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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13. 2022

2022, 영화 탄생을 보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청년 김대건을 함께 만나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 감상문 입니다.


옛날 옛적 절두산 성지에서 받은 충격.

중학생 무렵 서울 마포에 있는 절두산 성지에 간 적이 있다. 절두산, 잘린 머리들이 모여 있는 산, 천주교 박해시절에 죽은 순교자들의 머리가 산처럼 쌓여 절두산 성지라고 이름이 붙은 곳이다. 충격을 받았다. 그 전에도 참수형, 능지처참, 당장 네 목을 쳐라 등등의 말을 들은 적이 많지만 죽음을 일컫는 어떤 비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지 정말 사람의 머리를 잘라 죽인다고는 생각지도 못 했다. 그런데 참수형이 정말 머리를 자르는 것, 심지어 그 자른 머리를 걸어 놓는 참수 효시가 비유적 표현이 아닌 진짜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 그때 나는 스스로를 천둥벌거숭이 같다 여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여리고 고운 소녀였다.



2022년 12월, 영화 탄생.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종교 영화가 아닌 상업 영화를 보고 왔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 최초의 한국인 신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익숙하다. 성당에서, 교리실에서 만나는 성인. 하늘에 계시는, 처음부터 하늘에 계셨을 것 같은 성인으로 배웠고 받아들여 사람 김대건, 조선 후기 인물 김대건으로는 생각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는 천주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를 따라 공소로 미사를 다니다 부르심을 받아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벗이며, 제자이자 동료이고 그리고 신부로 짧은 생을 살다 순교를 하여 나중에 성인품에 올랐다. 나는 그 많은 면면들 중에 마지막 두 가지, 신부이고, 성인품에 오른 성 김대건 안드레아만 알고 있었다.


불어로 신학을 배우는게 어떻게 가능하지?

 사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 한 부분이었다. 나는 한글로 교리서를 읽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를 때가 많고, 20년을 영어를 배워도 영자 신문 읽기 힘든데, 그분께서는 그 시대에 불어로 신학을 공부해 사제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중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며 불어 말고도 나전어 (라틴어), 잘 못 한다면서 영어도 잘 하신다. 한문으로 편지 쓰기, 한글로 번역까지 모두 가능하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서구 열강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꿰뚫으셨고, 이러저러한 선례로 볼 때 조선인은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그간 조선의 역사에도 정통하시다. 청나라의 아편전쟁도 눈으로 보셨으며, 그러나 조선에서는 청나라가 이렇게 무너진 것을 알지 못 할 거라고 그 시대를 누구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눈도 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모험심에 더해 항해술도 아시며, 가는 곳곳 지도를 그려가며 감시를 피할 우회로를 지도로 그리는 미술 솜씨까지. 그야말로 시대에 도움이 될 인재 이셨다. 영화는 이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느낌이었다. 종교적 인물이 아닌, 시대의 지식인이었던 김대건으로.  잡혀온 김대건을 당장 처형하라는 신하들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에 젊은 왕 헌종은 고뇌한다. 나라에 도움이 될 인재를 그렇게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전해져 안타깝다. 헌종이 20대에 단명했다고 하고, 김대건 신부가 순교할 당시의 나이가 25세였으니 아마 둘은 비슷한 또래였을 것이다. 시대가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면, 헌종의 할아버지 정조와 정하상 바오로의 숙부 정약용처럼 그 둘도 영혼의 단짝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시 정조와 정약용,

 정조가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정약용이 그렇게 유배를 가지 않고, 그 천재 집안이 그렇게 내려앉지 않았더라면, 적당히 천주교와 거리를 두며 공존하고 천주교 신자들이 많았던 실학자들이 계속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유학도 가고, 진정한 학자와 위정자, 목자들이 계속 나올 수 있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정조와 정약용처럼, 헌종과 김대건도 그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말이다. 정조는 유학자였지만 위정척사는 아니었다. 사학을 몰아내라는 요구에도 성리학이 바로 서면 사학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니 양반 늬들이 잘하세요 한 왕이 아니었던가. 장장 두시간 반에 이르는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헌종의 고뇌를 보며 정조와 정약용을 떠올렸다. 너무 아깝다. 그들 모두 말이다.



다시 절두산 성지.

 천주교 박해 역사를 보면 전국 곳곳에 피바람이 분 것은 맞지만, 배교하면 살려주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의 목적이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평민, 천민 중에서는 배교하면 살려주기도 하였다는데 배교하는 이가 많이 없었다 하니, 19세기 이후의 조선 사회는 천주를 믿어야 천국에 살 수 있는 모진 고통의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평민, 천민들에겐 더더욱.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이 잘려 죽는다. 그 의미도 모른 채로 절두산 성지에 갔던 것이 25년 전인 것 같다. 지금은 참수형, 참수 효시가 뭔 지 정확히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어떤 신앙인지는 아직도 잘 가늠이 안 되는 나일론 신자이기도하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 반이나 되는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보고 나왔다. 내가 천주교 신자이기도하고 최근에 한국사를 공부하여 조선 후기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기도 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서구 열강이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그 시기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이양선의 출몰, 서구 열강의 침입, 쇄국정책과 개항기로 이어지는 외울것이 본격적으로 많아 지던 시대의 시작이었으니. 공부한 보람을 여기에서도 찾는다.  이 영화의 주 관객층은 50대 여성, 성당 레지오 단원분들이 단체관람을 많이 오시는 것 같다. 천주교 신자로서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를 보는 감동에, 아들뻘 되는 젊은 이의 고난과 죽음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 나는 이 영화가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 자칫 지루할까 봐 관람을 망설이다 보게 되었는데, 보고 나서 신자든 비신자든 한 번쯤 보셔도 좋겠다고 추천할 수 있어졌다. 그런데 영화가 내려가는 분위기라 얼른 티켓을 예매하지 않으면 영화관 관람이 힘들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일찍 볼걸. 언제나 이런 후회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내 인생에서 성당에 다니고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은 습관처럼, 공기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는데 알고보니 기적이고 선물이었다. 나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해 주신 그 시절의 모든 신자, 순교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천주교 교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 공이 서로 통함을 믿는 것, 성인들께서 지상에서 쌓은 공로를 하느님께 보여주며 우리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심을, 우리가 성인들께 기도를 청하면 하느님 곁에 더 가까이 계신 분들이 소위 말하는 빽을 써서 기도를 전해 주심을 믿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대부분 성인 반열에 오르신 영화 속 주인 공들께 전구를 청했다. 나의 신앙생활이 기적이고 선물임을 진심으로 알게 해달라는 겸손을 청했고, 다른 한 사람에게라도 좋은 천주교인으로서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선함과 지혜를 주실 것을 청했다. 들어주실 것임을 굳게 믿는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화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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