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제과 제빵 실력이 점점 인정을 받을 무렵, 엄마의 언니, 즉 나의 큰이모가 계시는 수녀원에서 부탁이 왔다. 이번 부활절에 수녀원 전통으로 굽던 빵을 구워 줄 수 있느냐고. 수녀원에서는 부활절이면 양케이크를 구워서 달걀과 함께 부활 바구니를 꾸며 고마우신 분들께 선물하는 전통이 있는데 아마 그 곳도 노령화의 직격타를 맞아 마땅히 하실 분들이 안 계신 듯 했다. 어떻게든 한번 해 보겠다며 오케이를 한 엄마에게 덜렁 도착 한 것은 레시피도, 팁도 없는 몇 십년 된 양 모양 케이크 몰드 몇 개 뿐. 물론 우리 집도 이 전에 그 양 케이크를 여러 번 선물 받아 먹어봤었지만, 그냥 받는 것과 대량 생산 해야 하는 입장은 바로 천지차이.
유투브에 검색하면 나오는 것들
엄마는 엄마만의 머핀 레시피로 도전을 했다. 처음 몇 번은 계속 실패였다. 반죽이 모자라게 들어가거나, 흘러 넘치거나, 다 구워진 빵을 꺼낼 때 양의 코와 입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매끄럽게 꺼내 지지 않아 피부가 벗겨진 모양이 나오기도 했다. 겉에 하얗게 바르는 장식도 실패를 거듭했다. 대량 생산하여 며칠 보관 해야 하니 생크림보다는 달걀 흰자와 슈가파우더로 단단하게 만드는 아이싱이 최선의 방법이었는데 저렇게 하얗게 양케이크를 만들려면 농도가 꽤 되직 해야 했고, 그러면 만들고 바르는 새에 너무 금방 굳어버려 바르는 속도도 빨라야 했다. 그래도 온 집안에 단내를 풍기며 날짜 맞춰 양들을 갖다 드리니,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엄마의 손목과 허리가 허락할 때 까지 몇 년 동안 우리 집은 부활절 전이면 고난 주간을 겪으며 납품을 끝낸 날, 터질 듯 한 기쁨을 담아 알렐루야를 외쳤다. 드디어 부활하셨도다. 끝났노라.
싸이월드 유물
그게 20년 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부활절에 양 케이크를 보는 사람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보는 빵이라고.서양에서는 부활절이면 흔하게 보이는 케이크 라는데 사실 우리도 몰랐다. 그저 그 수녀원의 전통인 줄만 알아서 성남에 안나의 집 이라고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시는 이태리 출신의 김하종 신부님께서 (엄마와는 오랜 지인) 하나 구워달라고 부탁 하셨을 때 도 고지식한 엄마는 칼같이 거절 하셨다. 그 수녀원만의 전통이라고, 이 빵틀로 만든 빵은 수녀원에 저작권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줄 수 없다고. 신부님께서 내가 이태리 휴가 가서 빵틀 사오면 구워줄꺼냐며 못내 아쉬워 하셨다는건 몇 년 전에 알았다. 그건 마치 외국 나가 사는 한국 사람이 추석 명절에 솜씨 좋은 외국 친구가 만든 송편 하나 나도 좀 달라는데 이건 이 Temple 의 전통이니 안 된다고 거절당한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까. 한국에선 아무데서나 파는 송편을?
여하튼 엄마의 쇠약해짐과, 나의 결혼, 임신, 육아로 양케이크는 몇 년 간 우리집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작년부터 내가 다시 시작하였다. 양케이크 몰드는 직구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고 유투브에 Easter lamb cake 를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엄청 많다. 직구로 장만한 케이크 몰드는 수녀원에서 쓰던 오래된 몰드보다 훨씬 가볍고 빵도 잘 떨어지는 재질로 쓰기가 좋았다. 엄마는 그걸 어디서 샀느냐며 굉장히 놀라셨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 때 신부님 케이크 하나 구워 드릴껄. 하셨더랬다.
2021년 여섯살, 네살 아이들의 양케이크 꾸미기.
내가 이 고난 주간의 수난에 내 발로 다시 들어온 것은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 위해서 였다. 연례 행사로 부활절이면 이런 빵을 만들어 양가 할머니들께 드리고 부활절 성가를 부르고 나누어 먹는, 애들이 어릴 때나 가능할 법한 가톨릭 집안의 연례 행사. 1년에 한번이니 기꺼이 한다. 사실 저 코팅용 아이싱은 닦아도 닦아도 일주일은 집안에 가루가 되어 날라다니고, 반죽하고 굽고 치우고, 아이들과 활동 할 준비를 하고 또 치우고, 포장하고 또 치우고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부활이 일년에 하루이니 다행이다.
2021년, 병아리 쿠키도 구워서 꾸몄다.
직구로 몰드를 받으니 레시피와 만드는 법이 적혀있었는데 나는 엄마의 머핀 반죽 레시피로 했다. 그 레시피 이지만 아마 사정에 따라, 아니면 아차 하는 순간에 밀가루가 더 들어가고 설탕이 덜 들어가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칼 계량에 약한, 그때 그때 다른 손맛을 내는 홈베이커이니. 재미있는 건 유투브에는 전문 베이커들의 영상도 있지만, 그냥 가정집 할머니가 집안 전통으로, 집안 행사로 만드시는 영상도 많이 있는데 집집이 똑같은 파운드케이크 믹스를 많이들 쓰셨다. 예전에는 반죽을 직접 했었는데 이 믹스를 쓰는 것이 더 싸고, 편하고, 맛있다 하시며, 믹스를 추천하시는 할머니라니. 무려 우리밀로 직접 손반죽을 하여 양케이크 백마리씩 만드신 엄마한테 말씀 드리니 그냥 웃으신다. 그렇긴 하지. 하시며.
작년에는 하얗게 아이싱을 바르고 빨간 끈 젤리를 사다가 목걸이를 해 주었는데, 올 해에는 아이싱이 굳기 전에 미니 마시멜로를 붙였다. 내 아이디어였다. 양이 하얀칠만 하면 말티즈 강아지 같이 보이기도 해서 뽀글뽀글한 털의 느낌을 살려보고 싶었는데 유투브 영상에서 처럼 짤주머리로 크림장식을 해서 냉장보관을 하긴 곤란했다. 베이킹 큰 손인 나는 네다섯 마리 정도는 만들어야 성에 차는데 그걸 크림 장식을 해서 냉장보관할 공간이 나의 냉장고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이트 컬링 초콜릿으로 할까 하다가 애들의 손에 3초안에 녹아내릴 얇고 작은 초콜릿을 생각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미니 마시멜로. 결과는 대 만족, 대 성공 이었다.
선물 받으신 분들은 이걸 어떻게 먹어? 하시는데 바로 이렇게 그냥 먹으면 된다.
2022년, 일곱살, 다섯살 아이들의 양케이크 꾸미기
아이들은 부활절의 의미를 잘 모른다. 죽음이 뭔 지도 잘 모르는데 부활이라니, 그저 엄마와 케이크를 만들고 달걀을 꾸미는 신나는 날이다. 두번 했더니 내년 부활절에도 당연히 하는 줄 안다. 두 해 동안 실력을 다듬었으니 내년에는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께 한 마리 갖다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