독후감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글쓰기로 학교를 대표했던 적도 있었다. 취미로 시를 쓰기도 하고,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오면 다른 친구들에게 숙제용으로 팔기도 했다.
나는 그림도 제법 그리는 아이였다.
방과 후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사생대회에 나가서 상도 탔다. 10살에 그렸던 '숲'이란 제목의 추상화는 (그때 당시에 추상화가 뭔지도 몰랐다) 아는 화가분이 가져가 전시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때 화가를 꿈꾸기도 했고, 작가를 꿈꾸기도 했고,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던 꿈 많고, 감성 충만했던 아이는
공대에 진학하고, 연구원이, 또다시 개발자가 되었다.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세계에서 아등바등 살지만, 여전히 예술을 동경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의 꿈은 꽤나 분명했다. '소설 쓰는 과학자'나 '사진 찍는 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과학자나 기술자만 되기에도 현실은 꽤나 빡빡했다. (이건 꽤 합리적인 핑곗거리다)
하루 24시간 중에 법적으로 보장되는 업무시간만 12시간이 넘어갔고, 그 업무를 준비하고, 다음 업무를 위해 재충전하는데 남은 12시간을 써야 했다. 소설을 쓰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투자할 시간이 나질 않았다.
첫 월급을 타면 꼭 사겠다 다짐했던 카메라는 3번째 퇴직금을 받고서야 살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난 항상 내가 하는 일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자기 합리화형' 인간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화학실험을 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흰색의 A물질과 흰색의 B물질을 넣고, 열을 가하고, 시간만 흘려보내면 파란색의 C라는 물질이 나온다는 게 적어도 나에겐 예술과 같았다.
개발자가 되어 코드를 짜는 일 역시 재미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화면에 코드 몇 줄만 입력하면 제법 괜찮은 앱이 만들어져 화면에 결과물들이 출력되는데 나에겐 역시 예술과 같았다.
하지만 결론은 아직도 예술을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영원히 예술을 향한 꿈을 꾸며 살 것이다.
꿈만 꾸고 살 수는 없다. 더 이상 현실에 꿈을 양보하고 살 수는 없다.
무궁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3명의 어린아이가 무궁화 꽃을 찾아서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듯
꿈이란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 곳곳에 숨어있을 나의 꿈을 찾아서 여행을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