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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만의 작은 서재
Jan 07. 2024
[리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표현된 내 마음속의 견고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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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하루키의 신작, 그것도 장편소설. 책을 구매하고 나서 언제 읽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이걸 다 읽어버리면 또 언제까지 신작을 기다려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장편은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가 들었다면 '걱정 마세요. 저는 계속 쓰고있느니까요' 하고 대답해 주길 원한다)을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읽기 시작했고, 하루키다운 소설이라는 생각과 함께 몰입하여 700여 쪽의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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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소설의 특징은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마치 현실처럼, 너무 재미있으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서 뭔가 은유적인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뭐라고 한 줄로 요악하기는 힘들지만)
이 소설 속에는 이전의 소설에서 쓰였던 상징적인 소재들도 등장하고, 인물들도 예전에 어디선가 한 번 만난듯한, 그런데 누군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인물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서사는 거대하고 단단한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그 벽안의 도시와 벽 밖의 현실의 이야기이다. 벽 안의 도시는 그림자가 없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안은 시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책이 한 권도 없이 오로지 '오래된 꿈'들만으로 가득한 도서관이 있고, 그 도시의 유일한 통로인 문을 지키는 문지기와 그 문울 넘나들며 삶의 순환을 이어가는 유일한 동물 단각수들이 있다.
그리고 그 벽은 계속 진화하고 견고해지며 필요에 따라 그 모양을 바꾸기도 한다.
현실(우리가 믿고 있는)은 시간을 멈출 수 없고 죽은 것은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인 그런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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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와 현실사이를 오가는 화자인 나,
그리고 그 도시를 함께 만들어낸 소녀
조용한 소도시의 도서관장과 그 도서관을 찾아와 책만 읽는 옐로 서브마린 소년.
그들이 엮어가는 현실과 비현실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이야기는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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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 읽고 나 후'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점점 '아 그렇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메타포로 일관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내면, 상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대신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마음속에 아마 이런 벽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벽 너머의 생각도 어찌 보면 내 삶의 한 일부분이기에 그것을 외면하기보다는 그러한 모든 것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유연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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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있고, 쇠락하고 고요한 도시의 외곽을 함께 걷고 있는 40대의 꿈 읽는 이와 도서관을 관리하는 소녀의 뒷모습과
여름 풀밭 위에 앉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와 그 소녀의 곁에서 신기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열 일곱 소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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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저쪽이야말로 진짜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고생하며 나이 들고 쇠약해져 죽어가요. 물론 썩 재미있는 일은 아니죠. 하지만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그 과정을 이어가는 게 순리입니다. 나 또한 미흡하게나마 그에 따르고 있고요. 시간은 멈출 수 없고, 죽은 것은 영원히 죽은 겁니다. 사라진 것은 영원히 사라진 겁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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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p.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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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자신의 본체건, 그림자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예요." ( p.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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