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일러두기> 외
어떤 작품을 읽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그 작품의 '제목'이다. 그 단어 혹은 짧은 문장 속에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함축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 그 내용을 유추할 수도 있고, 도무지 무슨 내용일지 상상이 되지 않다 더 궁금할 수도 있다.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수상작들은 그 제목들이 특이했다. <일러두기> <팍스 아토미카> <투 오브 어스>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이 작품의 제목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중을 유발했고 <간병인> <전교생의 사랑>은 어떤 이야기일지 짐작했기에 궁금했던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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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중력이 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다시 제자리도 돌아오게끔 하는 그 힘이.
우리의 삶, 관계에도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다시 당겨져 돌아와 있을 때는 제자리보다는 보다 좋은 상황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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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들 속에는 이렇게 멀리 던져진 인물, 상황들이 보였다. 던져진 방향과 그 각도는 제각각이었다. 그들의 관점에 치환되어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힘겨워하며 언제쯤 안전하게 다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다행인 것은 나름대로 안착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서사로, 작가들이 풀어내는 글의 힘으로 다양한 삶의 중력을 또 한 번 느껴볼 수 있었던 그런 책 읽기였다.
해마다 기대하며 읽게 되는 수상 작품집
올해의 수상작이 여느 때보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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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지만 특정 인물의 이름과 지명은 모두 지은이가 지어냈다는 말은 본문이 아니라 맨 앞의 '일러두기'에 써두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일러두기라는 게 있었네요.
미용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맡은 일을 하느라 재서는 대학사에서 수많은 책의 앞 장들을 넘겨보았다. 그저 감으로 진실해 보이는 책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지만 자신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일러두기가 상세한 책일수록 친절하게 느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네요.
왜요?
그러면 미리 이해를 구할 수도 있고 안내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 p47 '일러두기'中)'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가벼운 농담으로, 불안은 언제나 발밑이나 허공,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삶의 파편들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며 그래서 타인의 이해를 받기도 구하기도 어려운 데가 있다. 실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두려움을 완화시켜 주거나 다른 대상을 떠올릴 만한 치환적인 행동 같은 것. 검은 개를 보는 감정을 돌려세우는 일. 그리고 나는 실에게 말했다. 목줄이 풀린 크고 검은 개를 보면 그게 흰 말이라고 생각하자. 갈기도 희고 늠름하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도 해주는, 눈부신 흰 말. (p126 '검은 개 흰 말'中)'
'낮음과 없음은 다르다. 낮음은 없음이 아니다. 그러나 '극히 낮음'은 '없음'으로 여겨야 정상적인 사고다. 정상적인 사고라는 말은 무섭다. 무서워서 문을 닫고 싶었다.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없더라도 문이라는 장치의 기본값은 닫힘이다. (p136 '팍스 아토미카'中)'
'항아리는 사람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도 그렇고 사용기한이 있다는 점도 그랬다. 효력이 끝나버린지도 모르고 옥이야 금이야 아끼면 쓸모없는 게 되어버리는구나. (p273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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