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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드만의 작은 서재 Jul 02. 2024

[리뷰] 또_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물건이 주는 서사의 자락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한 번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 시간이었다. 물건이 나에게 오고, 시간이 흐르고, 그 쓰임이 다해 버려지기도 하고, 또는 그 물건에 대한 추억, 가치등으로 보관되기도 한다. 다만 그 보관과 버림에 있어서 어디에 더 내 맘이 가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정리는 잘하는 사람과, 버리지 못하고 이고 지고 지내는 사람으로 나뉘는 듯하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잘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언젠가 또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맘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끼고 사는 편이다. 그러나 그렇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존재한다. 이건 내가 처음 어디에서 산 것이고 , 이건 누구에게서 받은 것이고, 이건 그날이 생각나기 때문이고, 이건 행복했던 순간이 생각나기 때문이고 등등..

이런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묻어있는 물건들은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공감이 되었다.

우리의 삶이 정면으로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신념의 구현도 좋지만 일상의 소중함 또한 중요하다는 것, 그러한 일상을 이루고 있는 소중한 물건들에 대한 애환.

그러한 일상이 모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일상이 모여 내 삶이 된다는 것.


은희경 작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바뀌었다.

좀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글을 쓰는 사람은 (적어도 내게는) 뭔가 넘사벽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것.

다만 이렇게 작은 물건을 보더라도 그냥 느낌으로만 가지고 있는 나와 다른 것은 이렇듯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의 글을 잘 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 그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래서 요즘 나는 내 물건들을 그냥 스쳐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한 번 더 돌아보고 '아, 저건 저래서 내가 좋아하지.. 아, 저건 그때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 하는 식의 다시 보고 느끼기 체험 중이다.

너무 재미있고 기분 좋은 시간들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볍고 단순해지려는 사심이 있었다. 무겁고 복잡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때로 그 가벼움과 단순함이, 마치 어느 잠 안 오는 새벽 창문을 열었을 때의 서늘한 공기처럼, 삶이 우리의 정면에 만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것을. 신념을 구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상이 지속된다는 것이야말로 새삼스럽고 소중한 일임을. (p. 10)'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복잡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는 한 누구나 섬세함이라는 상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존재이므로 나의 틀 안에서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다. ( p. 96)'

'우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는 현재 속에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의 나에 대한 상상이 현재의 나를 바꾸는 것이라고. 그리고 과거를 장례 지내는 것은 현재의 삶에 보내는 간곡한 기도라고 좁고 어두운 동굴 속에 사랑하는 이들의 뼈를 가지런히 늘어놓았던 별의 인간, 호모 날레디가 그랬듯이 말이다.(p. 138)'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든 물건이든 필요한지 아닌지로 나누기 십상인데, 그 윗단계에는 '그냥'이라는 경지 가 있다, 고 주장해 본다. ( p. 221)'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 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 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p. 147)'

'이런 식으로 나는 또 변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모두 변하고 있다. 어제와는 조금쯤 다른 사람이고, 그리고 그 다름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되는 것이겠지.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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