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커넥션]과 [숨겨진 힘: 사람]을 읽고
현대사회에서는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주는 첨단 기술이 매일 새롭게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 마음 속 한구석에는 우리가 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마치 기계의 한 부품과 같다는 생각이 존재할까요? 복잡하고 불확실한 뷰카(VUCA)와 같은 시대적 환경 때문일까요?
이 추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리초프 카프라가 자신의 저서 「히든 커넥션」에서 말한 것처럼, 기술의 발전 덕택에 현대인들에게 여유가 생긴 것은 맞지만 동시에 증가하는 복잡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심화되는 경쟁 속에서 산업혁명 시절부터 공고하게 자리잡은 '기계론적' 경영방식이 이 여유를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 쓰도록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이 유혹에 넘어가는 조직은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학습능력, 융통성 등을 필요로 하며, 이는 사람을 기계부품과 같이 바라보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관점이죠.
이와 같은 논지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자기생성과 학습을 통해 변화해 나가는 생명체에서 교훈을 얻을 것을 안내합니다. 기계론적 관점에서의 지시와 통제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구성원과 조직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스스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맡길 때 그들은 혼돈의 상황을 기꺼이 감당하고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며 활발한 교류와 학습을 통해 결국 새로운 생각을 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뿐 아니라 개인 간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오갈 수 있는 열린 환경과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조직에서의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전통적 관점에서의 역할도 하는 한편, 지시·명령·통제보다 설득과 교육을 통해 구성원 스스로가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사람의 잠재력과 가치를 기반으로 성공한 기업들에 대해 조명한 찰스 오레일리와 제프리 페퍼의 저서 「숨겨진 힘: 사람」은 어쩌면 카프라의 ‘생명체로서의 조직’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카프라가 언급했던 ‘장수기업들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특징을 보인다’는 아리에 드 게우스의 기업수명조사와도 유사한 관점인데, 이 책에서는 특히 단순한 장수기업에서 더 나아가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을 이루어 낸 기업들이 가지는 특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밝혀낸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의욕적으로 일하고 스스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방식에서는 전략을 먼저 고민한 뒤 그에 맞추어 시스템과 인력을 갖추고 경영진은 목적에 맞게 잘 준수되는 지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면, 성공한 기업들에서는 신뢰, 존중, 일하는 재미, 공동체 의식 등과 같이 추구하고자 하는 근본적 가치를 먼저 정의하고 이와 합치된 경영방침과 활동을 통해 팀워크와 학습 등의 핵심역량이 발휘되도록 함으로써 다른 기업들과의 차이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여기서 경영진의 역할은 바로 ‘추구하는 가치와 기업문화를 관리’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카프라가 말하는 ‘생명체적 조직’의 모습과 유사한데요. 조직의 방향성과 가치에 공감하는 구성원들 스스로가 학습하고 잠재력을 발휘하여 변화를 주도해 갈 때 경쟁업체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성공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이 책에서는 조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특정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따라서 10%의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경쟁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기 보다, 평범한 보통 직원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 두 권의 책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다는 데에서 궤를 같이 하며, 기술이 강조되는 세상에서의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예측 불가능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조직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떠올려 볼 수 있게 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데요. 하지만 2023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확실성이라는 시대 흐름에 더하여 훨씬 더 많은 변화들을 겪고 있기에 이 책들을 수정적인 관점에서 고찰해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위 두 책에서 강조하는 공통점 중 하나는 ‘공동체 의식’에 대한 강조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상호작용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적을 향해 연대하는 모습에 대한 내용들이 이와 결부되지요. 그러나 점점 더 변화무쌍해지는 오늘날의 환경에서 이와 같은 공동체 의식을 구현하고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기업들은 고용을 중단하거나 보상을 축소하는 것만으로 이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끼리 똘똘 뭉쳐 잘 해보자’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지 않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기업들이 단순히 고용 중단을 넘어서 인력감축이나 구조조정까지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옆자리 내 동료들이 해고되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과연 이 공동체 의식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 지점에서 ‘심리적 계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심리적 계약이란 조직에 제공하는 직원의 기여, 직원에 제공하는 조직의 보상에 대한 상호간의 암묵적 이해를 말하며, 그 기저에는 ‘고용 안정성’이 위치합니다. 내가 스스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조직에 대한 신뢰와 함께, 회사의 방향성과 가치에 공감하며 공동의 목적을 향해 동료들과의 팀워크를 기반으로 즐겁게 일하는 모습 뒤에는 조직과 개인 사이의 단단한 심리적 계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의 생존이 점점 더 심각하게 위협받으면서 개인과 조직 사이의 심리적 계약이 파기되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심리적 계약의 지속성과 구속력이 약해지면 기업과 직원 모두 미래의 가치보다는 당장 손에 잡히는 이익만을 계산하게 되고, 이는 결국 공동체 의식 역시 약화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 두 책이 말하는 조직의 모습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잠재력을 중심으로 생명체와 같이 주도적으로 변화해 나가는 모습은 여전히 우리가 지향해야 할 조직의 모습으로서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현실을 고려하였을 때 공동체 의식이 가지는 의미에 있어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는 심리적 계약에 대해 재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즉, ‘고용 안정성’이라는 개념을 배제하고,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개인과 조직 사이의 상생적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심리적 계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조직에서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여 구성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함으로써 조직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구성원들은 다양한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성장을 이루며 또한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는 형태입니다. 조직과 개인이 각자의 성장을 지원하며 상생적 파트너십을 이루되, 각자의 성장을 위한 선택에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에서 고용 안정성의 개념이 배제된 심리적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심리적 계약이 기반이 되면 나 개인만의 성장이 아니라, 동료의 성장을 서로 지원하고, 조직의 성장에 다 함께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관점의 공동체 의식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위 두 책에서 언급했던 ‘공통된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 보다는 더 느슨한 형태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각자의 성장 목표가 있는 개인들이 모인 조직, 공통된 하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동료와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나의 성장도 만들어 나간다는 면에서 그러한데요. 나아가 이 조직에서 성장한 개인이 또 다른 조직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궁극적으로 전체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게 된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공동체 의식에 대한 수정적 관점은 단순히 개인과 조직 수준을 넘어 전체 사회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된다는 의미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성장 중심의 느슨한 공동체 의식으로의 전환, 오늘날 뷰카(VUCA)시대에서 필요한 조직문화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