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도 지독한 모국어의 회로.
형아는 네 개 먹었는데 나는 세개밖에 못 먹었어!
유진이가 소리친다.
그리고는 멈칫한다. 나는 세 개 먹었어!
직감이 왔다.
아. 세 개 먹긴 먹었는데 못 먹었다고 부정형을 말하는 것이 순간 이상한가보다.
유진아. 세 개만 먹었어? 응!
세 개 밖에 못 먹었어? 응!
맞아. 더 먹고 싶은데 세 개 먹었을 땐 세 개 밖에 못 먹었어! 하는거 맞게 말한거야.
응. 알겠어.
외국인에게는 시험 문제 수준일 한국어의 일상 회화이다.
이 아이는 세 개를 먹었는가 못 먹었는가? 주로 듣기 평가에 나오겠지.
말을 배우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아이들이 막 말이 트이던 무렵.
더 먹을꺼야? 아니.
더 안 먹을꺼야? 응! 이제 안 먹어. 라고 하던
부정의문문의 대답 회로가 한국사람인 것이 너무 너무 신기했다.
자기 입으로는 몇 문장 내 뱉어 보지도 않은 아기들이
모국어의 회로를 가지고 예, 아니오를 답한다.
중국 사람과 영어로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Do you have a boy friend ma?
How many people are there in your class ne?
각각 중국어의 Yes No, Question 과 Wh Question 에서 쓰이는 어기 조사들이
영어의 의문문 끝에 고스란히 붙었다.
미국사람은 멘붕의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완벽히 이해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머리가 기억하는 모국어의 회로는 참으로 놀랍고도 지독하다.
유민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유민이의 모국어와, 유민이 엄마인 나 모국어가 모두 한국어이니
유민이는 한국어 사용자이고, 영어는 분명 외국어로서 학습하며 넘어야 할 산이 될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산을 힘들어도 쉬어가며 넘는 법.
힘들땐 그늘을 찾고, 물을 한모금 마시고, 부채질을 하며 속도를 늦추는 법.
결국에는 넘는 법.
기왕 산을 넘어가며 발 밑만 보지 말고
상쾌한 공기, 멋있는 풍경도 바라보길 바랄 뿐이다.
나는 산을 넘는 아이와 같이 손을 잡고
엄마가 이제는 늙어서 더는 못 가겠으니 너 혼자 가렴. 하고 손을 놓을 때까지
사이 좋게 도란도란 같이 가고 싶다.
나는 외국어 학습자인데, 다행히 센스가 좋은지
언어의 학습과정, 발달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꽤나 즐겁고 보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