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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16. 2022

신비한 경인선 기차

- 낙방한 나의 첫 창작 동화. 

한국사 공부하던 중에 개항기 관련 창작 동화 공모전을 보고 응시했던 나의 첫 창작 이야기.

보기좋게 탈락했지만, 내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써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잊고 있다가 브런치에라도 공유합니다. 


신비한 경인선 기차  


썡큐 티쳐, 씨유 투마로우. 허리를 굽혀 맞절을 하며 오늘의 영어 공부가 끝났어요. 리수와 나나는 나란히 손을 잡고 나와 부둣가 쪽으로 걸어갔어요. 한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오는 계절이에요. 얼었던 땅이 녹고 있어 땅이 질척하여 신고 있던 신은 금세 더러워졌지만 한결 포근해진 바람에 기분은 좋았어요. “얘, 너는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 하니? 역시 대대로 내려오는 역관 집안의 따님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 나나가 말했어요. “역관 집안의 따님은 무슨, 너 우리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엄하게 공부시키시는 줄 아니? 매일 저녁이면 이거 외라, 저거 외라, 틀렸다, 다시 따라 해봐라, 잔소리가 말도 못 해. “사부님께서 그러신다고? 언제나 너그럽고 인자하신 분일 것 같은데. “  “아니야, 나중에 코쟁이 나라로 이민을 가서 그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코쟁이만큼 영어를 잘 해야 한다며 얼마나 무서우신데. 그런데 웃기지 않니? 지나가는 양인들을 보면 헬로우? 하면서도 손만 흔드는데 우리는 허리를 숙이잖아. 아마 씨유 투마로우 하면서도 손만 흔들 텐데 우리는 맞절을 하고 말이야. 영어를 하면서도 조선식 예법을 갖추어야 하는데 우리가 영어를 양인들만큼 할 수 있을까? 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리수는 제물포마을 영어 학당 박경호 선생님의 딸이에요. 박경호 선생님의 집안은 대대로 역관이었어요. 리수의 할아버지는 청나라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역관이었고, 그 할아버지는 일본을, 또 삼촌뻘 되는 아저씨는 서역에도 다녀왔다 하시고, 또 청국에도 왜국에도 다 가보신 조상님도 계시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박경호 선생님은 청나라 말도 아주 잘 하시고, 일본어도 잘 하시고, 영어도 능숙하게 하신답니다. 여자 아이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한글을 가르쳐 주셨는데 제물포에 청나라 사람, 일본사람, 그리고 코 높은 양인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 하고부터는 리수에게 영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마을에 영어를 배우길 원하는 아이들 몇을 모아 학당을 운영하시지요. 리수, 나나, 서만이, 동국이, 근수, 거의 남자 아이들인데 리수와 나나만 여자아이에요. 리수는 스승님이자 아버지인 박경호 선생님의 수제자이지요. 발음도 좋고 아는 단어도 많아요. 지나가는 양인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에 리수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 해 준 적이 여러 번 있어서 동네에서도 제법 이름난 소녀랍니다. 나나는 조선에서 나고 자란 소녀이지만, 그 아버지는 청나라 사람이에요. 예전에 배를 타고 조선에 와서는 청나라 음식점을 차렸는데 장사가 너무 잘 되어 조선에서 눌러 살고 있지요. 나나의 성씨는 손 씨인데 사람들은 나나의 아버지를 장꾸이, 아니면 장선생 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리수는 나나가 장꾸이 아저씨의 양녀이거나 친척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청나라 말로 사장님이 장꾸이래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나나도 장나나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나나는 손나나에요. 둘은 단짝 친구랍니다. 영어 공부가 끝나면 제물포 마을 산책을 하기도 하고 집에서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하지요. 나나의 아버지 식당이 바쁜 날에는 둘이 가서 일손을 돕기도 해요. 그리고는 용돈을 받으면 눈깔사탕을 사 먹곤 하지요. 하지만 요즘엔 눈깔사탕을 사 먹는 대신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어요. 얼마 전 생긴 기차를 꼭 한번 타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까만 연기를 내며 괴물처럼 달려오는 기차를 타면 몇 시간이면 경성엘 갈 수 있대요. 경성에 가면 풍경이며 사람이며 먹을거리며 볼거리들이 이 곳 제물포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던데 과연 그 곳은 어떤 곳일까요. 리수와 나나는 너무 너무 궁금해서 매일 상상하고 그림도 그려보지요. 나나는 사실 영어공부에 큰 흥미가 없어요. 아버지께서 영어를 배워 양인들이 묶는다는 여관인 빈관에서 일을 하라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다니는거에요. 나나의 아버지는 나나가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며 양인들과도 이야기하고 본국인 청나라 말을 쓰며 청나라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길 바라세요. 그래서 손에 밀가루 묻힐 일 없이 빈관에서 곱게 일하라고 하시는데 나나는 사실 만두 만드는 만두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아버지가 크게 반대하시니 내색은 못 하지만 빈관에서 일하다가 돈을 벌면 빈관 안에서 만두를 만들어 파는 상상을 해요. 양인들에게 난생 처음 맛보는 천상의 만두를 만들어 팔고 싶어요. 그러려면 영어를 배우긴 해야 할 것 같아 리수네 영어 학당에 군말 없이 다니는 것이지요.      

겨울이 지나고 날이 포근해 지기 시작하면 제물포는 조기를 말리느라 바빠요. 생선이 흔한 바닷가 마을이지만 조기는 귀한 생선인데 해마다 이쯤 되면 조기가 많이 나와서 집에서도 종종 반찬으로 먹을 수 있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구나하고 알 수 있답니다. 리수의 어머니도, 나나의 어머니도 조기철이 되면 이집 저집으로 일손을 도우러 다니느라 바쁘세요. 그렇게 쌈짓돈을 벌어 오시면 옷도 한 벌 생기고, 신도 한 켤레 생기지요.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리수이지만 조기 철에 맡는 제물포의 생선 비린내는 왠지 모를 반가움이 있어요. 저쪽에서 뿌우 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요.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 사람들을 줄세우는 사람들의 목청 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저 배가 그 배 인가보다.” 리수가 말했어요. “그 배라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다는 그 배 말이야? “응, 맞아. 저런 배를 타고 몇날 며칠을 가야 미국에 도착 할 수 있대. 중간에 멀미가 나서 토를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래도 저렇게 가려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미국이란 곳은 경성보다 더 좋은 곳인가?” “글쎄, 내 만두가게를 낼 수 있는 곳이라면 미국아니라 미국 할아버지 땅이라도 가고 싶다. 우리 아버지한테 말씀드려 우리도 미국에 가보자 할까? 양인들이 모두 우리 아버지의 짜장면을 맛있다고 하는데 미국이라면 장사가 더 잘되지 않겠니? 지금 이 제물포에 짜장면 집이 여럿이어도 우리 아버지 따라올 솜씨가 하나도 없는데 미국엔 정말 우리 아버지가 온리 원 일 것 아니니?” “ 너희 아버지의 짜장면은 정말 맛있어. 제물포에서 최고지. 그건 인정!” “아참, 리수야. 이번 주 일요일에 양인들 여럿이 또 우리 가게에서 식사를 할 건가봐.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일손을 도와 달라 하셔. 이번에 일손을 도우면 우리 경성에 갈 기차표 값을 다 모을 수 있을 것 아니겠니?” “ 그래? 정말 잘 됐다! 이번 주엔 가게 일을 돕고 다음 주엔 경성구경을 가보자.”     

나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언제나 손님이 많았지만 가끔씩 일요일 오후에 제물포에 사는 양인들이 교회 예배가 끝난 후 함께 식사를 하러 오면 정말 바빠요. 그럴 때는 미리 언질을 주곤 하는데 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리수와 나나가 가게 일을 돕곤 하지요. 영어를 잘 하는 두 친구가 있어서 나나의 아버지도 마음이 아주 편해요. 나나의 아버지는 청나라 말과 조선어를 조금 할 수 있을 뿐이거든요. 하루 일 할 때마다 20전씩,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이니 1원을 모을 수 있을거에요. 경성까지 왕복 기차표 값이 80전이니 기차표를 사고 남는 것으로 간식을 한 번 사 먹을 생각에 두 친구는 아주 신이 났어요. 일요일 점심이 되었어요. 교회 예배를 마친 양인들이 모두 나나네 식당으로 모였어요. 리수는 양인 여자들의 옷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흰 옷만 입는 조선 사람과는 달리 빨간색, 분홍색, 짙은 남색등 색깔도 다양하고 허리를 졸라맨 긴 치마는 정말 아름다웠지요. 화려한 장식의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저 모자를 쓰면 저절로 고개를 꼿꼿하게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인들이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어요. 리수와 나나는 주문한 음식들과 물, 차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양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배웠던 영어를 공부 할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한 양인에게 이즈 잇 굿? 하고 물으니 오 유 스픽 잉글리시 하는 대답이 들리고 리수에게 이것 저것 주문도 하고 말을 걸어요. 어디에서 영어를 배웠느냐, 참 잘 하는 구나. 여기 물 좀 더 갖다주겠니, 정도의 말은 리수에겐 너무 쉬운 말이지요. 정신없는 식사시간이 지났어요. 하루 매상이 많이 올라 기분이 좋아진 나나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일당으로 30전씩이나 주셨어요. 나나와 리수는 뛸 듯이 기뻤지요. 다음 주에는 경성구경을 갈 수 있을거에요.           

리수와 나나는 예쁘게 단장을 하고 제물포역에서 만났어요. 가진 옷 중에서 제일 깨끗한 옷을 주름 없이 펴서 입고 신도 먼지와 흙을 탈탈 털어내었지요. 머리도 단정하게 빗었어요. 제물포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멋쟁이던데, 제물포에서 편하게 입던 옷차림 그대로 경성에 갔다가는 촌뜨기라고 놀림을 받기 십상일 거예요. 기차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네요. 시끄러워 귀를 막았지만 입은 활짝 웃고 있어요. 기차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요. 리수와 나나를 마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둘은 손을 흔들었어요. 아무렴 어때요. 처음 가는 경성 나들이인걸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하품이 나기 시작했어요. 어젯밤 너무 설레어 잠을 설친 까닭인지 둘은 까무룩 잠이 들었지요. 기차가 멈추는 기척이 느껴졌어요. 둘은 잠에서 깨었네요.      

“This stop is Seoul Station. The doors are on your right. “ 

“나나야, 일어나. 다 왔다.” 꾸벅꾸벅 졸던 나나를 깨워 리수는 밖으로 나왔어요. 손에는 스마트 폰이 들려 있고 예쁜 치마와 운동화를 신고 있어요. 여긴 서울역 지하철 1호선이네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분명 1900년 5월에 경인선 기차에 올랐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2022년 5월 서울역 지하철 1호선에 도착했어요. “리수야, 꿈이니 이거?” “글쎄, 꿈이라고 하기엔, 이 스마트 폰과 우리 옷차림, 길거리에 편의점, 햄버거 집이 너무 익숙한 걸. 경성구경, 아니 서울구경은 둘째 치고 일단 뭐 라도 사 먹자.” 둘은 눈에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갔어요. 능숙하게 주문을 했지요. 짜장면 하나, 짬뽕하나, 탕수육을 먹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해 군만두만 먹기로 했어요.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했어요. 둘은 분명히 박리수와 손나나, 제물포마을에 살던 두 소녀가 맞아요. 그런데 2022년 5월에 제물포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소녀들이기도 해요. 시간 여행을 한 걸까요? 나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차이나 타운에 놀러갔던 기억이 있어요. 가서 맛있는 짜장면과 만두도 먹고, 터키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지요. 그런데 제물포 마을에서 식당을 하시는 장꾸이 아버지도 생각났어요. 아버지의 짜장면과 가게에 놀러 오던 양인들, 리수의 아버지께 영어를 배우던 모습도 떠올랐지요. 이상하긴 리수도 마찬가지였어요. 리수는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3년간 일하셨던 아버지 덕에 영어가 아주 능숙해요. 미국에서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하와이에 놀러가서 휴가를 즐긴 적도 있지요. 하지만 제물포마을의 아버지의 영어학당에서 영어를 배우고 나나의 가게에서 일하며 양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던 모습도 떠올랐어요. 분명히 같은 박리수와 손나나인데 두 소녀는 지금 200년 시간을 기차로 여행한 거예요. 두 친구는 학교에서 배웠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어요.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라 사실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진 않아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제물포 마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왔는데 다시 1900년의 제물포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 시대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 보기 시작했어요. “나나야, 우리가 타고 온 기차는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분명해.” “맞아, 우리 아버지는 당시에 청나라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와서 식당을 하신 화교였나봐. 그래서 인천에 터를 잡으시고 장사를 하신거야. 그런데 리수야, 여기 지금 이 짜장면보다 우리 아버지의 짜장면이 훨씬 더 맛있지 않니? 만두도 그렇고 말이야. 내가 만든 만두가 훨씬 맛있어.” 나나는 중국음식점의 음식이 영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에요. “나나야, 너희 가게에 점심을 먹으러 오던 양인들도 우리나라를 빼앗으러 온 사람들이었을까? 착해 보였는데, 우리에게 잘 해주고 말이야.” “아니, 그냥 선교사들이었을 수도 있어. 예수님을 믿으라고 온 사람들 말이야. 그런 선교사들이 병원도 세우고, 학교도 세웠다고 나오잖아.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야.”      

리수는 문득 아버지가 말씀하신 미국 이민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리수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 리수의 집안은 대대로 역관 집안이었는데, 신분은 중인이었대요. 능력이 있음에도 양반이 아니어서 이리저리 억울한 일이 많았다는데, 신분제가 폐지되어 이제는 양반들에게 허리 숙일 일 없을거라고 기대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빨리 바뀌지 않아 아버지는 이민을 가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양반, 상민, 천민의 구분이 없는 곳으로요. 그래서 영어 학당을 하시며 밤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시키셨나봐요. 

“이민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어. 정말 조선 사람들이 이민을 떠났는지. 그 곳은 신분의 차별이 없는 세상이 맞는지 말이야.” 지금 리수의 아버지, 그러니까 박경호 선생님이 아닌 지금 2022년 박리수의 아버지와 함께 한 미국 생활은 양반, 상민, 천민의 구별이 없는 세상이었어요. 학교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라 특별한 시선을 받긴 했지만, 신분사회에서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진 않았지요. 리수는 휴대폰으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검색했어요. 스트리트 뷰를 보니 익숙한 길이 보이네요. 한국이민사 박물관 이쪽 길은 서만이네 생선가게, 저쪽 길은 근수네 쌀집, 이 근처는 동국이네 젓갈 가게 인 것 같아요. 건물들은 모조리 바뀌었지만 바다의 해안선을 보며 가늠할 수 있었어요. 바로 몇 시간 전에 떠나온 길이니까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지요. 홈페이지에서 이민 역사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볼 수 있었어요. 하와이 이민부터 멕시코 이민까지 리수와 나나가 살던 시기에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조선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어요. 세상에, 조선 사람들은 파인애플 농장과 애니깽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을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말씀 하셨던 신분제 없는 세상이 이런 모습일까요.아니면 아버지는 아는 것이 많으시니 우리 조선을 곧 잃게 될 것을 아시고 머나 먼 이국땅에서 조선의 독립 운동을 지지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학교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배울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어요. 오늘 제물포에서 경인선을 타고 온 박리수는 어제 초등학교 5학년 수업시간에 깔깔 거리고 웃던 박리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기분이에요.


시계를 보니 벌써 네 시가 되었어요. 지금 인천으로 돌아가도 어둑어둑한 시간이 되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거예요. ”나나야 얼른 돌아가자.” “그래, 그런데 우리 그냥 교통카드로 지하철 1호선 타면 되는 거니? “ “일단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금 그 경인천 기차를 찾아 탈 순 없는 노릇이잖아.” 그렇지요. 그 괴성을 울리는 까만 기차를 지금 찾아서 탈 수는 없어요.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기로 해요. 어디에서 내리게 될까요. 어제의 박리수, 손나나가 살았던 인천의 아파트일까요. 아니면 청나라 식당과 영어학당이 있는 제물포마을일까요.     

지하철이 들어오고 둘은 마침 빈자리가 있어 나란히 앉았어요. 몇 시간동안 일어난 일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지요. 끼익 하고 기차가 멈추는 소리에 둘은 잠이 깨었어요. 이 곳은 다시 제물포 마을이에요. 깨끗하게 단장한 두 소녀가 주머니에 30전이 남은 채로 기차에서 내렸어요. 경성 구경은 못 하고, 서울 구경을 하고 왔네요.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어요. 아까 서울에서 와는 다른 깨끗한 공기가 느껴져요. 두 소녀는 꿈을 꾼 것일까요. 아까 휴대폰을 통해서 본 세상에서는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만, 결국엔 독립 되찾아 눈부시게 발전을 해요. 당연히 아버지 박경호 선생님이 꿈꾸는 양반 천민 구별 없는 세상이 되지요. 아버지께 조선 사람의 미국 이민에 대해서 말씀드려야겠어요. 아버지께서는 시간 여행을 했다는 내 말을 절대 믿지 않으실 테니 다음에 나나네 집에 오시는 양인들에게 먼저 물어봐야겠어요.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간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고 있을 지도 몰라요. 그들이 아버지께 이야기 해 준다면, 아버지는 의심 하지 않고 믿으실거에요.아버지께서는 이민을 가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실까요? 아니면 영어를 잘 하시니 이민 간 조선인들이 좀 더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일 할 수 있도록 힘써 보시겠다며 이민을 고집하실 수도 있으실 거에요. 혹은 조선을 떠나 미국 땅에서 기울어 가는 조국을 위해 힘써 보시겠다며 이민을 더욱 결심하실 수도 있어요. 나나는 아버지께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할 테니 만두 만드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졸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아까 서울에서 먹었던 군만두보다 훨씬 맛있는 만두를 만들어 대대손손 전하면 우리집의 손맛을 200년 후의 한국 사람 뿐만 아니라  여행 오는 중국 사람, 미국 사람 모두 맛 볼 수 있게 되겠지요.      

“리수야, 우리 가게일 열심히 돕자. 또 돈을 모아 경성 가는 기차를 타서 서울역에 내리면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알아보고 올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러자. 나는 서울에서 입고 있었던 그 예쁜 치마를 꼭 다시 입고 싶어. 우리 이번 일은 비밀로 해야겠지?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가는 정신 나간 소리 한다고 외출 금지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두 소녀는 손을 꼭 잡고 집을 향해 걸으며 마주보고 웃었어요. 다시 경성, 아니 서울 구경을 가게 되면 이 제물포 마을이 어떻게 변하는지 좀 더 공부하고 오기로 마음먹었답니다. 2022년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박리수와 손나나도 수업시간에 딴 짓 말고 열심히 공부하길 바라면서요.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결과는 1급!

공부도 하고 글도 썼던 2022년의 하반기를 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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