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매혹적인 삶을 위하여
우리는 모두 성장을 한다. 육체적인 성장 그리고 정신과 내면의 성장.
육체적인 성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정신적인, 내면의 성장의 과정은 개인마다 다른 형태로, 다른 무게로 느껴질 수 있다.
흔히 성장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을 성장통이라고 한다. 성장을 하며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 그 과정을 잘 보내고 이루어낸 결실이 지금의 '나'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민 2세대이다. 할머니 '란'은 베트남 전쟁의 시대를 살았고, 어머니 '로즈'는 어린 나이에 아들과 함께 미국이라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민자의 시대를 살고 있고, 아들인 화자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부모와 영어가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 또한 각양각색이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와 제목의 '매혹적'이라는 단어에 끌려서였다.
문장이 주는 아름다움, 그 문장 뒤에 있는 의미를 매혹적으로 느껴보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이다.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께 남기는 편지 글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 또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이방인으로서 주류가 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머니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우리 모두에게 얘기해 주고 있는 화자인 '리틀독'.
그 문장은 아름답다기보다 처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뭔가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전달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닿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이다.
한 사람의 셩장 기이고 그것이 비록 가 닿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느낌의 전해짐은 가슴속 어느 곳에서는 자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또한 누군가의 삶이기 때문에.
이 우주 속에서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지상에서 잠시 매혹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이든 그 자체로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가끔 느슨해질 때면, 저는 살아남는다는 게 쉽다는 생각을 해요. 갖고 있는 것이나, 받은 것 중에 남은 걸 가지고 그냥 앞으로 계속 움직이는 거예요. 무언가가 변할 때까지. 아니면, 마침내, 사라지지 않고도 저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전부는 폭풍이 우리를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우리는, 맞아요, 자기 이름이 아직 살아 있는 것에 붙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되는 거죠. (p. 190)'
'사람들은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지만, 사람들은 그저 그 무엇이 자신들이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될까 봐 두려워하는 거예요. ( p. 237)'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었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 ( p. 310)'
'저는 다시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무언가가 우리가 그것들을 아름답게 여겨왔다는 이유로 사냥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요. 만일 우리 행성의 역사에 비해 개개의 삶이 그토록 짧다면, 다들 말하듯이 눈 깜짝할 사이라면, 매혹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 난 날부터 죽는 날까지라고 해도, 겨우 잠깐 매혹적인 거예요. ( p.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