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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07. 2022

세계 여행

지금은 대리만족, 하지만 여전히 꿈꾸는 중.


초등학생, 중학생일때부터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리즈를 읽으며 세계 여행을 꿈꿨다. 세계 곳곳에 사람 사는 모습들이 궁금했다. 그 언니처럼 현지의 흙집에, 돌집에 초대받아 잠 자보고 싶었고, 반쯤 부화된 병아리가 나온다는 달걀요리를 구경하고 싶었고, 양 머리를 통째로 고아 만드는 손님 초대 특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아마 한비야가 요즘 사람 이었다면 백만 유투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려보고 상상 하는 것을 즐기는 나 이지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세계 오지의 여행기는 글보다는 영상이 좋다. 나의 상상이 닿지 못하는 영역이기에.  


요즘 세계 여행 유투브를 종종 본다.

나는 대리 만족이란 말에 한 번도 공감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하면 했고 못하면 마는 거지 만족을 어떻게 대리로? 어불성설!

그런데 지금은 유아기의 아이들 둘을 키우는 엄마, 대중교통 약자 이자, 식품 위생에 극도로 예민해진 부엌데기, 체력은 바닥 밑에 지하를 전전하는 저질 중에 저질 중에 저질로 전락해보니, 세계 여행은 내 인생에 끝났구나 싶어 세계 오지로 짠내 여행을 다니는 유투브 영상을 보며 대리 만족이란 말에 처음으로 공감했다.



유투버 뜨랑낄로


여기는 세부 라는데 내가 고급 리조트에로 휴양을 가 봤던 그 도시랑은 완전 딴판이다. 온갖 고급 비싼 음식에 에비앙으로 양치했던 그 리조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쓰레기 냄새가 지독한 주거지역에서 신발도 못 신은 아이들이 300원짜리 MSG 폭탄 소세지를 팔고 시먹으며 일상을 살고 있었다. 여행 유투브들이 이제는 겁이 많아진 나를 대신에 이곳 저곳을 보여주어 난 대리 만족을 깊이 느꼈다.


사실 나도 저렇게 여행하고 싶은데 이젠 자신이 진짜 없다.고급 진 휴양보다는 한국에 없는 현지 시장, 사람 사는 모습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이제 튀김 기름의 색깔을 체크하며 찜찜할 것 같고 맨손으로 조물조물 깎아 주는 과일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없고 애들한테 먹이기도 겁난다. 중국 시골 마을에서 취두부도 사 먹고 한국 돈 오십원도 안 하는 양꼬치를 먹어도 끄떡없던 내가 아직 내 안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를 키우며 겁이 많아지니 나를 잃고 그 자리에 불안을 채운다.


나는 여행의 불확실성을 즐기던 사람이다. 현실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지만, 여행지에서의 불확실성은 막막하지만 그 상황에 순종하게 만든다. 그 가는대로 가야하고, 될 대로 되어야 하는 순종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데, 그 마음은 일상에서는 죽어도 찾을 수 가 없어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숙소와 비행기만 잡고 가는 여행. 불확실성과 무계획안에서 활개를 치며 현실의 불안감을 털어버렸다. 인생도, 일상도 결국에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여행과 같음을 느끼고 돌아오면 현실의 막막함과 불안함을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유투버 뜨랑낄로


부럽다. 진짜 대리만족.

아무 곳에나 텐트 치고 야영하며 별도보고 아무거나 대충 먹고 시장바닥 아무대나 쪼그리고 앉아 시장사람들이 먹는 거 눈치껏 시켜 먹는 그런 여행, 다시 할 수 있을까?


오늘은 병원에 가서 역류성 식도염, 위염 치료제, 제산제, 소화제, 궤양방지제를 받아왔고 한의원에서는 침치료와 건강보험 한약 스틱을 받아왔다.의사들이 공통적으로 묻는다. 최근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냐고.


아니요, 새삼스럽게 최근에 더 받은 건 없어요.

식습관 별로 안 좋지요?

네.

잘 먹고 잘 자야해요.

네. 아는데ㅠ 너무 어려워요.


가고 싶다. 여행. 내 안에 혹시 남아있을 총총한 호기심을 만나볼 수 있는 여행. 관광 말고 여행.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쫀득쫀득한 경험.


나는 요새 뭐가 고픈 가보다.

뭐가 고파서 오히려 체하나보다


현실은 당일치기 계곡 나들이에도 애들 짐에 허덕이며 에잇!! 그냥 가지말아? 그래도 가? 말아?를  수십번 되뇌인다. 나 혼자 네 식구의 짐을 챙겨야 하니 억울하기 짝이없다. 당일치기도 이렇게 힘든데 세계여행이라니, 애들을 두고라면 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완전히 나로부터 독립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한 번 걸어보는게 꿈이다. 간다 간다 생각 하면 정말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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