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사색하고, 단식을 할 뿐이다.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며, 그의 깨달음에 공감하고 교훈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싯다르타는 불교에 기반을 둔 종교적인 교리(?) 그런 느낌을 받지만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인도의 계급사회 중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인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친구인 고반다와 사문의 길로 들어선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받게 되지만 결국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다시 고행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기다리고, 사색하고. 단식한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 대한 경험도 하게 되어 여인도 만나고, 부를 축적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에 길들여지며 찌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다시 고행을 떠나 이전에 강을 건너준 뱃사공을 만나게 된다.
강을 들여다보며, 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완전한 자아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뭔가를 보며 그것의 과거와 미래를 유추하게 되고 그것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거나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 무엇도 '이전에 그래왔기 때문에', 또는 '앞으로 그럴 것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냥 그것 자체가 모든 것이었고 앞으로도 모든 것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모든 본질의 세계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피안) 그 본질을 갈구하며 찾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기에 가시적인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자꾸 뭔가를 추구하려 하지 말고 단순소박하게,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는..
이 외에도 다양한 깨달음이 그의 인생의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천천히 하나씩 새겨가듯 읽어갔다. 종교와 철학을 떠나 진정한 나를 돌아보니, 내면이라고 하는 그 미지의 공간을 한 번쯤은 깊이 들어가 나 스스로를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 방법은 나름대로 다르겠지만 언제나 바깥으로만 시선을 돌리고 뭔가를 쫓아가는 듯한 내 삶에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깨달아본다.
'그러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자아 속에 있는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내어야만 하며, 바로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탐색하는 것이요, 우회하는 길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데 불과하다. 싯다르타의 생각들은 이러한 것이었으니, 이것이 그의 목마름이었고, 이것이 그의 고뇌였다. ( p. 20)'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강물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강의 원천에서나.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도처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 p. 155)'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스님, 당신은 어쩌면 실제로 구도자일 수도 있겠군요.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p. 201)'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p. 204)'
'돌멩이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p.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