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육아'는 없다.

부모라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

by 홍작가

우리 가족은 자기 전에 늘 하는 게 하나 있다. 첫 째 딸이 유치원에서 가져온 영어 교재로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 책 속의 단어를 가리키면 첫 째 딸아이는 sing, dance, jump 등과 같은 단어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소리를 내뱉는다. 무대도 만들어서 하는데, 그 위에서 마치 공연을 하듯 한다. 책 속의 그림보다 더 진짜처럼 더 생동감 있게 단어를 표현하는 몸짓이 너무나 귀엽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매일매일 자기 전에 즐거운 영어 공부를 한다. 아니 '영어 놀이를 한다'가 맞겠다.

아빠 무릎에 앉아 노는 아이

이런 모습을 매일 본 우리 둘째 딸은 그 모습이 너무나 즐거워 보였는지 틈만 나면 언니가 쓰는 책을 가져와 들이민다. 밑도 끝도 없이 읽기를 반복하라는 손짓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무한 반복으로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모든지 보이는 대로 따라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때이기 때문일까. 영어 놀이도 하고 싶은가 보다. 심지어는 무릎에 와서 앉아서 자리를 잡는다. 시킨 게 아닌데 언니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아서 인지 스스로 와서 엉덩이를 들이민다. 또한, 이제 고작 생후 13개월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읽어주는 게 조금 귀찮아서 대충 읽어주면 둘째는 짜증을 부린다. 보통이 아니다. 뭘 모르는 게 아닌 '뭘 좀 아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는 거다.


이뿐만 아니다. 식사를 하는 모습도 모두 따라 하고 싶어 한다. 가족이 먹는 음식부터 숟가락, 젓가락질 까지. 둘째는 이유식을 하지만 끼니때마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가족이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를 늘 관심 있게 쳐다본다. 우리 집은 쌈채소를 종종 식탁에 올린다. 그런데 쌈채소가 식탁에 오르면 자신의 키에 비해 높은 식탁에 겁 없이 기어올라 상추나 깻잎 등을 손으로 움켜잡으려고 한다. 그래서 제지하려고 하면 또 짜증 일색. 결국 손에 거머쥐고 만다. 아직 젖니가 완전히 다 나지 않았지만 손에 쥔 잎채소를 혼자서 물고 뜯으며 맛을 본다. 이런 걸 두고 '자기 주도 식습관'이라고 하는 것일까.


왼쪽: 아침에 일어나면 책을 뒤적거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 / 오른쪽: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온 베틀을 노끈으로 만들어보고 있다.

우리 집에는 장난감이 별로 없다. TV도 없다. 그러다 보니 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7-8개월 된 둘째에게도 장난감이라고는 딸랑이 1개뿐이어서 중고로 몇 개더 구매할 정도였다. 그 외에는 더 장난감을 사지 않았다. 첫 째도 장난감이 별로 없다. 그동안 잘 가지고 놀지 않아서 딸아이의 눈 밖에 나는 장난감들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잘 가지고 노는 것들만 따로 모아두곤 했다. 그러다 보니 블록과 인형 몇 개 소꿉놀이 세트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대신 우리 부부는 거실 벽면을 한 가득 메운 책장에 첫 째의 관심과 흥미를 고려해 좋아하는 책들로 채워 넣었다. 그래서 첫 째 딸아이의 놀이터는 바로 책이 가득한 거실 되었다. 물론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맘에 드는 그림을 그리고 오려서 종이인형으로 가지고 놀거나 책의 인물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로 재창조하여 그림을 그리곤 한다. 이제는 그렇게 만든 인형과 그림이 남은 장난감보다도 훨씬 많다. 너무 많아서 몰래 처분한 적도 있지만 끝이 없다. 처분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분량이 늘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언제쯤 깨끗한 집안에서 살아볼까'하지만 당분간 그럴 일은 없으니 맘을 내려놓았다.


책 뽑기 놀이 중

이렇게 책을 보며 노는 언니를 늘 보아서인지 둘 째는 일찌감치 책장의 책들에 관심을 보인다. 그 1순위가 언니의 영어 팸플릿 책이었고 두 번째가 가벼운 종이 재질로 되어 있는 영어 원서다. 한창 뽑기를 좋아하는 때라 심심하면 책장에 꽂혀있는 가벼운 영어 원서를 모두 가차 없이 뽑아서 거실 바닥에 내팽게친다. 뒤도 안 돌아보고 무조건 책을 잡히는 대로 뽑아서 뒤로 던진다. 맞으면 꽤 아프다. 지난번엔 '책 뽑기나 하면서 놀아'하며 지켜봤는데, 정말 뽑아서 내팽게친 책들로 거실이 엉망이 됐다. 얼마나 많이 뽑았는지 나 혼자서 치우는데 꽤 오래 걸렸다.

혼자 책을 뒤적거리는 둘째

어쨌든 첫째와 둘째는 모두 책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책 자체가 아이들에게 친근한 놀잇감이 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나는 어릴 때 과학전집 딱 한 세트밖에 없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도 결혼을 하고 나서다. 어릴 적부터 책은 읽고 싶어도 낯설고 지루한 존재였다. 그런 인식은 책은 나에게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내게 가장 익숙한 책은 그나마 교과서였는데, 교과서는 일종의 내용 요약본이고 설명문 그 자체이기 때문에 책 읽기에 흥미를 갖게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성적을 잘 받아야만 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만약 우리 집에 책이 많았더라면, 엄마 아버지가 어릴 때 책을 자주 읽어 줬더라면, 책을 친구 삼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요즘 'ㅇㅇ육아법''ㅇㅇ교육법'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마치 그런 육아법이나 교육법이 정말로 있는 것 같은데, 사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한 이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육아법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고안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특정 육아법이 내 아이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면 해봐도 좋다. 그렇지만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어떤 육아를 하든지 자녀교육의 핵심은 모두 부모 자신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환경으로 자양분 삼아 아이들은 자라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느냐가 결국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곧 교육으로 이어진다. 이런 육아 저런 육아 사실 너무나 많고 따라 해보고 싶지만 부모가 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하지 않는다. 채소를 전혀 먹지 않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채소는 몸에 좋으니 잘 먹어야 한다.',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 일뿐이다. 책을 읽지 않는 부모에게서는 책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자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모두 부모를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아이의 말투에 내 말투가 베어 나올 때. 아내는 첫 째 딸아이가 가끔씩 내 말투를 흉내 낸다고 내게 말해준다. 난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래서 가끔 나는 내가 무섭다. 내가 아이들의 좋지 않은 미래가 될까 봐. 모든 육아서는 다양한 육아법을 설명하지만 결론은 늘 같다.


부모의 삶이 곧 아이들의 삶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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