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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08. 2022

우리 집 라따뚜이.

아이들 채소 먹이기 - 2

 

 

채소는 장을 봐서 냉장고에 들어가면  무르기 전에 먹어야 한다. 그것도 아이들이 먹을 만하게 요리를 해서 말이다. 일종의 의무이다. 그래서 냉털 요리, 냉파 요리라고 하며 온갖 자투리 채소를 털어 먹는 요리 레시피들이 많이도 있다. 그렇게 겨우 겨우 털어서 다 먹고, 또 산다. 그리고는 또 묵히고 그러다 무르기 전에 털어서, 파헤쳐서 요리해 먹는다. 채소는 그렇다. 채소값이 비싸져 양파 한 망, 대파 한 단 값이 부담스러워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값이 너무 내려서 큰 묶음으로 싸게 팔아도 소비자로서는 부담이다. 다 먹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소량으로 깐 양파, 소량 모둠 채소 이런 건 또 비싸서 안 사게 된다. 그야말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를 아줌마 심보.


저렇게 두껍게 썰면 오래 익혀야 한다.ㅡㅡ


 우리 집의 냉파 요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라따뚜이이다. 애호박은 기본 채소로 항상 있다. 새우젓을 넣고 애호박 볶음을 해 주면 잘 먹지만, 한 번만 잘 먹는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잘 안 먹는다. 나쁜 놈들. 제육볶음 같은 요리에 넣기도 하지만, 찌끄레기로 남기 마련, 가지도 영양소가 아주 많다고 하는데 가지나물은 내가  애들 먹을 만하게 만들 줄을 모른다. 여름에 엄마나 시어머니에게서 얻어야 먹는 반찬 중 하나, 애들한테는 주로 가지로 전을 부쳐주는데 그것도 방금 부친 전 아니면 잘 안 먹는다. 나쁜 놈들. 그렇게 애호박과 가지를 끌어안고 살다가 알게 된 음식이 라따뚜이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진짜로 해서 먹어 본 것은 올해 여름이 처음이었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마토와 치즈가 들어가니 먹을 만하겠다 싶어서 처음엔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토마토, 가지, 애호박을 얇게 썰어서 토마토소스, 피자치즈와 함께 가지런히 담으면 되는데 각각의 재료를 하나씩 하나씩 쌓는 과정을 재미있어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토마토를 좋아해서 요리하며 토마토만 많이 집어먹는 바람에 나중엔 가지와 애호박만 들어갔지만, 토마토소스로 맛을 보충할 수 있어서 크게 상관없었다. 오븐에 넣고 160도 정도로 40분 정도 구워서 한 김 식힌 후 그릇에 옮겨 담아주면 훌륭한 채소 요리가 완성이다. 처음엔 재료들을 내가 칼로 썰었는데 두께가 제각각이었다. 슬라이서로 얇고 일정하게  썰면 익는 시간도 줄어들고 먹기도 더 좋다. 간단한 파스타나 빵과 함께 곁들여도 좋은데 밥반찬으로도 괜찮다. 이렇게 라따뚜이를 만들면 애호박 하나, 가지 두 개를 한 끼에 다 먹을 수 있다. 프랑스 가정식이라던데, 애니메이션에는 이 라따뚜이도 소량만 접시에 담아 소스를 둘러 서빙하던데, 여러 음식들을 코스로 새처럼 조금씩 먹는 프랑스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라따뚜이를 이렇게 많이 먹다니! 그것도 토마토소스에 치즈를 이렇게나 범벅을 해서!!  울랄 랄랄라!!!!! 하고 말이다.


 

 영화 라따뚜이에서는 이 요리가 어린 시절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 그 따뜻함과 그림움을 상징한다. 간단한 재료들로 뚝딱 만들어 내는 엄마의 음식들의 특징은 어디서도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만의 추억, 사랑, 기억이 들어간 음식을 다른 데서 찾기란 그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가정식은 단순히 입맛과 솜씨, 재료와 도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서 평론가 이고의 입으로 들어가던 생쥐가 만든 라따뚜이는, 이젠 어디서도 먹을 수 없어진 엄마가 만든 떡볶이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엄마가 만든 그렇게 맵지도 달지도 않은, 국물 젖은 채소까지 모두가 맛있는 떡볶이를 파는 식당은 단언컨대 없다.  그런 떡볶이를 어느 식당에서 만났다고 하면 정말 눈물이 나는것이 이해가 간다.


 

국적이 모호한 저녁 식사.

 

라따뚜이를 만들어 채소 한 상을 차렸다. 아이들은 라따뚜이를 잘 먹지만, 환호하진 않는다. 오븐에서 갓 나온 따뜻한 맛에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곁들여져 있어 그냥 잘 먹을 뿐이다. 채소를 많이 먹일 수 있으니 나도 좋다. 슬라이서로 채소 준비만 해 놓으면 되니 어렵지도 않다. 라따뚜이와 곁들이는 음식들은 그때그때 다른데 이번엔 닭다리살 에어프라이어 구이와 함께 먹었다. 사실 라따뚜이보다 닭고기를 더 좋아한 아이들이다. 고기 한 번, 호박 한 번, 고기 한 번, 가지 한 번, 이렇게 먹어주니 얼마나 좋던지. 이렇게 냉장고의 채소를 일부 털었다. 이제 또 사야 한다. 이게 무슨 사이클인지 도통 모르겠다.     


오븐에서 구워진 치즈가 맛의 화룡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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