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by 글쓰는자

배달의 민족?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잘 섞는 민족이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청년, 금수저와 흙수저, 보수와 진보, 전라도와 경상도.

각종 언론과 미디어에서 연일 보도를 한다.

온갖 조건들을 들먹이며 세세하게 갈라 편 가르기를 한다.


현대인의 필수품 커피, 요즘 우리는 출근길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하여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지만, 커피가 기호식품이 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인스턴트커피 한 스푼, 프리마 한 스푼, 설탕 두 스푼을 넣고 티스푼으로 신나게 섞은 후 마셨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자판기에서 동전 몇 개를 넣고 일반 커피 한잔, 우유 한잔을 뽑아 두 개의 종이컵을 쥐고, 이리저리 섞어 나름의 카페라떼를 만들었다.


퇴근길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하며 들어간 고깃집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고야 만다.

어디 소맥뿐이랴? 대학가나 빌딩 숲 근처에 있는 골목 곳곳에선 각자 저마다의 섞어 마시는 술 레시피가 있다. 이 술과 저 술, 탄산음료나 과일향이 나는 식초, 안주거리로 시킨 과일도 좋고, 잠깐 들린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과 젤리도 좋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들이 지금 쓰게 삼키고 있는 소주와 잘 어울림을 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커피든 술이든 우리는 종종 섞어서 마신다.


Do you know K-food? 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비빔밥!

흰쌀밥과 알록달록 나물무침, 새빨간 고추장에 고소한 참기름까지 한 스푼. 섞어 먹음의 진수는 역시 비빔밥이다.

서양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예쁘게 그러나 따로따로 접시 위에 올려먹던 옥수수와 치즈를 섞어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을 알려준 민족이 누구인가? 자고로 맛있는 음식은 섞어 먹을 때 더 맛있다.

편의점에 전시되어 있는 즉석식품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은 또 어떻게 섞어 먹어볼까' 잠깐이지만 창조자가 되어 고민의 시간에 빠진다.

메인 메뉴와는 상관없이 한국인의 외식 마무리 역시 볶음밥이다. 먹고 남은 소스나 국물, 또는 기름과 같은 것들에 밥 한 주걱, 고추장 한 스푼, 김가루를 얹어 섞어 먹어야 식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MT 다음날 우리는 라면으로 해장을 한다. 신라면, 진라면, 너구리와 함께 짜파게티, 비빔면을 섞어도 불평이나 불만 없이 그 이름을 정의할 수 없는 음식 앞에 모여 다 함께 젓가락질한다.


우리 민족은 본능적으로 섞일 줄 안다.

이미 우리가 잘 쓰는 '우리'라는 말속에 가족과 친구, 학교 동기와 직장 동료, 옆 집 할머니와 앞 집 아저씨 그리고 동네 꼬맹이까지 섞여있다.

MT 가서 섞어 먹은 그 라면 앞엔 그 어떤 계급도, 경계선도 없었다. 우리는 다 같이 섞여 있었을 뿐이다.

고되고 지친 어제와 오늘, 우리 민족의 본능을 깜빡한 것이다.

손에 손잡고 기적을 이뤄낼 때도, 2002년 빨간 티셔츠를 나눠 입고 응원할 때도 우리는 그 어떤 구분 없이 섞여 있었다.

시간과 공간, 이념으로 나뉜 서울과 평양에서도 '손 맞잡고 38선을 넘는 두 남자'를 보며 같은 감동을 느낀 우리의 피는 섞여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모든 게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화는 아니다.

차이와 차별, 격차가 존재하는, 그래서 누군가는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진짜 세상이다.

그 세상 속에 나도 역시 많은 경우 차별을 받는 입장에 있다. 그리고 평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매일 투쟁하고 있다.

동시에 나는 꿈 많은 이상주의자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상적인 꿈을 꾼다.

잘 섞고, 잘 섞이는 우리 민족이 실체를 알 수 없는 구분선에 나뉘지 않고, 잘 섞임으로써 공평한 세상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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