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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09. 2022

아이의 글쓰기

일곱살 큰 아이의 글쓰기 대장정, 그 영광스런 동행

일곱살 큰 아이의 일기가 스무 권이 되었다. 처음 한글을 얼추 뗄 무렵부터 시작된 그림 일기는 일년 넘게 꾸준히 써 오고 있는데 싫다 싫다 하면서도 하겠다고 앉으면 끝까지, 잘 써야 성에 차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다.


그간의 기록들

처음에는 내가 먼저 한 페이지를 쓰고 엄마의 글씨를 읽게 하고 두번째 페이지에 아이의 일기를 함께 썼다. 웅얼웅얼 횡설수설 하는 말을 한 문장으로 구성하여 쓰는 연습으로 시작하여 맛있었다, 재미있었다, 를 제외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보기, 접속사를 알맞게 사용하기 등으로 국어공부를 하는 셈이었다.

2021년 7월 7일 , 처음 쓴 우리의 일기



쓰다 보니 느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주제를 한정하여 쓰기로 했다. 가장 관심있어 했던 독생물 도감 쓰기. 책을 먼저 읽고 자기가 직접 책을 쓰는 것처럼 해 보자 하니 흥미있게 접근하였다. 기분 좋은 날은 그림도 잘 그리고 색칠까지 완벽하게 하고는 흐뭇해 하며 그렇게 한권을 다 마쳤다.


생물도감의 한 페이지, 아이가 쓴 정확한 제목은 생물독암이다. 조시매요. 이런 맞춤법 오류는 너무 귀여워서 고쳐주기가 싫었다.  



아이는 정말 책 처럼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며 부사나 호응 어휘를 시도했다. 나는 외국어를 전공한 엄마라서 문법의 오류, 호응 관계가 맞지 않는 것, 문장이 길어지며 틀어지는 주술관계를 참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여섯살 짜리의 일기에 어느정도 까지 손을 대야 하나가 가장 큰 딜레마였다.[뱀잡이 수리는 살모사를 결코 이길것이다.] 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아이는 결코 라는 부사를 쓰며 문장에 극적인 이미지를 주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유민아. 결코는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써야해. 라고 말하니 내 마음대로 쓸 꺼라며 자신의 문장을 엄마 마음대로 고치려고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그냥 둬야하나 그래도 고쳐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유민아. 글 쓰기에는 약속이 있어서 네가 쓰고 싶은대로 쓸 수가 없어. 결코라는 말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쓰는게 약속이야. 고쳐야해. 라고 단호한 자세를 취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사실 지금도 모르겠다. 한 두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아이는 문장의 호응, 지켜야하는 약속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런 오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고치는 것에 거부감을 털어버렸다.


2022년 7월 7일. 딱 1년만에 많이 발전하였다.

아이는 일기를 곧 잘 써 내려갔다. 일기 이기는 하지만 어느 날은 생물 도감이기도 하고, 동계 올림픽이 한창일때는 스포츠 중계 형식의 구어체로 독생물 배틀을 써 보기도 하고, 요괴외 몬스터에 빠져 있을 때는 몬스터 도감을 쓰기도 했다. 요즘에는 문장을 조금 더 멋지게 바꾸는 표현을 배우기도 한다. 예전에 색종이 탱크 접기를 했을 때 어려웠어서 오늘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쉽게 접었다고 쓰고싶어. 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쉬웠어? 라 말해주니 응. 생각보다 쉬웠어. 라고 말하고 엄마의 포인트를 캐치하여 생각보다 쉬웠다고 쓴다. 그럴 때는 참 기특하다. 옆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던 다섯살 짜리 둘째 녀석이 몇 시간 후에 엄마! 이거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쉬웠어 라고 말하는데 아까 들은 풍월을 읊어 대는 것이 너무 웃겼다. 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 보다 쉬웠어? 라고 하니 응, 생각보다 쉬웠어. 생각보다. 라고 말한다.


타조 이야기 , 그림이 너무 귀엽다.


글쓰기를 너무 일찍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써도 충분하다는데 지금은 글씨 쓸 시간에 책을 읽게 하는 것이 더 좋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역시 있다. 아이를 너무 내 성향에만 맞추어 가르치는 것 같아 매일매일 자기 검열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결론은. 내 앞에서 나랑 이야기 나누며 글을 쓰고 고쳐보는 시간이 아마 길어야 2, 3년 일거라는 생각에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도 빨리 온다는데 금방 일기는 혼자 쓰거나 안 쓰게 될거고 엄마한테 책이며 공책이며 보여주기는커녕 슬금슬금 감추기 급급해 할 날이 곧 올텐데, 아이의 하루를 아이와 일기를 쓰며 곱씹어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지금 이 날들을 그냥 즐겨보기로 한다.



나는 이 일기장들이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 나누었던 대화들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아이의 마음 속 장기 기억 저장소에 저장되어, 살면서 어느 헛헛한 날 꺼내어 들추며 이런 어린 시절이 있었음에 잠시라도 행복했으면 그거면 되겠다. 그래 준다면 엄마는 정말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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