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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샘 Nick Sam Jan 15. 2019

세상 속 나의 위치 찾기

나는 어떻게 교육 독서모임 운영자가 되었나?


1. 나의 일, 나의 정체성


  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함께 책을 읽고 배워가는 모임은 없을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 *미래를 만드는 교육 읽기(약칭 미교독)은 올해(2019년)로 4년째 운영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다. 매달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관련된 책을 읽고 오프라인으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2015년 10월 작은 스터디룸에서 몇 명의 청년들과 함께 시작한 미교독 모임은 해가 갈수록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연결점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과의 새로운 연결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모임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최근에는 독서모임을 넘어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함께 할 동료들이 생겼고 배움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나는 ‘교육’이라는 주제만 다루는 특별한 독서모임의 리더로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원래 공부한 전공과 생계를 위한 직업은 교육 분야와 관계가 없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기계분야 설계 엔지니어로 10년을 일했다. 모임은 직장 생활과 병행하여 업무 외 시간에 진행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지금은 잠시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동시에 독서 모임을 확대할 수 있는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복직이 다가오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여 교육 분야에서의 일을 나의 본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전공이나 직업과 관계없는 새로운 분야에서 모임을 이끌며 삶의 전환을 꿈꿀 수 있게 되었을까? 미교독 모임을 시작하고 진행해온 과정을 소개하고, 삶의 전환을 위한 작은 시작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2. 나의 새로운 위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듯 회사에서의 일은 힘들고 바쁘면서도 지루하고 답답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 속에서 느껴지는 한 해 한 해는 점점 더 비슷해져 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속초 바다에서

첫 번째 사건은 자녀가 태어난 것이다. 


태어난 아이는 사랑스러웠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나는 아이가 잘 자라도록 도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육아와 교육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를 통해 알게 된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은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자란 교육 환경과 많이 달랐다.


아이들은 마음껏 놀고, 스스로 흥미와 호기심에 따라 다양한 관심사를 찾고, 시도하고 몰입하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주체적이면서도 풍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넓고 깊은 독서가 필요하고,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적절히 표현하며 타인을 설득하거나 협업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많은 선진국들이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계속 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자라면서 이런 것들을 배우고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내 주위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이런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과거에 내가 받은 교육은 오직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도 주입식 교육과 입시경쟁의 구도는 건재하며, 오히려 과도한 사교육으로 교육 기회에 대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고민은 깊어져 갔다. 점점 더 교육에 대한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나는 교육 문제 앞에 선 부모였다.


두 번째 사건은 회사 밖 독서 모임과의 만남이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책을 좋아하게 된 나는 많은 책을 읽는 독서가들과 교류하며 배움을 얻고 싶었다. 페이스북에서 ‘독사모’라는 독서 그룹에 가입했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매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들만 나누던 내게 회사 밖의 독서 모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나이,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번에 들을 수 있었다. 책을 매개로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데서 얻을 수 있는 배움, 그리고 그 배움의 기쁨. 그것은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을 다녀온 날은 지적 흥분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회사 밖의 독서모임에서는 내가 가진 생각과 고민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느슨한 연결 덕분이다. 꾸준히 교육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었던 나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되었다. 교육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나 목표를 가진 분들과는 따로 소통하거나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독서 모임에 익숙해지고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교육 분야만 다루는 독서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독서 모임이 없을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지만 찾기 쉽지 않았다. 독사모 모임에서 교육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몇 분과 고민을 나누었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떤 모임으로 만들어갈지 의견을 나누며 6개월 정도 구상하는 시간을 가진 후 3명의 운영진으로 교육 분야 독서 모임 ‘미교독’을 시작했다. 고민하던 교육 문제에 대해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위치로 한 걸음 다가섰다.

교육 독서 모임 '미래를 만드는 교육 읽기' 간판 이미지


3. 새로운 위치에서의 새로운 역할 실험


그렇게 부모가 되어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교육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독서 모임의 운영진이 되었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회사 밖에서의 시간에는 내가 가진 문제의식에 더욱 집중했다.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로 나의 위치를 옮겼다.


2018년 9월 진행한 부모 컨퍼런스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 행동하는 일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함께 하는 즐거움이었다. 모임에 참여해주시는 분들 중 기획력과 실행력이 강한 분들이 계셨다. 이런 분들과는 독서 모임과 별도로 더 적극적인 행동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 모임은 새로운 교육을 직접 시도하고 있는 교육 혁신가분들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에게는 아직도 새로운 교육들이 익숙하지 않고 정보도 부족하다. 우리는 부모님들과 교육 혁신가분들을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몇 개월 동안 준비를 한 끝에 ‘부모와 함께 하는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네 명의 연사와 서른 명의 부모님을 모시고 진행한 컨퍼런스는 성공적이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 팀으로 함께 하기에 가능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교육을 위해 좋은 취지로 운영되고 있는 새로운 공간들과도 연결점이 생겼다. 그 공간을 운영하시는 분들과 논의를 통해 새로운 독서 모임 몇 개를 시작하고 진행했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모임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모임이 많아지다 보니 앞으로 혼자서 모든 모임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독서 모임을 직접 진행하고자 하는 분들을 모시고 진행자로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모임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즐거움의 연속이었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다. 새로운 위치에서의 ‘나’(자아)와 원래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나’ 사이의 갈등이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흡수하며 달라지고 있는 나의 생각과 태도는 회사에서의 역할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며 회사 동료들에게 회사 밖의 활동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회사 밖에서의 관계가 강해지고 새로운 역할이 즐거울수록 회사 안에서의 생활과 차이가 크게 느껴져 답답하기도 괴롭기도 했다.

  

이런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책이 있다. 삶의 변화와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과정을 소개하는 책 <마침내 내 일을 찾았다>(허미니아 아이바라 저)이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정체성과 새로운 정체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과도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떠남’과 ‘머무름’ 사이에서 방황하는 과도기는 새로운 대안이 충분히 탐색될 때까지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와 심리적 결별이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인간관계에 몰입하며 새로운 공동체로 서서히 이동하게 된다. 점차 나는 이러한 과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전히 괴로움은 있었지만 한결 편한 마음으로 새로운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교독 모임을 시작한 지 3년이 흘렀다.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들 사이로 옮겨지고 있다. 모임을 찾아주시는 새로운 분들 덕분에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기기도 했지만, 도움을 얻고 싶은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로 나의 위치가 옮겨지면서 내가 해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들이 만들어져 갔다.


4. 세상에서 꼭 필요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이제 곧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게 된다. 많은 분들이 물으신다. 진짜 복직할 거냐고, 퇴사할 계획이 없냐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위치와 역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고 또 나를 진짜로 필요로 하는 곳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 예정이다. 나의 위치 찾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근 읽은 책 중 <내리막 세상을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제현주 저)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독서모임으로 시작해 뜻 맞는 동료들과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출판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협동조합 활동 이후에도 계속해서 삶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나와 우리 모임에서 닮고 싶은 하나의 롤모델이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향해 행동에 나서는 것 역시 개인이 내려야 할 선택이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나에게 닥친 문제들이 해결되는 세상을 상상하면 된다. 그리고 나의 위치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발 더 나아간 사람들 사이로 옮기면 된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선택해 보자. 세상에서 꼭 필요한 나의 위치를 찾을 때까지.



*교육 독서모임 미래를만드는교육읽기(미교독) 페이스북 페이지 링크 : www.facebook.com/REdu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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