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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Jan 07. 2024

[리뷰]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 목정원

사라짐의 희미한 흔적이 주는 메시지

제목이 좋았다. 책이 예뻤다. 글이 좋았다.
무심코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고 그러다가 결국은 필사를 했다. 적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내용은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그런 책이었다.
작가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공연예술이론가'라고 소개되어 있었다.'공연'이라고 하는 것은 발생과 동시에 소멸된다는 것.. 평소에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영화나 책, 미술 등은 남겨질 수 있기에 다시 복기할 수 있지만 공연은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같은 공연을 여러 번 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공연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라짐에 대해 인정하고 그 희미해짐의 흔적을 기억해 두고자, 말이 되지 못했던 그 흔적들을 우리에게 건네주기 위해 작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연서와도 같은 ,, 그런 이야기였다.
예술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고,
우리보다는 공연에 익숙한 유럽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흥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문장의 구조, 선택된 단어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가 절제되어 표현되지만 그 안의 풍성함으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의 시선은 때로 무언가에 막히고, 충격으로 아득해지고, 성찰의 거리를 취하고, 다시금 용기와 다정으로 몰두하고, 기필코 뒤돌아 나 자신을 또한 응시함으로써 굳건해진다. 그리고 어떤 예술은 이 같은 시선의 아찔한 편력을 돕는다. 종종 그런 작품은 '스캔들을 일으킨다'라고 말해지는데, 스캔들의 어원인 스칸달론 skandalon은 '발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부리'를 의미하며, 이때 넘어지는 것 역시, 시선의 일이라 할 수 있다.( p. 55)'


'누군가 '믿는 체하려는 것'은 결국 그가 '믿고 싶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은가. 아마도 나로부터 먼 것. 멀어서 찬란한 것. 그것을 꿈꾸게 해주는 데 본디 예술의 임무가 놓여 있던 것은 아닌지, 애초에 그래서 인간은 허구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닌지.(p. 146)'


'춤을 나눠 받는 그곳에서는 모두가 당당하게 자기 몸의 생김대로 춤춘다. 그렇게 자신만이 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발한다. 춤추는 동안 그들은 자기 자신인 것에 조금도 겁먹지 않는다. 자기 자신인 채로 반드시 아름답다. 춤을 잘 추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춤추기 위해 우리 모두가 무용수일 필요는 없다. 어떤 몸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춤추는 관객이다. 나는 그것이 경이로웠다. 춤을 보는 관객이 저마다 춤추어본 경험을 가진 세계. 예술과 이토록 가까운 삶.( p. 160)'


언어를 통해 사유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선형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머릿속에 문장이 줄지어 흘러간다. 우리가 살아갈 때, 눈앞에 세계가 지나간다. 그가 없는 흐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재라는 찰나 속에 우리는 산다. 일몰의 시간, 사라지는 빛이 물들이는 하늘을 보며 옆에 선 이에게 아름답지, 말하여 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가고 없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가 우리에게 허락한 생의 방식이다.(p.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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