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네가 나의 첫사랑이었지.

두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비결: 첫째에 화가 많이 난다면

by 홍작가

둘째가 태어난 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주 작은 생활의 변화에서부터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 중에 하나는 첫 째 딸아이를 대하는 나와 아내의 태도였다. 첫 째 아이의 둘째 아이의 나이차는 4살.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를 반복하여 연습하는 어린 둘 째에 비해 첫 째는 올해 유치원의 가장 높은 반인 7세 반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이제 만 5살인 딸아이는 여전히 사랑과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 왜 그랬을까. 둘째 아이에 비해 너무나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에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다. 조금이라도 두 아이를 키우는 육아의 무게를 덜고 싶었던 것이겠지. 어느새 나와 아내는 첫 째 아이를 매일 혼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안 되잖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의 모습에 연일 화를 내고 있었다. 사실 모든 게 배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인데. 아직도 무엇이든 익숙하지 않은 딸아이를 다그치는 내 모습이 때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매일 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하루 동안 첫째에게 화낸 일들을 되뇌며 후회하고 또 반성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일에 대한 다짐


이렇게 이어지던 반성과 후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던 건, 아이를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 첫 째를 갖기 전, 나는 딸을 바랐다. 물론 아들이든 딸이든 괜찮았지만, 푸른 잔디밭에서 어린 딸과 공 놀이를 하는 어느 아빠와 귀여운 딸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바람 속에 찾아온 첫 째 딸. 우리는 한강공원의 푸른 잔디에서 함께 소풍을 즐겼다. 초여름엔 텐트를 나무 그늘 아래 쳐놓고 함께 공원의 이곳 저것을 쏘다니면서 자연의 푸르름을 즐겼고,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을 공중에 흩뿌리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서울현충원에 자주 들렀는데, 넓디넓은 중앙 잔디광장은 딸아이와 맘껏 걷기에 좋았고 멋있게 굽어진 소나무는 딸아이와 놀이친구가 되었다. 자연을 직접 만지는 것보다 자연을 느끼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나무껍질을 쓰다듬으면서 거칠하면서도 때론 부드러운 느낌을 딸아이는 신기해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첫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KakaoTalk_Photo_2022-01-16-06-46-01.jpeg
아빠가 되는 것이 참으로 기쁘고 보람차게 느껴지게 해 주었던 첫 째딸


그렇게 즐거워하던 시간이 이제는 돌연 반성과 미안함의 시간으로 변하다니. 다시 바라본 나의 첫 째 딸은 키가 좀 더 크고 얼굴이 더 성숙해졌을 뿐 여전히 나에게는 그때 그 시절의 그 아이였다. 여전히 부모의 품을 파고들어 애교를 부리기를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어 몸의 이곳저곳을 쓰다듬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아이. 왜 이런 아이에게 그토록 화를 냈을까. 하염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육아로 인한 수고와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때 이른 성숙을 재촉한 것은 아닐까.


혼날 때마다 멍한 눈망울로 눈물을 흘리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에 홧김에 문을 걷어차서 발가락 언저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며 내 사연을 들은 택시 운전기사님은 '좋을 때야. 재밌게 보내. 화내지 말고.'라고 하셨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도 힘들었지만 내 동생과 나와 아옹다옹하며 보냈던 옛날의 그 시절이 제일 좋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된 지금의 내 모습.


그래, 내가 지금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구나


내 인생에 장밋빛 색깔을 물들여준 첫 딸아이와의 추억은 그 아이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일깨워주었다. 그래 첫사랑이었다. 다시 한번 그 존재만으로도 내 모든 걸 쏟아부어줬던 한 사람, 첫 째 딸.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보람이고 기쁨을 주었던 아이였다. 나와 아내는 서울의 오래된 빌라에서 이 아이를 낳고 거의 6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다. 오래된 샤시 사이로 밀려 들어오는 외풍으로 아침마다 입김이 나오도록 추웠지만 그런 집에서 조차도 첫 째 딸아이와의 즐거움 덕에 집에 대한 불편함은 잊고 지냈다. 그렇게 딸은 내게 따뜻함이었다.


나이 차이가 나는 둘째를 기르다 보면 첫 째에게는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다시 돌아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이들은 우리에게 그때 그 아이들로서 기쁨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