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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스러운 통역사?

by SW

여자들은 '아줌마'스러워지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 나도 '아줌마'스러워지지 않기 위해 나름 순간의 노력을 하곤한다. 문득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티비쪽으로 목을 쭉 뺀 채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입에 먹을 것을 계속 넣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알아 챈 순간에 바로 20대 깍쟁이시절처럼 허리 꼿꼿이 세우고 고쳐앉는 등의 노력을 이야기 한다.

오늘 통역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자의 모습에 아줌마의 모습이 생겨나는 것 처럼 통역사로서의 나도 깍쟁이 아가씨로 시작하여 경력이 쌓여가며 '아줌마스러워'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역이라는 업무를 함에 있어서 '아줌마스러워'지는 것은 오히려 플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여자로서 '아줌마스러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들이 통역이라는 행위에 있어서 만큼은 플러스가 되고 있는 듯 했다.

무슨 특징이 여자로서는 마이너스, 통역사로서는 플러스가 되는 것일까?
우선 눈치따윈 없다. 내 할 말을 하고본다. 는 점이다.
깍쟁이 아가씨 같았던 초보 통역사 시절, 나는 무조건 '순차'통역은 연사의 말이 끝나고, '동시'통역은 연사와 동시에 통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외란 있을 수 없고 '끼어들기'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연사의 말이 너무 길어지면 속으로 '악!!! 너무 길어!!미치겠네..'라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동시통역 중이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일단 내뱉곤 했다.

그런데 아줌마 통역사가 되어가다보면 그런 내적 갈등따위는 없다. 내 살길이 먼저다.
(음....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각 팀별로 통역하기 정말... 힘든 분들이 있다. 중요 메세지를 저~~저~~~뒤에 말씀하시고 앞부분에는 사족을 너무 많이 다신다던지.. 중언부언, 결국은 한 문장인 말을 5분정도 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다. 그 경우엔, 동시도 순차도 어렵다.

물론 한 팀에 오래있다 보면 팀분들과 친해져서 끼어들기식 통역이 더 가능한 면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라도 통역사로 살다보면 일단 내가, 통역사가 살고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끼어들어도 될까, 무슨 뜻인지 다시 물어도 될까 등등 눈치보다보면 내 길이 막히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많다. 그래서 무조건 top!!!!!priority는 소통을 원활하게. 다시 묻더라도, 모르는건 모른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통역하기. 가 되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대충이라도, 적어도 한 두 단어라도 알아듣기 때문에 미국인이 영어로 다소 길게 이야기 한다고 해도 몸이 뒤틀릴 정도로 힘겹지는 않다. 그리고 90%이상의 미국인은 지루하게 질질 끌며 말하지 않는다. (이건 이래. 왜냐면 이래서야. 라는 식으로 말을 잘한다.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미국인 입장에서 그 긴 한국어를 다 듣는 것은 정말 곤욕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러시아어를 1도 모르는 상태에서 러시아인들과 회의를 하는데 러시아인이 한국어를 하는 통역사를 보며 길~~~~~~~게 길~~게 러시아어를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한국어의 특성 상, 한국어는 늘어지자치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길어질 수 있다. 그런 경우엔 하고 싶은 말은 꽁무니 쯤에 나오기에 동시를 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느정도 듣다가 너무 길어진다 싶고 +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통역할만한 중요 메세지가 나왔다 싶으면 그리고 미국인들의 동공에 지진 나는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바로 "잠시만요. 끊어갈게요." 라고 말씀드리고 영어로 통역을 한다. 미국인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바로 내가 입을 여는 순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액션 좋은 미국인들은 그렇게 중간중간 전달하면 "Oh, Ok." "Understands." 등으로 추임새를 넣어주고 (심지어) 질문도 한다. 미국인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매우 중시하고 또 능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일방적인 주입식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을 굉장히 오래 잘, 버틴다.

한국인이 미국인들 앞에서 발표를 하면 중간중간 질문이 계속 들어온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굉장히 직접적인 질문들이다. "왜 그런거죠?" 이해가 가지않으면 바로 이야기 한다. "I don't really get it. Could you explain again?"
하지만 미국인이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한국인들은 "Do you have any questions?"가 나올 때 까지 계속 경청한다.

그래서 양측과 함께 회의할 때는 통역사가 약간 아줌마스러워지면 좋다. 쌍방향 소통을 원하는 미국인을 위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잠시만요."라고 끊어가기도 하고,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한국인이 질문을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를 보이면 (보통 통역사 쪽을 보거나 갑자기 자세를 고쳐앉으신다.) 통역사가 오지랖 넓은 아줌마 처럼 미국인에게 "I think he has a question for you."라고 말하고 그 분을 보며 "질문 하시겠어요?"라고 물어볼 줄도 알아야 한다.

통역사가 아줌마스러워지면 진행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부끄러움 많은 아가씨보다 오지랖넓고 필요할 때에 살기위해 밀어부칠 줄 아는 아줌마스러움..
통역사가 반드시 가져야할 덕목이라고 하면 오버일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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