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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샘 Nick Sam Sep 29. 2020

언택트 Un-tact 시대에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

2020.09.29 커뮤니티 디자이너의 일상 #4

1. 평택에서 새로운 북클럽이 시작된다.


평택 원도심의 작은 도서관 '통미마을작은도서관'을 방문한 지 세 번, 관장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 끝에 교육 독서모임 #미래를만드는교육읽기(미교독)의 평택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의 발걸음을 통해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북클럽이 시작되는 일은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 있고 기쁜 일이다. 특히 미교독 모임이 시작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새로운 교육 독서모임 ‘평택 미교독’이 시작되는 곳, 통미마을

올해 들어 3개의 지역에서 새로운 미교독 모임이 새로이 시작되었다. 충남 공주시, 서울 구로구, 경기 평택시. 내가 직접 운영하는 공주의 모임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개의 모임은 교육 독서모임의 확산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미교독 리더 양성과정 '디퓨저' 2기의 진행을 통해 새로운 리더님들이 시작하게 되었다. 미교독 디퓨저 Diffuser는 이름의 뜻처럼 향기가 퍼져나가듯 교육 독서모임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시작한 활동이자 프로그램이다.


2017년 작은 실험으로 시작한 디퓨저 0기는 딱 한 번의 모임으로 진행했고, 함께 한 멤버들 자체가 하나의 팀이 되어 교육기획자 그룹 소프트박스 Softbox로 이어졌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진행하지 못한 '부모 교육 컨퍼런스'를 2년간 진행했고, 소프트박스 멤버의 절반은 또다시 충남 공주시의 원도심에서 (주)퍼즐랩의 창업팀으로 새로운 커뮤니티의 실험을 하고 있다.


새로운 배움을 찾는 교육혁신가들을 위한 공간 '온더레코드'와 인연이 닿았던 2018년, 온더레코드에서 진행한 미교독 모임과 책첵토크 모임에서 만난 동료들과 디퓨저 1기를 진행했다. 미교독 북클럽의 리더로서 모임을 운영하는 자세와 철학, 모임 진행을 위해 필요한 질문의 기술들에 대해 2회에 걸쳐 알려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진 3회 정도의 새로운 미교독 기획 미팅을 통해 2019년에는 3개의 새 모임이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인천 지역의 '인천 미교독',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한 커뮤니티 '워킹패밀리 미교독', 대학생과 청년들의 모임 '미교독 Youth'.


2020년 현재는 이 모임들 중 인천 미교독만 운영되고 있으며, 다른 모임은 휴지기에 있거나 다른 주제의 커뮤니티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 미교독의 리더님은 인천 부평지역에서 어린이 도서관과 연계하여 '부평 미교독'을 새롭게 개설하셨다. 그렇게 현재 '인천 미교독', '부평 미교독' 두 개의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2. 코로나 19로 커뮤니티의 설계 과정도 달라져야 했다.


올해에는 디퓨저 2기는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실습형 워크숍 과정으로 기획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워크숍 진행은 취소했고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게 되었다. 교육과 커뮤니티 분야의 많은 팀들이 오프라인 활동이 어려워지자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한 비대면 활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소규모의 밀도 높은 대화와 대면 활동이 메인이 되는 미교독 북클럽 모임과 미교독 디퓨저 과정, 양측 모두에도 주요 활동이 불가한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주변에서는 언택트 Un-tact, 혹은 On-tact 시대에 맞춰 준비한 디퓨저 워크숍 과정을 온라인 과정으로 전환하기를 조언해 주시기도 했다.


 미교독 북클럽 모임은 Zoom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비대면 모임으로 전환하여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오프라인에 비하여 아이컨텍 eye-contact과 공감대 형성이 현저하게 어려운 온라인 화상 환경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서로 익숙한 멤버들이 많았고 계속해서 만날 수 없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비대면 북클럽 모임은 나름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비대면’에 익숙해져가는 북클럽, 우리는 만남이 필요했다.


하지만 미교독 디퓨저 과정에 대해서는 고민이 컸다. 새로운 북클럽의 리더를 양성하는 일은 모임을 운영하는 것과는 다르다. 디퓨저 과정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미교독 모임의 운영 철학과 진행 방식을 전해드리는 일, 두 번째는 교육 독서모임의 진행을 체험하고 실습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 두 가지의 목표 중 어느 하나 비대면 활동을 통해 과정의 효과와 참여자분들의 만족도를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쌍방향 소통에 제약이 많은 온라인 화상 회의 환경에서 미교독 모임 특유의 공기를 형성하고 분위기를 느끼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원래 계획대로 10인 이상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과정의 경우 더욱 높은 대화의 밀도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미교독의 모든 것을 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선택 가능한 한 가지의 다른 옵션으로는 대화 카드나 진행 매뉴얼을 만들어 판매 또는 배포하는 방법이 있었다. 미교독 모임을 알리거나 과정의 수익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효과적이기에 선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미교독 디퓨저의 목적은 스스로 새로운 모임의 시작하고 운영할 새로운 리더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나는 과거에 플랜트(발전소 등 산업 공장)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로 오랫동안 일했었다. 다양하고 복잡한 기술 기준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성과품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했던 12년의 경험은 문서화된 가이드와 매뉴얼, 도구들이 새로운 전문가를 양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미묘하고 복잡한 과정일수록 끊임없이 반복되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전문가가 된다. 그렇게 전문가가 되면 어려움 없이 자신의 일에 대해 가이드와 매뉴얼 등의 기술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즉, 매뉴얼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 핵심이지, 매뉴얼이 전문가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 하지만 많은 회사와 조직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뉴얼 제작이 인재 양성의 전부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북클럽과 커뮤니티의 리더를 양성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교독 모임의 정체성과 철학을 숙지하는 동시에 직접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통해 꾸준히 모임을 열고 사람들을 모으고 대화를 만들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디퓨저 2기의 새로운 리더님들을 위해서 '온라인 비대면 과정'과 '매뉴얼의 제작' 양쪽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두 가지 모두 질보다 양을 우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나는 단 한 명의 리더를 돕는 과정이더라도 최고의 질을 선택하고 싶었다.


3. 그렇게 생각하니 워크샵이라는 과정의 형태를 새롭게 변형할 수 있었다. 


바로 '맞춤형 컨설팅'이다. 대면 만남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 만나지 않는 언택트 Un-tact를 선택하기보다는 정말 만남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새로운 미교독 모임을 필요로 하는 지역과 사람이 있다면 그곳으로 찾아가 비교할 수 없는 밀도의 과정을 통해 미교독의 모든 것을 전해드리자. 그리고 그 지역, 그 리더님의 상황에 맞춰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모임을 함께 설계하고 기획하자. 미교독 디퓨저 2기 컨설팅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꼭 필요하고도 최소화된 만남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언택트가 아닌 마이크로택트 Micro-tact 라고 할 수 있을까나.


마침 새로운 지역 새로운 공간에서 교육 공동체의 형성과 동료 찾기를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서울 구로구의 메이커스페이스 '자유롭고 유쾌한 오늘'의 대표님과 평택시 '통미마을작은도서관'의 관장님이셨다. 워크숍으로 준비했던 과정을 컨설팅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획과 준비를 하고 두 분의 리더님들을 만났다. 컨설팅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각각 계신 곳의 상황과 커뮤니티의 경험을 정확히 파악하고 꼭 필요한 과정을 설계하기 위하여 '사전 인터뷰'도 진행했다. 과정을 먼저 시작한 구로에서는 4회의 컨설팅을 마치고 '구로 미교독'이 시작되어 이달 2020년 9월 첫 모임이 있었다.


서울 구로구 ‘자유롭고 유쾌한 오늘’에서 디퓨저2기 그리고 ‘구로 미교독’


현재 컨설팅이 진행 중인 평택에서는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 '평택 미교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컨설팅을 마친 후 리더님만의 새로운 모임으로 시작하실지, '미교독'의 이름으로 함께 운영하는 모임을 시작하실지 선택하시도록 한다. 그런데 통미마을작은도서관 관장님은 일찍이 다른 모임이 아닌 '평택 미교독'을 진행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셨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연하게 시작한 리더 양성 컨설팅 과정이지만,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나 스스로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는 값진 경험이 되고 있다. 새로운 리더님 개인마다의 그동안의 커뮤니티 경험을 배경으로 공감을 만들며 필요한 지식을 전하고, 계신 지역과 주변의 환경에 맞도록 새로운 북클럽을 설계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운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 끝에 '미교독'이라는 커뮤니티에 한 배를 타고 새로운 항해를 이어갈 동료가 생겨난다.


4. 커뮤니티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하지만 어떠한 시대가 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후에 컨설팅 과정의 사례가 더욱 다양해진고 난 후에는, 더욱 질 높은 단체 워크숍이나 비대면 과정, 그리고 매뉴얼과 툴킷 등의 제작도 가능하겠지. 조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능한 수준에서 마이크로택트 Miro-tact를 이어가야겠다. 내가 미교독 모임을 처음 기획하고 시작했던 시기를 돌이켜본다. 당시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중요했던 만남들은, 참여하고 있던 다른 북클럽의 리더님들이나 새 모임을 함께 운영하고 싶은 동료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이루어진 만남들이다.


‘평택 미교독’의 리더님들과, 북클럽이든 컨설팅이든 우리은 같이 배운다.


평택에서의 디퓨저 컨설팅 중 관장님께서 이 과정이 다른 프로그램들과 매우 다르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지식과 노하우를 전해받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같이 배운다'는 느낌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느끼시는지, 그리고 함께 배우는 모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대화든 배움이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같이 배우는 기회'로 만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커뮤니티의 설계, 그리고 미교독 북클럽 운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디퓨저 과정 중에 그것을 느끼고 알아주신 리더님께 너무도 감사했다.


커뮤니티 디자이너로 일하는 과정 자체가 상황에 맞는 만남을 만들고, 효과적인 대화를 통해 함께 배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동료가 생겨나는 일임에 행복을 느낀다.


2020.09.29 by 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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