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칼 드림

by SW


분명, 우리 집으로 들어섰는데, 베란다 구조가 오묘하게 다르다.


안방의 베란다로 나가서 거실 쪽을 보니 휘황찬란한 모빌들이 걸려있다. 색동 부추 속에 홍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고, 저 멀리 열대우림 속에 살 것 같기도 이국적인 조류들이 화려한 색으로 치장되어 일렬로 거실에 쭉 걸려있었다.



얘네들, 어디서 났어?

남편에게 물었다.

-

“아.. 음, 아르헨티나.”


무슨 말일까, 아르헨티나에 다녀온 적도 없는 사람인데, 아르헨티나에서 이 화려하고 커다란 모빌들을 가져왔다고?


“그런데 이 모빌들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어딘가 모르게 조금 촌스러워… 왜 가져다 둔 거야?”



남편이 말한다,

“나에게도 비상식량이 필요한 법이거든!”


“비상식량?” 눈이 휘둥그레 해진 나를 데리고 모빌 가까이로 가는 남편.


모빌을 가까이서 보니 모빌의 몸통이 모두 주스다. 홍학 몸은 포도주스였다. 주스 통이 길쭉하고 주스 색이 각 동물의 몸 색에 맞춰있어서 가까이서 봐도, 주스라는 것을 듣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다.


정말 이 모빌들이 남편의 비상식량인 걸까? 그는 이 집속에서 아무도 찾을 수없고 손 댈 수 없는 남편만의 비상식량을 보관하기 위해 모빌들을 들인걸까?


남편의 당당함에, 다시 의문이 든다. 실리주의자 남편이 주스 몇 개를 숨기기 위해 거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모빌들을 가져왔다니.. 내가 이런 걸 가져왔다고 해도 하루만 전시해두고 주스만 빼고 정리하자 고 할 사람인데..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고 오묘했다.


어디서 났다고?


“아.. 르헨티나 라니까?”

나를 보고 이야기하지 않고 애먼 곳을 보며 애써 목소리를 강하게 내려는 남편의 이마 끝에 땀방울들이 생겨나는 게 보인다.


‘뭔가 감추고 있구나.’


“솔직히 이야기해.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자기는 거짓말에 재능이 없어서 거짓말하면 티가 나.

처음부터 끝까지를 차라리 다 이야기해. 필요 부분만 편집해서 이야기하는 거 다 티나.”


그렇게 남편의 모빌 채집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내가 얼마 전에 혼자 집 앞에 맥주를 마시러 갔어.


정말 혼자 맥주나 한 잔 하고 오자는 생각이었는데,

주변에 몇몇 할 일없는 놈들이 나에게 말을 걸더라고. 맥주 마시고 혼자 야구 한 게임 치러가는데도 따라오더라고.

그렇게 서로 베팅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보니, 취했나봐.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예닐곱 명의 그룹이 형성 되어 있었어.


우리는 스티커 사진 부스에서 쓰는 우스꽝스러운 큰 해피벌쓰데이 모자를 하나씩 쓰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어.


일곱 명이 일자로 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박자에 맞춰서 콩콩 뛰면서 오른 다리를 접었다가 왼쪽으로, 왼쪽 다리를 접었다가 오른쪽으로 굽혔다 펴며 방방 뛰었지.


그러다 어느샌가 저 오른쪽부터 차례로 “정확히 알아둬, 난 ~ 원해.” 틀을 사용해서 카메라를 가리키며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어.



남편은 나에게 그날 찍은 영상도 보여주었다. 편집까지 정성스레 한 영상에는 노래방 자막처럼 자막까지 흐르고 있었다.

아저씨들의 ‘취한 김에 춤추고 놀자’ 분위기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소년들, 분명 뭔가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


영상 속 사람들은 정말 열대우림의 파라다이스에 있는 것 같았다. 전혀 모르던 타인 일곱 명이 모여서 어깨동무를 하고, 다리를 굽혔다 폈다 박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홍학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떤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홍학춤에 집중하고, 당당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들의 모습이 진기했다.


한 편으로는 안에 섞여 있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남편이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다고?’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남편 차례가 왔다. 세상에서 가장 개구진 모습으로 카메라로 성큼성큼 다가선다. 그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손흥민, 정확히 알아 둬.

난, 월드컵을 직접 가서 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어깨동무 대열에 껴서 오른 다리를 접고 왼쪽으로, 왼쪽 다리를 접고 오른쪽으로 뻗는 박자에 맞춰 뛰고 있는 남편이었다.


그렇게 일곱 명의 어깨동무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오니, 본인 손에 이 휘황찬란한 열대우림 홍학들 모빌이 들려있었다고 한다.



눈을 뜨니 어두컴컴한 나의 방이다.

“착”

암막커튼을 열어보니, 원래 모습의 내 베란다가 보인다.


다시 침대에 누워 베란다를 쳐다보며 생각한다.


‘정말 신비한 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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