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게 될 것 - 최진영

써야 하는 것이 아닌 쓰게 될 것들에 대한 이야기

'쓰게 것'이라는 제목이 좋았다. '~하게 된다'는 것은 꼭 그렇게 될 것이라는 당위성의 개념이다. 분명히 그렇게 것이라는.

쓸 것, 쓰고 싶은 것, 쓸지도 모를, 써야 하는 등등의 의미들이 있겠지만 쓰게 것이라는, 어찌 보면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주는 듯한 그 제목이 나는 좋았다. (내가 너무 내 나름대로 규정짓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 제목 하에 진행되는 내용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전쟁이라는 상황, 성장을 했어도 그 상처의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 그 경험을 통해 '함께'라는 것을 배워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체념보다는 맞서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그 외의 소설 속에도 우리가 경험한, 경험하고 있는, 경험할 여러 가지 상황들이 피하지 말고 당당해 맞서야 될 것들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AI와 공존하는 세상, 점점 젊어져 갈 노인,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기후 위기 그리고 언제나 존재하는 빈부의 격차, 질병과 죽음 등.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려진 인물들이, 즉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이야기해 준다.

최진영 작가의 글들은 일반적인 아름다움이나 감동보다는 날 것 같은 이미지로 갑자기 다가 드는 느낌을 받는다.

<구의 증명>이나 <단 한 사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정도로 작가를 만났지만 편안한 책 읽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의미는 충분히 공감하기에 언제나 궁금한 작가이다.

제목에 공감이 가서 읽어나간 8편의 이야기 또한 작가에 대한 나의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해 주었고 또 그녀가 제시하는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방법들이 나를 계속 뭔가 궁금하게 해 줄 것 같다.


선악은 나의 생존 가능성을 기준으로 달라졌다. 나는 빛도 소금도 아니다. 저주하며 희망하는 사람이다. 아주 작아지기 전에, 엄마를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인식표 대신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닌다. 엄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내 심장 가까운 곳에 나는 지금 방석을 생각한다. 집은 무너져도 방석은 파괴되지 않는다. 더러운 방석은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것을 치웠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곳에 방석이 있어 낡고 더러워졌는지 궁금해지며, 전쟁에서 살아남아 어른으로 자란 나의 마음도 그렇게 되었다. ('쓰게 될 것' 中) p. 38


어릴 때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쓴 적이 있다. 그땐 어렸으니까 어른스러운 척을 할 수도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쓸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게 뭔지 잘 모르고, 모르니까 긴장했다. 긴장할 때 나는 좀 더 이나를 신경 쓸 수 있었다.이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 어른스럽다는 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어린 시절 어른스러운 척했던 건 그 반대라고 볼 수도 있을까.('유진' 中에서) p. 76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AI가 대신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AI가 할 수 없는 일뿐이다. (.....) 인간은 AI보다 우등한가? 그 질문에 여전히 많은 인간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AI는 인간을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우등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AI가 인간보다 열등한 이유다. AI는 실행할 뿐 책임지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책임진다. ('인간의 쓸모' 中에서) p. 167


행복은 인기가 많아서 언제나 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열성적인 팬들 - 불안, 걱정, 두려움, 연민, 후회, 원망, 의심, 죄책감 등은 행복을 혼자 두 지 못하고 엉겨 붙었다. 온전하게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과연 있었던가 생각하며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생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어떤 실감도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축하한다고 말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므로 이것은 행복인가? ('차고 뜨거운' 中에서) p. 225


나는 이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앞에 내가 기억하는 미래가 나타났으므로 어느 여름날에는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고 청개구리는 사라지고,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울어버릴지도. 나는 다시 아플 수 있다.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 누구나 겪는다는 결과만으로 그 과정까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이제 나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홈 스위트 홈' 中에서)

p.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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