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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Aug 23. 2024

[리뷰] 샤이닝 - 욘 포세

고요, 침묵과의 대화

지루함에 압도되어 무조건 운전을 한 남자.
자신이 하려던 어떤 일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고 그 때문에 무언가를 했을 뿐인데, 그게 바로 운전이었다.
그냥 무작정,, 우회전을 하고 다시 오른쪽과 왼쪽을 선택하고 또 좌회전을 하고...
그렇게 계속 차를 몰다 숲길로 접어들고 급기야는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숲 속에서 차가 처박히고 만다.
그리고 그는 앉아있다. 지루함이 공허함이 되고 두려움이 되고...
욘 포세의 글은 마침표가 없다. 쉼표로 구분되는 그의 글은 지난번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한 편의시詩 같다는 느낌이다.
이 남자는 이 숲 속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차를 견인해서 숲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차 밖으로 나와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찾아보지만 오히려 더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내리는 추운 숲 속에서의 고립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숲에서 순백색의 존재, 어머니와 아버지의 형체와 목소리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등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비현실적 인상황은 남자 즉 작가의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빛과 어둠의 대면, 고요, 침묵과의 대화.
형이상학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실제로 숲에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캄캄하고 폐쇄된 상황에서 꼼짝도 할 수 없을 때, 이럴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가..
이 책은 읽으면서 계속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고요함의 소리를 듣고, 침묵 속에서 신의 소리를 듣고, 이러한 문장 속에 숨겨진 의미를 내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며 과연 나는?이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나 할까.
오히려 어둠이기에 느낄 수 있는 순백색 (이 책의 원제인 'Kvitleik'는 순백색을 의미한다)의 반짝이는 존재가 우리 앞에 서 있고, 따라오라고 말하고 우리는 따라간다.. 는 마지막 구절을 읽고 책을 덮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그 순백의 공간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살아가고 있는 나를, 우리를 보게 된다.

'이 어둠은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정말 두렵다. 그런데 이것은 차분하고 조용한 두려움이다. 불안함이 없는 두려움. 하지만 나는 진실로 두렵다. 이것은 다만 한 마디 말일뿐이지 않은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수많은 움직임, 헝클어진 움직임, 거칠고 불규칙적이며 고 루지 않은 움직임들이다. (p. 26)'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내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때, 나는 들을 수 있다. 이 또한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듣고 있다. 정적을, 아무 소리도 없는 고요함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신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먼 소리를. (p. 59)'


'반짝인다는 말, 순백색이라는 말, 빛을 발한다는 말의 의미도 사라진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다. 의미라는 것, 그렇다, 의미라 는 것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모든 것은 단지 거기 있을 뿐이고, 그것들은 모두 의미 그 자체다,(p.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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