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9 커뮤니티 디자이너의 일상 #5
소도시 작은 마을의 아침, 곧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여기는 공주 원도심의 코워킹스페이스(공유사무실) 업스테어스. 지금은 날씨 좋은 가을 토요일 아침 9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 순간 앞 테이블에서는 오늘의 프로젝트를 준비하신 회사의 대표님도 일을 시작하셨다. 쾌청한 날씨에 어울리는 카페 음악을 틀어놓고 각자의 일에 바로 빠져든다. 하지만 한 시간 뒤에는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오늘은 원도심 마을의 빈 공간(건물)에 청년들이 모여 공간과 마을을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프로그램인 '리노베이션 스쿨'의 운영진과 멘토(마스터)그룹이 사전 워크샵을 진행하는 날이다. '리노베이션 스쿨'은 일본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주)리노베링코리아에서 한국으로 도입하여 제주에서 매 년 열리고, 전주, 부산, 순창 등 전국의 각지에서도 열린다. 올해 11월에는 충남권 처음으로 공주시 원도심 마을에서 열리게 되었다.
리노베이션 스쿨 현장의 분위기는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뜨겁다. 참여자들은 2박 3일 또는 3박 4일을 거의 밤샘 작업을 통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평가도 등수도 상금도 없지만 참여자들은 신나게 팀 워크에 빠져든다. 일과 놀이와 배움의 경계가 사라지고 완전한 몰입의 상태를 경험한다고 해야 할까.
딱 1년 전 공주 원도심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로 리노베이션 스쿨과 같은 몰입의 프로젝트는 점점 이곳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북클럽과 포럼 등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형식으로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만드는 동시에 무언가 신나고도 생산적(?)인 프로젝트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 주로 참여하는 대상들은 바로 '청년'이다. 청년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시골마을에서 어떤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 청년들이 마을을 다시 바라보고 마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그 키워드를 '몰입'으로 생각한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는 '마을 건축가와 함께 하는 공간 디자인 DIY 워크샵'이었다.
새로 창업한 교육 공간 '와플학당 코러닝스페이스'를 마을의 청년, 청소년과 함께 직접 디자인해보는 프로젝트. 공간을 사용하기 바라는 청년과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들을 공간에 담아내고 싶은 동시에, 새로운 프로젝트 참여와 공간 디자인의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 또 마을의 전문가와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마을 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를 바랐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당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진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4회차에 걸친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마을의 청년, 청소년들은 마을의 공간을 직접 탐방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쏟아내고, 공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하고, 공간 디자인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수료증을 받는 한 청년의 소감과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었어요." 신나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공주 원도심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첫 결과로 가장 기억에 남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마친 이후부터 현재까지 3개월 동안 청년들과 함께 세 번의 프로젝트를 더 진행했다.
충남권 대학생들과 2기수로 진행한 '지역살아보기 프로그램’, 그리고 공주시 청년과 청소년들과 진행한 '로컬 콘텐츠 발굴단' 프로젝트. ‘지역살아보기 프로그램’은 공주 원도심 마을에서 3박 4일간 머물며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탐구하고, 지역의 상황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본다. ‘로컬 콘텐츠 발굴단’은 지역의 자원을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발굴하고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제작해보는 콘텐츠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역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의 최종 피드백 시간을 통해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의 200%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과물의 우위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점수를 매기지도 상을 주지도 않는 프로그램에서 이들은 프로젝트로 다이빙하듯 깊이 빠져들었고 3박 4일의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마지막 발표 전날 밤 12시가 지나도록 최종 성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협업하며 작업하기도 했다.
공주 원도심 마을 주변으로 2개의 국립대학이 있지만,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학 주변지역에서 공주 원도심으로 '넘어 올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진행되는 북클럽과 클래스, 프로젝트를 통해 한번 원도심을 찾았던 대학생이 또 다른 프로그램 참여하기 위해 다시 마을을 찾아오고 있다. 공주 원도심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세 번째 참여하는 한 청년이 이번 '로컬 콘텐츠 발굴단'에서 기획한 콘텐츠가 인상적이다.
"공주 원도심에는 이미 너무 좋은 프로그램과 콘텐츠들이 많아요. 우리 대학교의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마을의 정보를 알리고 마을을 찾도록 도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이 청년은 마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참여자를 넘어서 마을을 알리고 새로운 사람을 연결할 주체로서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 마을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청년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프로젝트로 인해 새로운 청년 커뮤니티 형성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있다.
이 외에도 타 지역의 마을활동가들을 공주 원도심으로 모셔서 각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기획해보는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내가 직접 운영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도 운영하고 있는 공간에서 다른 주체가 진행하는 '공주를 그리다', '애니메이션 제작 교육' 등의 프로그램들. 그리고 이웃 책방, 공방, 화실 등에서 벌어지는 글쓰기 프로그램, 문화예술 교육, 마을 예술가 프로젝트 등이 상시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소위 '시골'이라고 부르는 소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입하며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어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힙한 카페나 잘 준비된 관광지만이 마을로 젊은이들을 유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또한 마을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몰입의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면 그다음은 커뮤니티의 형성이다. 아무리 좋은 이벤트라도 일회성 행사로 끝난다면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지 못한다. 마을 축제든 전시든 주민이 주체가 되지 못할 경우 행사의 기획/운영팀이 빠져나간 후 지속적으로 마을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결국 지속성이 커뮤니티의 형성과 활성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역시 '몰입의 커뮤니티'도 마을에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한다. 앞으로 공주 원도심에서는 올 연말(2020년 12월)까지 두 번의 살아보기 프로젝트와 한 번의 공간 디자인 워크샵이 추가로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로컬 콘텐츠 발굴단의 결과물 제작과 전시도 준비되어 있다. 마을의 다른 주체들이 진행하는 클래스와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약 10여 회의 프로젝트가 한 마을에서 진행된다고 보면 되겠다. 개인의 관심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특히 개성이 뚜렷한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프로젝트가 다양할수록 좋겠다. 이렇게 공주 원도심 마을은 '몰입의 커뮤니티'로 채워져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이미 '리노베이션 스쿨 in 공주'의 마스터 워크샵이 진행되고 마무리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유닛 마스터'와 나를 포함한 '로컬 마스터'와 리노베링코리아의 스태프들이 함께 공주 원도심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유휴 공간을 중심으로 어떤 비즈니스가 가능할지 아이디어를 모으는 토론을 진행했다. 이제 이 마을에서 이러한 일은 아주 익숙하다. 한 달 후 11월 6일 약 20명의 전문가와 청년들이 더 많은 사업 구상들을 더욱 디테일하게 쏟아낼 예정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프로젝트들이 예상된다. 마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주제로 함께 하는 한 커뮤니티의 한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몰입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몰입의 커뮤니티 속에서 함께 하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신나기에 일이 놀이가 될 수 있고 청년과 청소년까지 아우르는 열정과 재미로 마을을 물들일 수 있다.
2020.10.09 by 커뮤니티 디자이너, 닉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