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Jan 15. 2024

[리뷰]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눈 감지 않는다, 외면하지 않는다.

레어 키건의 한 편의 긴 시와 같은, 짧지만 긴(?) 이야기에 매료되어 읽게 된 그녀의 또 다른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고뇌하는 한 남성- 아내와 다섯 딸을 둔 석탄, 목재상인 필롱-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아일랜드이다.
혹독한 시기였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어지고, 창고보다 추운 집에서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고, 아동수당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빚이 늘고 심지어는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하는...
펄롱은 결심한다.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아이들을 무사히 교육시키며 뒷바라지하겠다고.
성탄절을 앞두고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한 소녀를 그리고 소녀들을 보게 된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소녀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의 고뇌와 갈등이 시작된다.
자신도 빈주먹으로 태어나 미시즈 월슨의 도움으로 살아왔으므로 그 소녀들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과, 지금까지 어렵게 이루어놓은 이 현실을 유지하면서 모른 척 ,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의 갈등.
성탄절을 맞이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펄롱은 과연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고뇌한다.
결국 그는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용기를 낸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보다는 지금 최악의 일-평생 지고 가야 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기대하기로 한다.

성탄절을 준비하는 펄롱의 하루이다.
마지막 배달을 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고 뒤풀이도 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선물을 사고.. 그 하루 내내 그날 수녀원에서 보게 된 소녀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사람됨이란 것 ,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작가의 절제된 문장들로 표현된다.
담담하게 펄롱의 뒤를 따라가는 글 읽기였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그에게 조금 더 다가가서....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 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히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p. 36)'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ㅡ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p. 99)'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 119)'⠀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p. 121)


#이처럼사소한것들 #클레에키건

#다산책방 #아일랜드 #소설읽기 #SmallThingsLikeThese #ClaireKeegan #북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리뷰]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 목정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