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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1. 2022

크리스마스에 과자집 만들기.

환상과 환장 사이




어린 시절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의 환상에 빠져보지 않은 어른이 있을까?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가 과자를 뜯어먹을 수 있다니, 어른에겐 돈으로 만든 집에 들어가 그 돈으로 쇼핑을 즐기는 것만큼의 기쁨이고 환상이고 꿈일 것이다. 나를 잡아먹겠다는 마녀가 나타날지 언정, 다음 달 카드 값 귀신이 빌린 돈 내놓으라며 발목을 잡아 끌 지언정 말이다.


아이들과 과자집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은 큰아이가 네 살 때 어느 문화센터의 과자 집짓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였다. 식빵을 쌓아 딸기잼으로 홈런 볼을 붙이는데 그게 붙냐 말이다. 지붕도 없는 House 가 아닌 Apartment의 모양이었고 장식은 모두 주르르 흘러내려 아이도, 나도, 다른 가족들도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너무 성에 차지 않아서 내년엔 내가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나는 이런 집을 짓고 싶은데, 아니 갖고 싶은데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쿠키하우스 키트를 쉽게 구할 수 있고 ( 이제 한국 코스트코, 이케아, 트레이더스 등에서도 진저브레드 하우스 키트를 판다), 그 밖에 다른 키트 및 완제품도 많으며 흔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과자 집 만들기를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는 접근하기 어려운 활동이다 보니 또 유튜브와 구글을 검색하며 알아봐야 했다. 일단 과자집을 구울 수 있는 쿠키 틀부터 해외 배송으로 미리 구비해두었다.


사실 쿠키 반죽해서 굽는 건 나에게는 일도 아니다. 다만 아이가 둘이니 집을 두 채는 지어야 하고 우리 집 가정용 오븐으로는 제법 큰 크기의 과자집을 지으려면 오븐을 계속 돌려야 했다. 이럴 땐 업소용 오븐이 미치도록 갖고 싶다.


그다음 문제는 집을 짓는 문제인데, 일단 시폰 케이크 상자를 주문하여 케이크 밑판에 지어 포장을 하기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건축자재는 잼, 초콜릿은 너무 약할 것 같으니 단단하고 뻑뻑한 아이싱으로 잡았는데 이걸 고정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결국엔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한 사람이 계속 집의 벽체를 아이싱이 굳을 때까지 잡고 있는 동안 한 사람은 이곳저곳 꼼꼼하게 아이싱을 발랐다.


왼쪽 2021년의 창문있는 집, 오른 쪽 2022년, 엄마가 귀찮아서 창문을 안 뚫어준  집. 이 아무 장식 없는 오두막 집이 아이들의 손을 거쳐 휘황찬란해진다.



집을 꾸밀 재료들은 아이들과 함께 쇼핑에 나섰다. 웨하스, 초콜릿,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는 형형색색의 스키틀스, 엠엔엠즈, 젤리들과 마시멜로, 빼빼로등의 막대과자 종류별로, 아. 초코펜!! 그것도 색색으로 플렉스!! 엄마가 안 된다는 말 없이 사주는 일 년 중 며칠 안 되는 하루다.


2021, 다섯살, 세살의 과자집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이던 2021 (과자 집 1년)

살 둘째는 확실히 집중력이 형아보다 약했다. 금세 마무리 짓고는 그냥 마구 먹기 시작했고, 나와 첫째가 둘째의 집까지 마무리 지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나중에 진짜 집 지으면 엄마 줄게. 여긴 마녀 할머니가 있으니 창문을 웨하스로 막아버릴래.


하는 놈과 먹는 놈



아이들이 여섯 살, 네 살이 된 2022 (과자 집 2년)

 집중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손 힘도 좋아져 초코펜도 도움 없이 쭉쭉 짜내고 형아가 과자집 재다 쓰기 전에 내가 써야 한다며 오두막집 수준이던 플레인 쿠키 하우스를 휘황찬란하게 꾸미는데, 와 1년 동안 참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에 대견하고, 흐뭇하고 기특한 엄마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이고 우리 아기, 많이 컸네. 첫째는 집 안에 들어간 헨젤과 그레텔이 먹을 과자를 차려준다며 구멍으로 마시멜로며 다른 과자들을 쌓아 넣어 아주 묵직하게 만들었다. 거의 못 먹고 버리게 될 것이 뻔했지만 과자 집 만들 때에는 최대한 안 돼 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리는 안돼!!!! 빼고는 말이다.



먹던 놈이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모든 활동이 그렇듯 하는 것보다 치우는 것이 더 큰 일이다. 다 했으면 그 자리에서 옷을 모두 벗겨 화장실로 옮긴다. 그리고 옷을 둘둘 말아 들고 가 너희가 붙인 초콜릿, 아이싱들을 샴푸로 깨끗하게 빨아 두라고 하면 아이들은 신나서 빨래를 한다. 그동안 나는 쓸고 닦고 쓸고 닦고 쓸고 닦고를 할 수 있는 만큼 반복. 그렇게 해도 일주일 넘게 슈가파우더가 날리는 것이 과자 집 만들기의 치명적인 단점이랄까.


신랑아 너는 아느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그렇게 만든 과자집 앞에서 사진을 기념사진을 찍고, 퇴근할 아빠를 기다린다. 자랑 먼저 하고 뜯어먹기. 먹을 거 좋아하는 둘째는 미련 없이 울타리부터 야금야금 뜯어먹는데 첫째는 손도 못 대게 한다. 정말 관상용. 그렇게 한 달 정도 투명한 시폰 케이크 박스에 넣어두어 구경하다가 결국에는 버리고 말지만, 그럼에도 안 돼 라고 말하지 않는다.


과자집 만드는 날의 저녁은 매운 불족발이나 떡볶이이다. 하루 종일 단 걸 입에 넣었으니 난 속이 달고 느끼하고 안 돼! 를 참느라 부글거리는 속을 매운 음식으로 달랜다. 치우면서는 이걸 내가 왜 한다 그래서 이 고생을 하나 다신 하나 봐라 내년엔 안 해야지 하면서도, 아빠에게 과자집을 자랑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이 한 몸 조금 닳는 것이 어디 큰 대수랴 싶어 위로가 된다.


지금은 8월.

덥지만 곧 가을이고, 또 금방 추운 겨울이 올 거야. 하니 그럼 과자집 만들겠네? 하는 아이들.

그래. 올해도 엄마가 준비해줄게.


이렇게 웃는데, 어떻게 안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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