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초 두 단을 사 와서 다듬어 데치기 전에 시금치와 다른 채소들을 넣고 프리타타를 만들어 먹을 생각으로 생으로 조금 남겨두었다. 한국 음식으로 시금치를 먹는 방법은 시금치나물과 시금치 된장국이지만 아이들은 시금치나물은 이에 껴서 싫다고 꽤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시금치 된장국은 국물만 떠먹을 때가 많아서 시금치나물을 먹이려면 김밥을 싸서 먹이고, 시금치 된장국에 들은 시금치를 먹이려면 밥숟갈 위에 하나씩 올려 드리는 하녀 노릇을 해야 한다.
시금치 프리타타는 요리는 알고 있었지만 만들기는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레시피를 둘러보니 이탈리아식 채소 오믈렛이고, 냉장고 채소 털이로 정해진 재료가 아닌 그냥 그때그때 있는 것들을 사용하는 듯했다. 나도 채소 재료는 일단 씻어 둔 시금치, 양파, 방울토마토, 팽이버섯, 올리브 슬라이스를 사용하였다. 버터에 양파만 살살 볶다가 시금치와 팽이버섯을 넣고 한 숨 죽이고, 오븐 용기에 넣은 뒤 계란 물을 붓는다. 계란 물에는 맛있으라고 생크림을 섞었고, 간이 되라고 파마산 치즈가루를 넣었으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치즈를 계란물을 붓는 중간중간에 섞어 넣었다. 맨 위엔 토마토 썰은 것과 올리브 슬라이스를 올리고 또 한 번 치즈를 올리니 근사하게 세팅이 된다.
살면서 닭에게 진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닭이 주는 은혜를 듬뿍 입고 살고 있다. 치킨, 백숙, 삼계탕, 그 외 닭갈비, 닭볶음탕 같은 닭고기 요리, 그리고 계란으로 만드는 수만 가지 음식들. 오늘도 계란을 여덟 개를 사용하며 닭에게 고맙다고 생각했다. 새끼 낳아 키워보니 보통 일이 아닌데, 알들을 몽땅 주면서 알만 낳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달걀은 웬만하면 난각 번호 1번이나 2번으로 사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알을 소비하고 싶어서이다. 이것 또한 내 이기심이지만 말이다.
버터에 볶은 채소와 생크림, 계란, 치즈가 오븐에서 함께 익어가니 냄새가 아주 황홀하다. 그런데 익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30분에서 길어야 40분 정도를 예상했는데 한 시간이 꼬박 걸렸다. 전자레인지나 팬에 해도 된다지만, 오븐이 주는 그을음 맛이 있어 오븐 요리는 오븐에 한다. 오븐 요리는 기다림의 시간만큼 맛이 더 들어 있다. 어쩌면 기다리느라 배가 고파져 시장이 반찬으로 추가되어 그런 지도 모르겠다. 오븐에서 꺼낸 프리타타는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었다. 겉은 노릇하게 그을린 치즈로 덮여 있었고 계란물도 탱글탱글하니 잘 익었다. 식판을 준비해 적당량을 썰어서 덜어주니 아이들은 피자처럼 보이는 계란 요리 속에 들어 있는 시금치를 보며 배신의 눈빛을 보내다 가도 맛을 보더니 잘 먹는다. 시금치는 맛도 안 난다. 버터와 치즈, 계란, 생크림의 공격에 시금치는 질 수밖에 없는 운명. 그래도 영양을 더하고, 색감을 더하고, 채소를 먹는 경험을 더해주는 것으로 시금치는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본다. 그야말로 졌잘싸.
처음 먹는 음식이라 혹시 안 먹을까바 비상용으로 통새우 패티를 구웠다. 결과는 식판 완판.
내가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며 입맛이 살짝 변하여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게 되어, 음식들이 조금 서양화되는 경향이 있다. 고추장 듬뿍 넣어 참기름 한 바퀴 두른 맛있는 시금치나물 비빔밥을 이젠 먹기 힘들다. 이미 간이 된 시금치나물을 고추장 넣고 밥 비벼 먹으면 속 쓰림이 감당이 안 된다. 순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 서양식 계란찜. 프리타타는 훌륭한 음식이었다. 적당량의 채소와 계란 단백질이 들어갔으니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을 것 같다. 거기에 치즈까지 들어갔으니 맛까지 보장된다. 영양식, 다른 말로 고칼로리.
다음번엔 샐러드용 베이비 시금치를 사면 아이들과 함께 세팅하여 오븐에 넣어도 좋을 것 같다. 토마토와 시금치,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왠지 크리스마스 느낌도 난다. 한겨울, 추운 날 먹은 오븐에서 꺼낸 따뜻한 영양식, 이탈리아 가정식이라 더니, 모든 나라의 가정식은 따뜻하고 맛있고 영양가 있다. 맛있게 먹은 한 끼, 닭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