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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09. 2022

베이킹 스토리

베이킹에서 손 맛 찾기. 어떻게? 알아서! 적당히!

친정 엄마는 몇 년 정도 호두 파이가게를 하셨다. 그게 벌써 거의 20년 전이다. 20년 전에 호두 파이라니,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셨다. 호두 파이로만은 구색이 맞지 않으니 시나몬 호두파이, 커피 맛 피칸파이, 새콤한 애플파이, 부드러운 고구마 파이를 만드셨고 쿠키도 곁들이셨다. 전 공정 모두 수제였다. 심지어 우리밀. 파이는 정말 맛있었다. 그 어디서도 엄마가 만든 것 만큼 맛있는 파이는 먹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음식이 맛있었을 뿐. 가게는 항상 적자 그 언저리 어딘가에서 엄마의 손목만 축내고 있었는데  가끔 성당이나 수녀원, 무슨 단체의 바자회 호두파이 단체 주문이 있곤 해서 그걸로 대충의 매출을 때웠지 싶다. 단체주문은 적게는 백판, 많게는 오백판까지. 사실 바자회의 물건이라야 거기서 거기고, 먹을 거 사오는게 재미이자 남는것이다 보니 해가 갈수록 엄마의 호두파이는 입소문을 탔다. 언제나 조기 완판. 하지만 남는 것은 몸살, 정형외과와 한의원치료. 그런 것 들 뿐이었다.


엄마의 맛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한 나의 피칸파이. 엄마는 가게를 정리하며 레시피도 미련없이 정리해버렸다.



나는 그때 대학생이었는데 엄마를 도와줄 수 있는 셋 중에 유일한 딸이었다. 파이 반죽을 밀고 쿠키를 하루에 천 개 씩 만들고, 머핀 반죽을 할때는 계란을 스무판씩 쌓아놓고 깼다. 탁 탁 탁. 계란 두개를 맞부딪치면 꼭 한 개만 깨진다. 두개가 동시에 깨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걸 신기해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는 계란 한 다라이가 깨져있었다.


엄마는 바빴다. 하지만 우울했다. 이렇게 고생하려고 제과제빵을 배운 건 아니라고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하고 싶어서 배운건데 되지도 않는 돈벌이를 하며 몸까지 아프니 우울 할 만도 했다. 나의 사춘기가 그랬듯, 엄마의 갱년기도 무심한 가족들 사이에서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지나가고 있을 즈음이었지 싶다.


대학생 딸이, 엄마를 돕고 있으니 지나가는 손님들, 엄마의 친구들은 모두 딸이 가게 이어받아 하면 되겠다며 입을 모아 기특해 했다. 엄마는 정색하고 반대했지만. 고생하지 말라고, 기분 내고, 선물 하고 이런 때에 쓸 수 있는 정도의 기술만 있으면 되지 더 이상은 알려고 하지도말라 했다. 그만큼 베이킹을 업으로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도 엄마의 가게일을 도울 때면 예쁜 앞치마 입고 예쁜 보울에 조금씩만 반죽을 해서 손님을 초대해 티타임을 즐기는 홈베이킹이 딱 좋겠구나. 싶었다. 너무 힘들어서.


작년 가을 사과가 많아서 구워본 애플파이. 엄마의 파이에 가장 가까웃 맛을 재현해 내긴 하였으나 격자무늬를 틀리게 넣는 가장 나다운 실수를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내 아이들이 생겨나 이만큼 자라고, 나는 홈 베이킹을 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건강하게 밀가루라도 적게 써볼까, 노버터 레시피를 연구해볼까, 설탕 대신 스테비아로 해 볼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그냥 제대로 만들어서 조금만 먹는 것이 정신건강에, 신체건강에 가장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건강 베이킹으로 무언갈 만들어 많이 먹으면? 그냥 마카롱을 하나 먹는것이 훨씬 더 좋다. 아이들이 자라니 그냥 설탕, 밀가루, 버터를 적당히 넣어 만든다.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 난 인기만점 동네아줌마가 되고 적당히 먹으니 건강에 나빠봐야 얼마나 나쁘겠는가.

이건 정말 맛 없으면 사기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엄마표 홈베이킹은 빠질 수 없는 킬링타임 액티비티 였다. 초코 머핀 반죽을 도넛 틀에 구워 초콜릿으로 코팅을 하여 각종 토핑을 붙였다. 기껏 국산 무가당 현미 시리얼, 흑미 시리얼을 사서는 초콜릿에 비벼버리다니, 아이들이 참여하기 좋도록 버터 휘핑 방식 대신 생크림으로 베이스를 잡았고, 냉동실에 아몬드 가루가 남아있어 밀가루를 아몬드 가루로 거의 대체하였으며 분명히 작년에 대량으로 쟁여 놓은 베이킹 파우더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베이킹 파우더는 생략했다. (이것 저것 많이도 만들었나보다). 이젠 레시피북을 펴지도 않고 있는 재료로, 상황 봐서, 없으면 없는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베이킹과 어울리지 않는 손맛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초콜릿으로 코팅을 할 예정이니 설탕양도 알아서 줄였다. 적당히 .


엄마표 쿠킹 클래스. 난 저 스프링클이 너무. 싫다. 사방에 날린다.


대용량으로 만드는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손이 매우 크다.


내가 아이들과 베이킹을 하면 엄마가 좋아하신다. 엄마도 그러려고 배운 건데 그러지 못하셨으니 딸이라도 그렇게 써먹고 있어서 기쁘신 것 같다.

오늘은 머핀, 지난번엔 피자, 어떤 날은 소시지 빵, 가을이 되면 파이, 할로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쿠키, 나만의 베이킹 이야기를 차근 차근 써 내려 가 봐야겠다.


레시피 북이 아니라, 베이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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