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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Dec 30. 2022

긴긴밤.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어린이 문학을 읽었다. 포켓몬 도감과 몬스터 요괴 배틀 책을 들여다보는 아들들 사이에서 엄마는 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다. 초등학교 몇 학년 기준으로 어린이 문학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른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아들들이 이런 책을 읽을 날이 오긴 올까?


 코끼리와 흰 바위 코뿔소, 펭귄이 나온다. 무리 지어 살아야 하는 동물들이 어찌하여 다 혼자가 되었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하고도 커다란 비빌 언덕,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외롭고 지쳐도 누구 하나든, 누구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코끼리들은 버림받고 병들어 사람들이 돌보는 코끼리 고아원에 살고 있고, 흰 바위 코뿔소는 코끼리 틈에서 코끼리인 줄 알고 살다가 독립해 나온다. 펭귄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뭔가 이상해 보이는 점박이 알에서 기적처럼 태어나 코뿔소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무너지지 않게 돌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이를 큰 무리로 내보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이런저런 카더라 통신에, 정작 학교에 가는 아이는 무덤덤한데 엄마가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무서운 무리를 만나면,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면, 뭔 가 별나 보여 보호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이 답을 준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맞다. 그게 순리다. 순리에 역행하는 일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내가 순리대로 살고, 내 아이들을 순리대로 살도록 한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한 세상 살아 내지 않을까. 이 책을 보는 아이들이 코끼리들의 삶의 모습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달라도, 내가 불편한 코끼리이든, 튼튼한 코끼리이든 기대고, 내어주는 모습으로 옆에서 같이 사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너를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지.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노든은 온 힘을 다해 번쩍 일어나서 내 부리에 코를 맞댔다. 작별인사였다.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서서 내 뒷모습을 바라봐 주었다.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돌았다. 내 새끼 떠나가는 뒷모습을 본다고 생각하면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코뿔소 말이 맞다. 너는 어디에 있어도, 누구와 있어도, 이름이 있든지 없든지, 나는 너를 찾아낼 수 있단다. 내가 키웠는데.


이 그림책을 두었다가 아이들과도 함께 읽고 싶은데, 요괴 배틀과 신비아파트 귀신 이야기를 읽는 아들들과 이런 서정적인 감상을 나눌 날이 오려나 모르겠다.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생각났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하는. 내가 키운 펭귄을 떠나보내는 코뿔소에게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을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애 키우는 엄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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