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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Jan 24. 2024

[리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서로에게 가 닿기를...


지난해에 화제가 되었던 소설집이다. <쇼코의 미소>와 <밝은 밤>으로 내게 각인되어 있는 작가, 최은영의 소설집.


'깊은 애정과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힐 때
한 시절 내가 건네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작품 소개 中)


이러한 감정들이 얽히게 되는 '관계'가 존재한다. 그 관계는 어떤 명칭으로 대표되지만 그 명칭이 내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나 부피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은?이라는 의문과 함께 상상을 하게 되곤 한다.

이 7편의 소설 속에는 그러한 관계들이 등장한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회사 동료, 학교 선후배, 친인척, 이모와 조카......
그들과는 일방적이지 않은, 대립되는듯한 구도의 감정들이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가까워서 그래도 될 것 같아서 함부로 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그 관계가 단절될까 봐 또 전전긍긍하는 그런 모습들..
그러한 마음들이 단단한 문장들로 표현되어 다가온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느낌을 얻게 된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작가의, 글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라는 것은 픽션이고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려고 하는 직접적인 전달의 수단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에 몰입하여 나를 대응하다 보면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하여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되기도 하고, 나의 미성숙을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동지를 만난 것 같은 흐뭇함을 느끼기도 한다.
최은영의 소설 읽기는 누군가를 새롭게 만난다는 느낌보다는 나를 돌아보게 되는, 나를 만나게 되는 그런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中)'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 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몫' 中)'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답신' 中)'



'밤 비행을 할 때면, 검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을 때면 나는 종종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이모를 느낀다. 이모의 시선은 조종실 너머에, 비행기 너머에, 밤하늘과 대기 너머에 있다. 희박한 공기와 낮은 온도, 여러 층을 올라가면 결국 사라지는 대기와 우주공간의 시작. 내가 아는 하늘은 그런 것이지만, 그런 순간에 나는 문득 옛날 사람들의 믿음을 떠올린다. 환한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만 지상에 닿는 저 너머의 눈빛이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이모에게' 中)'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소설집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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