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책, 사랑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두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한 번 정도는 나도 이렇게 되돌아보고 싶어 진다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책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였다.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명확함이 흐릿함으로 변해가고 능동적보다는 수동적으로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 거기에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삶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홍석주'도 교사가 되려 했고 또 될 것이라는 모두의 생각과는 달리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들어가 교열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편집자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이 마치 도서관의 한편에서 조용히 뭔가를 읽고 있는 분위기로 조용히 차분하게 진행된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잘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응원의 메시지와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홍석주'는 책을 만드는 편집기획자이다.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완성되어 나온 그 사각의 형태에 집중할 뿐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러 과정들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고 굳이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책이라고 하는 것이 형태나 크기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거기까지 곁을 주지 않고 책을 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에세이와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적인, 흥미진진한 서사가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내면을 건드려주며 공감을 하게 되는 이런 미지근한 (?) 소설을 나는 좋아한다.
오직 나만의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분명히 이루어진 것이 있을 것이고, 나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봄날에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석주는 책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새책을 끼워 넣었다. 그 순간, 그곳의 책들이 이전과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것들은 형태나 크기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감정 같은 보이지 않은 것들이 스며든 결과물 같았다. 석주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책장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p. 84)'
'석주는 표지를 매만진 다음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그런 뒤엔 활자가 이끄는 세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독서는 내용을 파악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종이의 두께와 감촉, 미묘하게 다른 서체, 책장을 넘길 때의 감각에 집중했다. 글자들은 서로 다른 자간과 행간 속에 알맞게 자리했다. 각기 다른 세부를 통해 고유함을 부여받은 책들은 자신만의 유일한 모습으로 빛났다. 그 사각의 형태는 언어를 담기에 가장 완벽한 형식처럼 보였다. (p. 113)'
'모든 면에서 어리숙했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떤 부족함은 끝까지 남았다. 오래도록 그녀는 그 첫 미팅에서 부족했던 점을 만회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경험이 쌓여도 능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 p. 129)'
'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p.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